다시는 안 가! 신체 접촉이 너무 많았던 스페인의 OOOOO
누구나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있을 거다.
여기만은 “꼭 가고 싶다”하는 여행지.
나에겐 스페인의 부뇰(Buñol)이 그랬다.
서로에게 토마토를 던진다는 혁명적인 이색 축제 La tomatina가 열리는 곳.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금기시된 가르침에 과감하게 반기를 던지는 신선한 축제.
가고 싶다는 열망과 그곳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가던 어느 여름.
난 드디어 스페인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보다는 피처폰이었고, 인터넷보다는 책이었다. 때문에 ‘라 토마티나’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라 토마티나’의 현실은 처절하다 못해 처참했다.
상상 속의 ‘라 토마티나’는 산뜻한 즐거움과 청량감 넘치는 웃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맑은 하늘, 시원한 공기, 흐물흐물한 토마토가 활기차게 오고 가는 만화 같은 세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토마토 축제는 마을 중앙의 푸에블로 광장을 기점으로 열린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검은색 유카타를 입은 일본인 3명을 제외하고는 동양인은 나와 내 친구가 유일했다.
당시 나와 내 친구는 버려져도 되는 옷, 젖어도 되는 슬리퍼 그리고 물안경을 끼고 갔었는데,
그때까지도 몰랐다. 우리가 대단히 잘못된 복장을 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의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들어찼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자꾸자꾸 늘어만 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토마토 트럭은 오지 않고(이때는 몰랐다 11시는 되어야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방송이 나와 불쾌감만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의 날씨는 그러려니 했다. 토마토가 늦어지는 것도 그럴 수 있다 했다. 하지만. 모여든 사람들의 광기로 넘실대는 자리싸움은 내가 이때까지 겪어봤던 그 어떤 혼잡함보다 크고 강했다.
압사 당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
점점 옆 사람과 밀착되는 면적이 커져 갔다. 살과 살이 맞닿으며 타인의 끈적한 땀방울이 내게로 스며들었다. 팔뚝으로는 낯선 서양인의 거친 피부 결이 느껴졌다. 수북한 털에 팔이 쓸리면 그 자리는 쓰라렸다. 옆으로 밀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아 마치 거대한 수세미 벽과 몸싸움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통에 슬리퍼를 신은 발은 사정없이 밟혔고 어느새 난 멍투성이가 가득한 맨발의 동양인이 되었다. 옆을 보니 내 친구의 버려져도 되는 티셔츠는 이미 찢겨 바닥에서 토마토와 뒹굴고 있는 중이었다. 계획에도 없는 상의 탈의자가 되어 둘 다 허탈한 미소만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스페인에서의 여름이 끝나갔다. 작열하는 태양과 아려오는 발등, 그리고 토마토 냄새로 마비된 코를 부여잡고...
여행하는 주황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