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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이즈게임

[기자수첩] 우리 동년배들은 그렇게 일하기 싫다

게임 노동자 일 더 시키자는 사장님들 주장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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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문체위 국회의원들이 엔씨소프트 사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맞이한 김택진 대표는 "중국에서는 6개월 내에 새 게임이 나오는 반면 우리나라는 생산성이 뒤쳐져 1년이 돼도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신철 게임산업협회장도 "직원들 여가도 중요하지만, 많은 업체들이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11월 1일, 크래프톤의 의장이기도 한 장병규 4차 산업혁명위원장은 중앙일보와 주 52시간제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장 위원장은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라며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거다"라고 항변했다.

 

어디서 듣기로 "나 때는 말이야"는 대개 뻥이라는데, 그래도 이들은 정말 그렇게 성장했다. 정말 오래 일했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스타트업을 안착시켰다. ​이들의 성공적 벤처는 '덕업일치'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대적으로 '닷컴 버블'을 잘 만난 덕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노력과 성과를 평가 절하할 일은 아니다. 존경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워라벨은 이제 상식이다. 동료들과 밤 늦게까지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면서 일해도 즐겁던 시절은 갔다. 그 시절이라고 해서 마냥 즐겁지는 않았겠지만​, 우리 동년배들은 애초에 그렇게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시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티를 내면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안일하게 일해서야 성공할 수 있겠느냐 묻는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성공 자체를 회의하고 있다. 천 번을 흔들려야 나무가 된다면 '나는 나무가 되기 싫은데요?' 하고, 조그만 차고에서 출발한 미국의 대기업 사례를 들면 '내 방에는 책상 놓을 자리도 없는데요?' 한다. 회사가 내 삶을 책임질 거란 확신이 희미하니 일과 삶의 균형이 제일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기원전 1,700년 수메르 문명의 점토판 문자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그랬단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월급이 밀렸거나, 13개월(12+1) 불법 계약을 체결했거나, 이전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당하고 정산도 못 받았거나,​ 그게 아니면 일상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데도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달리는 게임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신화'가 자기의 일이 될 거라 믿거나, 자기 직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자신을 갈아넣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일을 더 시키면 더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업은, 그리고 사회는 무엇을 약속할 수 있는가? 실리콘밸리가 일을 많이 하는 데에는 확실한 보상 구조가 짜였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면 회사 지분도 주고 연봉도 잘 준다. 장병규 위원장 말처럼 출퇴근도 자유롭다. 실리콘밸리에 준하는 약속을 엔씨소프트나 크래프톤 정도 되는 큰 기업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회사가 훨씬 많을 것이다.

 

장병규 위원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중국은 200~300명이 야전침대 놓고 주 2교대, 24시간 개발해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이어서 "한국에서 이렇게 하면 불법이다. 이러니 경쟁이 안 된다"고도 이야기했다. 중국 현행 노동법에도 수당과 관계 없이 996은 불법이다. 인민일보, 신경보 등 현지 매체들도 야근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실었다. 더구나 중국 기업에는 한국에는 없는 오수(午睡, 낮잠) 문화가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최근 게임 업계 일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지난 2일, <포트리스M> QA가 20시간 연속 근무 중 응급실에 갔다. 그는 과로 진단을 받았지만 다시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고 그랬다. 피쳐폰 시절부터 모바일게임을 만들어오던 <방탈출> 시리즈의 게임데이 권동혁 대표가 지난달 말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직원 없이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한 명은 직원, 한 명은 대표이니 둘을 아주 같다 볼 순 없으나 과로가 나쁘다고 말하기엔 충분한 사건이다.

 

이런 리스크를 감내하고 일한 노동자에게 회사는, 그리고 사회는 무엇을 보장할 수 있나? 워라벨을 포기하고 자신을 갈아넣었는데​ 물건이 잘 안 나오면,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회적 안전 장치는 있나? 지금 그 분들이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문제 삼을 때 이 이야기는 빠져있다. ​오히려 업계에서 일어나는 과로 사고에 어떤 입장인지 묻고 싶다.

 

또 묻고 싶다. 52시간보다 일을 더 하면 '갓겜'을 만들 수 있는지. 정말로 생산력의 문제였다면 주 68시간 시절에는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가 만족하는 물건이 나왔는지. 오히려 비인간적인 크런치 모드가 개발자의 창의력과 노동 의욕을 저해시킨다는 견해까지 있다. 실제로 2015년 국제게임개발자협회에서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크런치를 겪은 62%의 개발자가 크런치로 슬럼프에 빠졌으며 업계를 떠나고 싶어했다.

 

그저 더 많은 시간을 열심히 일하면 중국이나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답이 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그 분들 역할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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