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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AI 음성인식 적용한 보드게임 모노폴리, 그 80년 역사를 돌아보다

조회수 2019. 7. 8. 16: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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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보드게임 '모노폴리' 이야기
"나 지금 몇 등이야?"  - 꼴등입니다, 휴먼

오는 7월 10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사위 보드게임 <모노폴리>에 AI 음성인식 스피커가 추가됩니다. 게임의 마스코트 '모노폴리 맨'이 쓰고 있는 탑 햇 모양 스피커가 동봉된 <모노폴리 보이스 뱅킹>인데요. 앞으로 말판 레이스를 하면서 스피커에게 음성으로 부동산 구매, 임대료 지불 등을 지시할 수 있습니다. AI 음성인식 은행장이 생긴 셈이죠.

 

AI 스피커는 디지털로 모든 연산을 처리해 게임에서 은행장 역할을 오차 없이 수행합니다. <모노폴리 보이스 뱅킹>으로 게임을 하면 더이상 사람이 계산하고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스피커에게 말을 걸려면 자신의 턴에 버튼을 누르고 명령어를 말하면 됩니다. 잔액 확인, 경매뿐만 아니라 순위도 물어볼 수 있다 하네요.

 

부동산 보드게임의 백미는 가상의 지폐를 빼앗아 상대의 잔고가 '털리는' 것을 직접 보는 맛인데 보드 옆에 지폐가 사라진다면 아쉬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계산을 잘못하거나 까먹을 일이 없겠죠. 또​ 친구의 고액권을 몰래 훔쳐 뒷주머니에 넣거나 통행료를 내는 척만 하고 실제로 안 내는 속임수는 먹히지 않을 겁니다.

 

사실 <모노폴리>가 변화하는 시대상을 게임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AI 음성인식 이전에는 모의 전자 카드와 리더 기기로 각종 대금을 결제하는 <모노폴리 일렉트로닉 뱅킹>이 있었죠. <모노폴리 일렉트로닉 뱅킹>은 게임 박스에 동봉된 지폐가 부족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나왔는데요. 일상 생활에 보편화된 카드 결제를 게임에 집어넣으면서 편리성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노폴리>에 카드 결제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AI 음성인식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버전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상을 빠르게 반영하는 <모노폴리>를 '얼리 어답터 고전 게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시된지 80년이 넘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에는 숨겨진 역사가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요? 그 역사를 돌아봤습니다. 

# 부동산 보드게임, 원조는 <모노폴리>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모노폴리>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부루마불>이 차지하고 있죠. 그렇지만 <모노폴리>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경제 보드게임의 대표성을 갖춘 게임입니다. 그런데 부동산 보드게임의 원조는 <모노폴리>가 아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세기 미국의 저술가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력이 날로 높아져만 가는데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계속 남아있는 이유를 탐구했습니다. 그는 1879년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을 통해 그 이유를 "토지소유자들이 사회의 부를 지대(地代)로 수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토지소유자들이 약탈한 지대를 정부가 보유세로 환수하자"고 했습니다. 토지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적재화기 때문에 부동산을 가진 토지소유자들이 불로소득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 헨리 조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의 '토지가치세'는 토지소유자들의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수하자는 아이디어였죠.

 

<모노폴리> 이야기하다 왜 딴소리냐고요? <모노폴리>의 시작이 바로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1904년, 보드게임 개발자 엘리자베스 매기(Elizabeth 'Lizzie' Magie, 리지 매기)는 '토지를 공공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에 깊이 동감하며 <지주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토지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고발하는 게임으로 일종의 '교육용 시뮬레이터'였죠.

