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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나쁘다 → 일단 환자부터 고치자' 게임뇌부터 질병 논란까지. 찬성 논리 발전사

조회수 2019. 5. 23.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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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의 질병 분류 여부를 결정하는 WHO의 세계보건총회가 20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분류는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의학계 일부에서도 반대하는 이슈지만, WHO로 대표되는 주류 의학계에선 과거 게임 과몰입 이슈 때부터 지속적으로 관심 가진 이슈기도 하다. 

 

※ 게임 이용 장애와 게임 과몰입의 구분: 기사에선 흔히 게임 중독이라고도 칭하는 현상을 '게임 과몰입'으로, WHO가 정의한 기준과 동일한 현상을 '게임 이용 장애'로 표기합니다. 

 

TIG는 WHO 세계보건총회를 맞아, 게임 이용 장애 증상의 질병 분류에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 나아가 과거 게임의 정신의학적 유해성 이슈에 대한 찬성측 논리를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만약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왜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만약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면 앞으론 이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찬성측 주장을 시간 흐름대로 살펴보면, 반대측이 지적한 논리를 보강하면서도 기존 지지세력은 여전히 찬성측에 공감할 수 있게 논리를 발전시켜 온 것이 눈에 띈다.

 

 

# 게임을 하면 뇌가 망가진다? 태초에(?) 게임뇌가 있었다

 

게임 과몰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지는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런 증상을 문제시하고 나아가 게임 자체가 정신의학적으로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굉장히 오래 전부터 있었다. 초창기 이 진영의 주된 논리는 '게임 자체가 문제다'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2002년 일본에서 출간된 '모리 아키오' 교수의 <게임뇌의 공포>(국내엔 2003년 출간)라는 책이다. 모리 교수는 책에서 "사람들이 게임 즐길 때 보이는 뇌파 패턴이 치매 환자와 흡사해진다. 게임을 하면 도파민 신경계가 자극당해 쾌락을 얻는데, 여기에 내성이 생기면 더 많은 쾌감을 얻기 위해 게임을 반복하고 결국 뇌 신경회로가 굳어져 기능이 저하된다"라고 주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리 교수의 주장은 학계에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게임뇌'라는 표현은 한동안 게임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꺼내는 대표적인 주장 중 하나가 됐고, 게임뇌라는 단어도 '짐승뇌'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게임의 유해성' 주장은 많은 기성 세대들이 게임 규제 관련 이슈에 찬동하는 큰 동력이 됐다.

 

또한 그의 주장 중 일부인 "도파민 신경계에 내성이 생기면 게임을 반복하고, 그러면 뇌 신경회로 기능이 저하된다"라는 내용은 이후 국내의 4대 중독법(*) 이슈나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분류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 중 하나로 흡수됐다.

 

※ 4대 중독법: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통합 관리하자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일컫는 표현. 2013년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했다. 

 

 

 

# 게임 자체도 문제 + 과몰입 현상은 존재하니 빨리 조치 취해야 한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거워진 것은 2013년이다. 그동안 관용적으로(≠ 학술적) 쓰였던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가 법적인 영역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에서 게임 과몰입(그들의 말을 빌리면 게임 중독) 치료를 위해 업계 매출의 1%를 징수하는 법안, 게임을 술·도박·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과 통합 관리하자는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때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통계 편람, 이하 DSM-5)에 게임이 '추가 연구 필요' 항목에 실려 논란을 가속시켰다. (단, DSM-5는 2018년 버전에서도 게임 중독을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해 WHO 등 주류 의학계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때 두 법안에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는 초창기 게임뇌 주장의 근거 중 일부가 지적 받은 부분을 수정해 다시 등장하고, 최근 WHO 이슈와 관련해 의학계가 얘기하는 "문제가 있으니 일단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한 형태였다.

 

2013년, 4대 중독법을 대표 발의한 '신의진' 의원

 

당시 법안에 찬성하는 측의 주장은 크게 3개로 정리된다. 하나는 게임에 중독(?)될 경우, 뇌 기능이 악화되고 충동조절이 어려워진다는 것. 이 부분은 과거 게임뇌 주장에서 뇌 기능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흡수된 것이다. 치매 환자와 같아진다 같은 자극적인 내용이 빠지고, 쾌락 중추가 반복 자극돼 내성이 생긴다는 식으로 보완됐다.

 

다른 하나는 게임이 도박이나 알코올처럼 과도한 자극과 보상이라는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 다만 게임은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물질 중독(화학적인 작용으로 신체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 요소가 없기 때문에, 찬성측은 게임을 '행위 중독'이라고 정의했다. 

