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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손님 #7 디스이즈게임 임상훈 대표의 '내 인생의 컴퓨터'

조회수 2018. 5. 8. 13: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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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IT업계 인사들의 컴퓨터와 관련된 에피소드

넥슨컴퓨터박물관 ‘내 인생의 컴퓨터’ 시리즈는 국내/외 IT업계 인사들의 컴퓨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디스이즈게임 임상훈 대표의 이야기를 인터뷰 영상과 함께 공개합니다.

# 디스이즈게임 임상훈 대표 인터뷰​

 

넥컴박: 인생 최초의 컴퓨터를 알려주세요.

 

임상훈 대표: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었어요. 당시가 아무래도 정보화가 논의되던 시기였고, 그래서 부모님이 절 컴퓨터학원에 보내주셨죠. 저는 광주에 살았었기 때문에 정보화가 수도권보다 좀 늦었고, 컴퓨터가 있는 친구들도 없었어요. 학교에도 컴퓨터가 없었던 시기였고요. 그래서 저희 집 주변에 컴퓨터학원도 없었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갔죠.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 거기에 딱 놓여있었어요. 거기서 이제 타자기를 치는 건데, 제가 그때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거든요. 조기교육, 영어교육도 없던 시기여서 Hi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BASIC을 가르쳐 주셨어요.

이 BASIC이란 컴퓨터 언어에 IF, AND (같은 명령어)가 있는데 이게 저한테는 ‘아이에프”로 읽히는 거고, ‘에이엔디’가 되는 것이어서, 외계어였죠. ‘이건 아주 어려운 거’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컴퓨터학원은 일주일 다니다 그만뒀던 것 같아요. “이건 내가 모르는 거다.” 저와 컴퓨터의 첫 번째 조우는 굉장히 좋은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대학생 때인데요.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주어진 과목의)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는데 대학교에 가니까 수강신청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수강신청을 컴퓨터로 하래요. 근데 컴퓨터가 또 무슨 터미널로 연결한 다음 서버에 연결하는 건데 이건 더 어려운 거예요. 제 개인적인 성향이 어떤 알고리즘이라던가 메커니즘을 이해했을 때 좋아하는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부딪혔을 때는 크게 낙담하는 타입이어서 또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지금 ‘섬총사’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박상혁 PD가 제 과 동기인데 그 친구가 제 수강신청을 매년 대신해줬어요. 저는 그 당시까지도 컴맹이었죠.

 

컴퓨터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둘 다 게임이었죠. 동아리방에 있던 아주 낡은 컴퓨터에 <테트리스>가 있었어요. <테트리스>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고, 기숙사에 제 방이 아니라 제 옆 방에 컴퓨터가 있어서 그 컴퓨터로도 게임을 열심히 하면서 컴퓨터와 친해졌죠.

그러면 그때 <테트리스>의 경험이 지금의 디스이즈게임을 창간할 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 좀 너무 비약인가요?

 

네, 그건 비약인 것 같고요. 하하. 디스이즈게임 창간은 매우 우연히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그 <테트리스> 건과는 직접적인 연결은 안 되지만 아주 먼 원인들 중 하나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시기가 대학생들이 두 개의 디스켓을 가지고 다니던 때였어요. V3 디스켓과 부팅 디스켓을 갖고 다녔죠. 보통 그 시기의 바이러스는 컴퓨터 부팅을 막는 종류가 많아서 학교 다닐 때 늘 이 디스켓 두 개를 가지고 다녔죠. 

 

그러다 신문사에 취직했어요. 당시 신문사도 신문기사들을 통해 정보화를 외치던 곳이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컴퓨터를 잘 몰랐어요. 그러다 선배들 컴퓨터에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바이러스에 걸려 전원이 안 켜지는 거죠. 요샛말로 ‘멘붕’한 상태였던 거에요. 우리는 기사를 써야 하는데, 이걸 처리할 사람이 별로 없는 거예요. 제가 수습사원이었는데, 디스켓 두 개를 들고 가서 부팅을 하고 “어, 몽키바이러스네요?”하고 잡으니까 신문사에서 ‘얘가 컴퓨터를 무지 잘하는 애네’라고 찍히게 된 거죠. 그래서 IT 영역을 맡는 부서로 발령이 가게 되었고요. 먼 원인으로 따지면 이제 그게 다 연결이 되는 거죠.