엘리자베스 매기(리지 매기)는 <지주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셉트의 보드게임을 개발했습니다. 한 손엔 <지주 게임> 다른 한 손엔 <모노폴리>를 든 그녀의 모습

땅을 사서 집을 지은 후 임대료를 받는 콘셉트는 오늘날의 부동산 보드게임과 같지만, 오리지날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임대료는 모두 정부로 귀속되며, 그렇게 세금이 모이면 모든 플레이어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가 늘어납니다. A 지역에 걸려서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그곳에 공공 임대료가 모여 공유지가 됐다면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모노폴리>, <부루마불>, <모두의 마블> 등 부동산 보드게임엔 대체로 '월급'이 주어집니다. 한 바퀴를 다 돈 것에 대한 기본적인 보상으로 알고 있는 월급은 원래 <지주 게임>에서 지주들에게 징수한 토지세를 모두가 공평하게 돌려받는 '기본소득'의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개념적으로 <지주 게임>에 파산은 없습니다. 플레이어 전원이 5바퀴를 돌면 게임이 끝날 뿐이며, 임대료를 내거나 은행에 대출을 돈조차 없는 사람은 빈민 구제소에 들어가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었습니다. <부루마불>의 사회복지기금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죠.

 

그녀는 1932년과 1939년 2번째와 3번째 버전의 <지주 게임>을 개발했고, 특허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게임은 당시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땅을 사고 팔고, 개발하는 비슷한 콘셉트의 보드게임이 많이 출현했죠.

<지주 게임>
# 대공황으로 일자리 잃은 보일러 세일즈맨, <모노폴리>로 백만장자 되다


필라델피아의 보일러 세일즈맨이었던 찰스 대로우(Charles Darrow)는 1929년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 백수가 됐습니다. 실직자였던 그는 훗날 그를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르게 할 기막힌 아이디어를 냅니다. <지주 게임>의 룰을 정반대로 틀자는 것이죠. 부동산 독점을 통한 승리를 목표로 하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입니다.

 

그는 "애틀란틱에서 보낸 휴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름때 묻은 천 위에 보드게임을 만들었다"며 보드게임 퍼블리셔 파커 브라더스(Parker Brothers)를 찾아갔습니다. 파커 브라더스는 게임에 관심이 있었지만, 플레이 시간이 너무 길었고 또 규칙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직관을 믿었던 찰스 대로우는 스스로 게임을 결정합니다. 그는 하드보드지에 게임 7,000부를 인쇄해 출판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35년, 게임의 상품성을 본 찰스와 파커 브라더스는 <모노폴리>의 출판을 합의합니다. 이후 찰스 대로우는 게임의 마스코트처럼 부자의 반열에 오르죠.

찰스 대로우

찰스의 첫 번째 제안을 거절했을 무렵, 파커 브라더스는 리지 매기를 따로 만나 <지주 게임>을 <모노폴리>처럼 바꿔 출판할 의사가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파커 브라더스는 정통성을 얻는 데엔 실패했지만 돈방석 위에 앉았습니다. 회사는 <모노폴리>의 '독점'을 위해 아류작들에게 특허소송 '고소미'를 날렸습니다. 뒷탈이 나길 원치 않았던 파커 브라더스는 매기와 협상 끝에 게임의 이름이나 규칙을 바꾸지 않는 조건으로 <지주 게임>의 특허를 500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개인 게임 개발을 계속 했고, 피커 브라더스 출판으로 보드게임 두 편을 추가로 냈습니다.

 

찰스 대로우는 '독특한 아이디어으로 성공신화를 쓴 발명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드 위에서 한 바퀴 돌며 땅을 사고, 팔고, 개발하는 보드게임'의 원조를 찰스 대로우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 <모노폴리>가 된 <안티 모노폴리>

 

때는 바야흐로 1973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경제학 교수 랄프 앤스팍(Ralph Anspach)은 <안티 모노폴리>(Anti-Monopoly)라는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모노폴리>와 기본적인 규칙은 같지만 독점 대신에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게끔 고안된 게임입니다.

 

게임에는 독점자(Monopolist)와 경쟁자(Competitor)가 있는데요. 둘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가령 독점자는 특정 지역을 독점해야 건물을 올릴 수 있지만 경쟁자는 한 가지 지역을 사기만 해도 건물을 올릴 수 있습니다.