 

마지막 논리는 게임은 (술, 담배, 도박 등에 비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고, 이 때문에 게임 과몰입(찬성측 말을 빌리면 게임중독)의 폐해 또한 더 크다는 주장. 즉, 이미 게임 과몰입이라는 현상이 존재하고 다른 것이 비해 규모도 크기 때문에 일단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다만 이 주장은 앞서 말한 두 논리가 인상이 너무 강해, 찬반 양측 모두 많이 다루지 않았다)

 

2013년, 국회 공청회에서 4대 중독법에 찬성하는 패널이 발표한 내용 중 일부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례로 게임뇌 때부터 시작된 뇌 기능 변화 주장과 관련해선 ▲ 게임을 하면 오히려 전두엽이 활성화되는 등 뇌기능이 발달한다 ▲ 전두엽의 쾌락 중추는 게임이나 마약 뿐만 아니라 사랑 등 사람이 무언가 보상을 기대하는 모든 영역에서 작동한다 등의 연구 결과가 연이어 나왔다. (2013년 한덕현 교수, 2015년 강동화 교수 발표)

 

행위 중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반론이 많았다. 체내에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인과 관계가 명확한 물질 중독과 달리, 행위 중독은 사람에 왜 그 행위에 빠지는지 명확한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때문에 반대측에선 과연 게임이 게임 과몰입 증상의 진짜 '원인'이 맞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최근 건국대 정의준 교수 팀에서 10대 청소년을 약 5년 간 추적 관찰한 결과, 게임 과몰입의 주요 원인은 게임 그 자체보단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덕분에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게임이라는 주장은 대부분 논파된 상태다. 

 

2016년 공개된 정의준 교수팀의 연구 자료 중 일부 

 

업계의 격렬한 반발과 여러 반론 덕분인지, 2013년 시작된 국내 게임 과몰입 관련 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다시 제기된 게임의 유해성 이슈는 오랫동안 주류 언론과 기성 세대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리고 2018년, WHO가 일정 기준 이상의 과몰입 증상, 즉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불씨는 다시 한 번 타오르기 시작했다. 중독법 당시 나온 찬성측 논리는 WHO의 움직임에 찬성하는 측에게 다시 한 번 흡수, 발전됐다. 

 

 

# "게임은 문제 없으나, 게임 과몰입 증상은 빨리 대처해야 한다"란 주장의 효과

 

WHO는 2017년 12월,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 2018년 5월, WHO는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을 공개했고, 현재 세계보건총회를 열어 최종 결정 여부를 논의 중이다.

 

WHO가 게임 이용 장애 관련 정의를 공개하자 각국의 게임 업계에선 거세게 반발했다. 기준에 있는 '게임'이라는 단어를 영화나 드라마, 일 등 그 어떤 것으로 바꿔도 문제 없을 정도로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또한 WHO의 이야기엔 DSM-5 때 의학계 일각에서 지적한 '중독인데도 내성/금단이 없다'라는 부분은 아예 사라졌다. WHO의 정의가 게임 이용 장애라는 '현상'만 다뤘기 때문이다.

 

WHO가 공개한 게임 이용 장애의 정의

 

게임 이용 장애는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지속적 또는 반복적인 게임행동의 패턴으로 특징할 수 있다.

 

1)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시작, 빈도, 강도, 지속 시간, 종료, 상황)

2) 다른 생명의 이익 및 일상 활동보다 우선하는 정도까지 게임 플레이에 우선 순위 부여

3)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하는 것.

 

이러한 행동 패턴은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러한 게임 행동 양식이 최소 12개월 동안 분명하게 나타나는 경우.

 

이런 변화는 과거 중독법 등에 찬성한 이들, 그리고 이제는 질병 분류에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 변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찬성 측은 과거 '게임의 유해성'을 문제시했던 것과 달리, WHO 이슈에선 (원인과 별개로) '게임 이용 장애 증상이 실존하고 무척 심각하며,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근래 토론회 등에서 정신의학계 인사들이 말한 내용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찬성 입장을 밝힌 이해국·노성원 교수 등의 발언 중 겹치는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게임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게임 이용 장애 증상은 실존하고 매우 심각하다. 하루 빨리 대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질병 코드 분류가 필요하다."

 

즉,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원인'에 집중하는 대신, 실존하고 있는 게임 이용 장애라는 '현상'에 초점 맞춰 자신들의 움직임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22일 MBC <100분 토론>에 나와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에 찬성한 노성원 교수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

 

때문에 이들에겐 반대측이 주로 말하는 불분명한 인과 관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WHO의 움직임이 유발할 지 모르는 산업적인 역효과에 대한 지적도 '게임 이용 장애 증상이 실존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이들의 주장 앞에선 힘을 잃는다. 

 

오히려 이들의 스탠스는 게임에 대해 중립적인 이들에겐 '게임은 나쁘진 않지만, 게임 이용 장애 증상이 있는 것도 맞으니까. 문제 해결해야지'라며 과거보다 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한 (자녀가 게임 과몰입에 빠질까 걱정하는) 기성세대들에겐 문제 해결을 앞세우며 과거와 같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초점을 '현상'에 맞춤으로써 기존에 지적받은 약점을 해결하고 이슈 측면에서도 훨씬 더 앞서나가게 됐다.

 

물론 변화한 논리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아직 관련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일단 질병 분류를 해야한다'는 이들의 논리는 역으로 '원인조차 아직 명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질병으로 규정한다'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WHO 정도의 영향력 있는 집단이 섣불리 어떤 것을 공표했을 때의 파급력 등을 생각하면 간과할 수 없는 구멍이다.

 

허나 이런 약점과 별개로 찬성측이 ​꾸준히 논리를 보완·발전시켜 온 것은, 반박 논리 대부분이 산업적인 이슈나 중독법 시절에 머물고 있는 게임 업계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다. 찬성 측은 지속적으로 논리를 보완해 지지층을 유지·확대하는 반면, 반대 측의 논리는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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