 

 

게임과의 인연이 깊어진 계기나 사건이 있다면?

 

제가 게임에 애정을 느끼게 된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해요. 저는 당시 신문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신림동 자취방을 안 떠났었어요. 회사가 종로에 있었는데 ‘언제든 나는 신문사를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게 게임과의 인연을 깊게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당시가 PC방이 당구장을 대체하던 시기였다는 거죠. 그 PC방들이 대부분 신촌이나 서울대 주변에 생겨났었고, 저는 낮에는 테헤란로를, 밤에는 집 근처 PC방들을 취재했죠. 

 

그러면서 게임이 급속히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죠. 이를테면 <퀴즈퀴즈>, 한게임, <포트리스 2> 같은 게임들이 당시 인기가 있었는데, 제가 찾아봤더니 관련 기사를 제일 먼저 쓴 기자가 저더라고요. 서울대 근처 PC방에 가서 그 게임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PC방 한 줄이 그 게임으로 쫙 차게 되면 제가 ‘이 게임 뜬다’하고 기사를 썼으니까요.

신문사의 조직이 1진, 2진이 있어요. 1진 선배가 소위 ‘잘나가는 것’을 하죠. 2진은 아직 뜨기 전 혹은 망해가는 것을 해요. 그래서 제게 주어진 것이 아직 뜨기 전이었던 ‘게임’과 망해가던 ‘PC 통신’이었어요. 당연히 PC 통신은 망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안 썼고요, 게임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더 신경을 쓰게 됐죠. 제 기억이 맞는다면 99년 5월 무렵에 2주에 한 면을 게임 면으로 맡게 됐었고요, 그러다 한 1년쯤 지났을 때 1주일에 한 면으로 분량이 늘면서 1주일에 3면까지 늘어났었죠. 그 시기가 99년 말부터 2000년 중반 정도까지 PC방이 생기고 초고속통신망이 확산하면서 우리나라 게임 산업 자체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처음 99년도에 취재를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주요 취재원이 PC 패키지 게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완전히 (온라인) PC 게임으로 옮겨가더라고요. 그런 시기에서 이게 산업적으로 크다 보니까 대중지에서 관련한 지면을 늘린 것인데… 제가 짬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분량을 늘려달라고 할 위치는 못 되었고요, 신문사에서 판단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디스이즈게임의 창간 계기는?

 

결정적인 계기와 장기적인 계기가 있어요. 장기적인 계기라면 신문을 안 읽게 된 점이 있죠. 제가 신문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저나 제 친구들이 신문을 열심히 읽었었거든요. 2000년, 2001년, 2002년이 되면서 저도 신문을 안 읽기 시작하는 거예요. 뉴스를 네이버를 통해서 본다던가 야후를 통해서 본다든가 하면서 제 친구들도 신문을 안 읽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사장실에 가 있었기 때문에 회사의 매출 상황을 볼 수 있었어요. 광고 지면의 매출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앞으로 신문의 시대는 끝나 갈 것이다, 인터넷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생각을 계속 갖고 있던 와중에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인생의 계기가 됐죠. ‘에잇 다 때려치울래’하고 신문사를 그만뒀어요. 그런데 신문사를 그만둔 날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소추되던 날인 거에요. 그래서 신문사 내에서는 ‘얘가 무슨 정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신문사를 그만뒀다’ 생각하는 그런 일도 있었죠.

 

 

디스이즈게임 창간 13년,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게임 산업의 역사를 재작년 정도부터 개인적으로 더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게임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을 해왔고, 디스이즈게임도 덕분에 같이 성장해왔죠. 사실 게임 산업이 속도감 있게 성장을 해온 터라 게임 산업 주변의 생태계, 그리고 주변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눈여겨볼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희도 2000년대 후반, 그리고 2010년대 초반에 굉장히 큰 위기를 경험하면서 생태계 자체가 매체와 긴밀한 연관이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러면 우리가 이 생태계가 절 잘 되게 하는데, 더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약간 방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요즘 다시 돌아보면 아까운 순간들도 많고, 굉장히 좋은 순간인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많고, 방심했던 순간들도 많아서 언젠가는 정리를 하고 싶어요. 하하 

