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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친구에게 보낸 카톡, 잘 읽었습니다' 정보 감시 게임 '오웰'이 던진 메시지

조회수 2018. 10. 16. 14: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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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이 내 정보를 모두 알고 있다? '오웰' 리뷰

지나가던 행인이 당신을 붙잡고 묻는다. 

 

“XX동 XXX아파트 123호에 사시는 OOO씨 맞으시죠? 부모님과 함께 살고, 밑으로는 5살 어린 남동생이 있고요. 동생 분은 A고등학교 2학년 3반. 당신은 C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4학기 동안 다니다가 학자금 마련 때문에 휴학했군요.” 

 

정보가 곧 힘인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의미는 남다르다. 경우에 따라선 하나의 정보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기도 한다. 언뜻 이런 이야기는 나와 상관 없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걸려온 스팸 전화를 받을 때면 먼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 정보와 그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다룬 게임이 있다. 지난 2016년 출시된 <오웰>이다. 유저는 가상의 국가 ‘더 네이션’(The nation)의 조사관이 돼 일반 시민의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해야 한다. 이른바 ‘정보 사찰’의 피해자였던 내가 <오웰>을 통해 가해자가 되는 것. 

 

정보 사찰의 가해자가 된다면, 항상 ‘을’의 위치에 있던 나는 ‘갑’의 위치에 올라서서 일반인을 정복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다. 한편으론 <오웰>이 감시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감시를 옹호하는 게임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첫 번째 메시지: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이익 사이에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앞서 말했지만, <오웰>에서 유저는 가상 국가의 수사관이 돼 국민들의 정보를 감시하고 수집해야 한다. 이는 국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테러 등의 범죄를 방지하고, 이미 벌어진 범죄의 범인을 찾기 위함이다. 이 때 유저가 사용하게 되는 정보 처리 시스템이 ‘오웰’이다. ('빅 브라더'로 유명한 소설 <1984>의 작가 '에릭 아서 블레어'의 필명-조지 오웰-이기도 하다)

 

유저는 게임 내에서 ‘조언자’와 짝을 이뤄 활동하게 된다. 유저가 감시 대상의 SNS, 전화 통화, 개인 PC 속 파일들을 뒤져가며 찾은 정보를 ‘오웰’ 서버에 업로드하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조언자’가 임무 지시를 내리거나 상황을 정리해 주는 식이다. 유저는 감시 대상이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모든 정보를 캐낼 수 있다. 

특히 SNS는 수많은 개인 정보를 담고 있다.

당연히 이 같은 행위는 심각한 개인 정보 침해 행위다. 실제 사회에서도 비밀 감청(상대의 통신 내용을 몰래 보거나 듣는 것)을 하려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그러나 <오웰>에서는 영장 발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주변인들도, 필요에 따라선 불법 감청의 대상에 오른다.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주인공의 행동은 비난 받아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폭탄 테러를 예측해 내고 테러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정보와 정보 사이를 넘나들며 유력 용의자를 궁지에 몰고 가기도 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시민의 목숨을 지킨 영웅’이 된다. 

테러를 막아낸 다음날 조언자 '사임즈'가 건넨 인사.
"영웅이 돌아왔군! 아냐, 자네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어."

그렇다면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감시를 통해 범죄를 막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다. 

 

유저는 감시 상대에 대해서라면,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의 정보를 알 수 있다. 대상이 참전 군인이고, PTSD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들을 둔 미혼모이고, 인터넷에서 만난 어느 남자와 사랑을 싹틔우고 있다는 것까지 알 수 있다. 환경이 갖춰지면 개인 PC에 침투해, 그 사람이 남긴 개인적인 사진이나 인터넷 접속 기록까지 볼 수 있다. 

 

너무나도 손쉽게 얻게 되는 타인에 대한 사생활 정보는 유저에게 어떤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실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정보가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가는) 감시 행위를 경계하고 있으며,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일, 전화, 문자 등 다양한 개인 통신을 손쉽게 엿볼 수 있다.

유저는 자연스럽게 ‘이게 옳은 방법인가?’ ‘이래도 되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감시 행위가 자연스럽고 정당한 느낌으로 행해지는 <오웰>속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신의 행위가 옳지 않은 것을 이미 인지한 상태에서, 그 행위로 인해 얻은 성과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들은 유저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오며 절정을 맞이한다. ​이 때부터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해진다. <오웰>은 불법 감시를 변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있다. 다만 <오웰>이 비판하는 바를 유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의 특성을 살려 장치해 놓았을 뿐이다. 

남의 계좌를 들여다 보면서 든 생각.
'혹시 내 계좌도 누군가..."


두 번째 메시지: 

정보는 곧 '진실'인가?