 

<모노폴리>의 IP 홀더 파커 브라더스는 <안티 모노폴리>의 출시를 사전에 막으려 했지만, 앤스팍 교수의 고집에 게임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 파커 브라더스는 곧바로 앤스팍 교수를 고소했습니다. 양측은 1976년부터 1985년까지 긴 소송전을 벌였는데요. 저작권 관련 송사를 공부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로 등장하는 사건이죠.

<안티 모노폴리>

앤스팍 교수는 리지 매기의 사례를 발굴해 자신의 게임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법원은 1930년대 미국 북동부에서 리지 매기의 <지주 게임>을 알음알음 즐겼으며, 집집마다 다른 규칙을 사용해 플레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찰스 대로우는 변용 규칙 중에 가장 괜찮은 규칙을 골라 상업화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노폴리>의 특허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특허권과 상표권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해당 소송에서 법원은 <모노폴리>의 상표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모노폴리>의 상표권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주 게임>의 저작권 및 상표권은 보호기간이 만료된 상황이지만, <모노폴리>의 게임보드와 카드, 부속품 그래픽은 저작권과 상표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1985년, 파커브라더스는 <안티 모노폴리>의 상표권을 구매하면서 둘 사이의 갈등은 마무리됐습니다. 앤스팍 교수는 그간의 법적비용과 각종 피해를 보상받았고, <모노폴리> 브랜드의 일종으로 게임의 출판을 보장받았습니다. 파커 브라더스는 1991년 미국 최대 완구 회사 해즈브로에게 인수됩니다.

한국의 <부루마불>이나 <모두의 마블>도 '보드를 한 바퀴 돌며 땅을 사고 팔면서 상대방을 파산시켜 최종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규칙은 <모노폴리>와 같죠. 하지만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이 규칙에 저작권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서비스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씨앗사'로부터 권리를 받아 모바일 게임 <부루마불>을 출시했던 아이피플스가 <모두의 마블>의 넷마블을 고소한 적 있습니다. <모두의 마블>이  <부루마불>(2008)의 ▲게이지 바를 통한 주사위 숫자 컨트롤 ▲​랜드마크 건설 규칙 ▲​한 게임당 30턴 제한 규칙 ▲​<모노폴리>에도 없는 무인도와 우주여행 규칙을 어떠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따라했다는 것이죠.

 

2018년 대법원은 아이피플스 측에서 주장하는 '규칙'을 모두 아이디어로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저작권법은 '표현'을 보호하지,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죠. '무인도'의 경우 <부루마불>(2008)에서 먼저 사용됐지만, 당시 법원은 미세한 표현의 동일성 만으로 전체 게임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쯤 되면 지난 6월 27일, 아보카도 엔터테인먼트의 <포레스트 매니아>가 킹닷컴의 <팜 히어로 사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대법원 판결이 떠오르실 겁니다. 대법원은 게임의 선택, 배열 및 조합 등이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창작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부루마불>(2008)과 <모두의 마블> 사이의 법적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마블>
# 공유와 공정 경쟁 이긴 '독점'

 

<지주 게임>은 잊혀졌고 <안티 모노폴리>는 <모노폴리>의 독점 구조 안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모노폴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드게임 중 하나가 되었고 전자 금융은 물론 AI 음성인식까지 적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반독점과 평등을 위해 만든 게임이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을 대표하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승자가 된 <모노폴리>는 더 철저하게 자신들의 게임을 발전시키고 있죠.

 

공유와 공정한 경쟁 대신 독점이 이긴 것이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가도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상대방을 꺾어 정상에 오르는 쾌감을 즐기는 것이라 생각하니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합니다. 

 

독점을 통해 상대방을 파산시켜 단 1명의 승자가 된다는 룰은 분명 매력이 있습니다. 수백만 원이 왔다갔다하는 보드 위의 자본가가 되는 체험은 짜릿합니다.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주사위를 굴리는 것까지 말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모노폴리>류 게임이 수십 년 동안 사랑받은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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