불법 감시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한 <오웰>. 게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 뿐만이 아니다. <오웰>은 현대 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의 진실성과, 함부로 ‘진실’로 판명된 정보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보여준다.

 

<오웰>의 두 번째 메시지는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유저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의 판단 하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 조언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 때 조언자는 다른 정보들은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저가 전달한 정보만 제공받은 상태로 정보 전체를 파악한다. 

 

이런 정보 전달의 방식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야기한다. 

 

1.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특정 정보가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가 됨

2. 일부의 정보를 통해 전체 정보를 파악할 때, 정보의 왜곡이 발생함

 

첫 번째 문제점은, 특정 개인이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지에 따라서 상대방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게 한다. 만약 감시 대상자 A의 과거 행적을 조사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A가 SNS에서 반정부 성향의 과격한 발언을 했고, 어느 정신병원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이중인격) 진단을 받은 기록이 있다.

 

이 때, 유저는 둘 중 하나의 정보만 ‘오웰’에 업로드 하거나 두 정보 모두를 업로드 할 수 있다. 두 행위의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만약 A의 과격 발언만을 정보로 채택했을 경우 A는 반정부 성향의 사람이 된다. 그러나 두 정보를 함께 올린다면, A의 과격 발언이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의 수가 생기므로 A를 반정부 성향의 사람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오웰>에서는 위와 같은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이는 게임 내에 마련된 다양한 엔딩의 ‘분기점’ 이외에도, ‘나 개인의 선택이 타인의 삶을 결정한다’는 중압감을 주게 된다. 이를 통해 유저는 자연스럽게 정보의 위력을 체감하게 되고 사소한 정보일지라도 큰 고민을 하게 된다. 

<오웰>에서 몇몇 정보는 유저의 판단 하에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

두 번째 문제점인 ‘정보의 왜곡’도 <오웰>을 플레이하는 도중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오웰> 내 정보 시스템에 정보를 업로드 하면 조언자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일종의 코멘트를 달아 주는데, 이로 인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연출되는 것. 

 

예를 들어 보자. <오웰> 속 등장인물인 '카산드라'에게는 변호사 남자친구인 '랭글리'가 있다. 게임 도중 카산드라가 실종되고, 랭글리가 그녀를 걱정한 나머지 카산드라의 SNS 계정에 접속해 그녀의 친구인 '줄리엣'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자신이 남자친구임을 밝힌 랭글리는 줄리엣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변호사에요."

 

이 때, 유저는 "저는 변호사에요"라는 말을 '오웰' 정보에 업로드할 수 있다. 그런데 유저는 앞서 이야기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반면, "저는 변호사에요"라는 정보만 받은 조언자는 '카산드라가 자신을 변호사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랭글리가 카산드라의 계정으로 말했다'라는 정보가 빠져버려 정보의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랭글리가 카산드라의 계정으로 "나는 변호사에요"라고 말하는 장면.
<오웰>에서는 이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혹은 잘못된) 정보'를 무시할 수 있다. (Disabled 기능)

위와 같은 현상은 앞서 말한 문제점과 합쳐지면 ‘정보를 쥔 사람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결과로 향한다. <오웰>은 게임 전반에 걸쳐 이런 ‘정보’의 위력과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으며 유저로 하여금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이를 잘 설명해 주는 유명한 이미지.


게임 속 수사관이 현실 속 유저에게 던지는 경고문

<오웰>이 주는 메시지와 경고는 실제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금 내가 게임 속에서 하고 있는 감청과 감시를, 현실 세계의 누군가가 실제의 나를 대상으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대체로 무감각한 편이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적 있는 테러방지법 사생활 침해 논란, 메신저 ‘카카오톡’ 사찰 논란 등은 어느 정도 이슈가 되긴 했으나 어느새 잊혀져 버렸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정보 사찰’을 직접 겪어봤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반응의 무게는 달랐을 것이다. 

나의 정보가 이런 식으로 수집되고 있다면?

물론 실제 삶 속에서 사찰을 당하거나 해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웰>은 그런 정보 사찰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게임이 곧 현실일 수는 없지만, 게임은 TV에서 나오는 뉴스보다 훨씬 더 현실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오웰>이 최종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다. 일종의 '경고문'인 셈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만큼, ‘백견이 불여일행’이다. 백 번 보는 것 보다, 한 번 해 보는 것의 위력이 훨씬 더 강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웰>이 던지는 메시지들은 강력하다. 

 

게다가 <오웰> 속 감시 대상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락 음악을 좋아하고, 남자친구를 사귀며,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치 현실의 나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오웰>에는 감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시를 당하고 있을 것만 같은, 게임과 현실을 넘나드는 섬뜩함이 있다.

각 챕터마다 유저가 수집한 정보들을 정리해 보여준다. '이렇게 남의 삶을 들여다 봐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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