 

아쉬웠던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우리나라 게임계의 위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게임과 관련해 말씀하신 분들은 ‘<리그오브레전드>가 한국에 인기를 끌고 모바일 혁명이 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하시는데 저는 2000년대 중반으로 보거든요. 예를 들어 이 나오던 해에 축구 게임이 열 개가 넘게 출시됐어요. 근데 다 망했어요. 그러니까 성공 확률 자체가 10%가 안 되는 시기였고요. <서든어택>이 나오고 나서 FPS가 한국에서 8-9개 나왔어요.

다 실패했어요. 저희는 그때 이런 것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죠. 이 성공하고, <서든어택>이 성공하고, MMORPG가 다 망해가는데 <아이온>이 성공했어요. 망해갔던 것, 실패했던 것은 잘 들여다보지 않고 성공했던 것들만 보니까 착오가 생겼던 것 같아요. 사실은 그 실패 원인을 제대로 되짚어 보고 생태계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그 당시에 고민했다면 좀 나았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사실 미디어가 해야 했다고 생각해요. 개별 게임 회사는 각자의 게임 성공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 경주를 했고, 공공기관이나 미디어가 그걸 관찰하면서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대안까지는 제시하지 못해도 경고의 시그널을 준다던가 해야 했는데… 저희도 속도감에 취해 있어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습니다.

 

 

좋은 게임 평론가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영화 평론과 게임 평론을 비교하거나 ‘영화판은 이런데, 게임판은 이렇다’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 비교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영화라는 장르는 두 시간 정도 (영화를) 보고 나면 글을 쓸 수 있는 장르잖아요. 근데 게임을 두 시간 하고 나서 게임에 대한 평론을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잖아요. 영화는 내가 그 영화를 안 봤더라도, 평론가가 쓴 글을 보면 대충 ‘아 이렇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장르잖아요? 게임은 절대 그럴 수 없는 장르고요. 이 장르의 속성 자체상 일반적인 영화 평론가 같은 사람이 나오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지금 시중에도 게임 평론가들이 꽤 계세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게임 평론이 눈에 안 띈다고 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쓰는 글이 ‘다수에게 공감을 못 얻어서’예요. 그분들이 글을 못 쓰신다는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을 내가 해 본 적이 없다면 이해 자체가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멈춰 있을 수밖에 없어요. 영화와 달리 확장성의 한계가 있는 것 같고요. 

 

또 다른 포인트는 제 개인적으로 게임 관련 평론이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하나는 게임 그 자체에 대한 평론이에요. 보통 루돌로지(Ludogody)나 게임학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게임의 인터페이스(interface)라든지 인터랙션(interaction), 게임의 미학적인 관점 그 차제를 보는 것이 있고요.

또 하나는 게임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는 거예요. 이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본다거나 하는 관점이 있는 것인데, 이 두 관점 다 아까 말했던 그런 문제가 있는 거예요. 세 번째는 게임 생태계를 보는 관점이 있는데, 제가 좀 아쉬워하는 부분은 이 관점이 대개 경제적인 관점이라는 거에요. 산업적인 관점. 매출은 얼마고, 해외에는 뭐가 되었고, 이런 관점으로 보는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게임판을 보는 소회, 생태계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 안목은 그냥 게임만 봐서 길러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게임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 많게, 호기심(의 대상)을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있으면 기본적인 게임 평론가의 자질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는 자신의 안목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반성하는 것은, 제가 동영상 편집을 잘 못 하거든요. 요즘 시대에 과거의 텍스트 기반의 평론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고, 텍스트 기반의 평론을 잘 쓰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른 방식의 프레젠테이션 방법들, 예를 들면 지금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내 인생의 컴퓨터'를 동영상으로 찍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 평론가나 기자가 되기에 굉장히 좋은 자질을 키우는 거로 생각해요.

 

 

임상훈 대표의 '인생 게임'은 어떤 것인가요?

 

제가 기숙사 옆방에 (컴퓨터가)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 컴퓨터에 <듄2(Dune 2)> 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제가 그 게임에 한창 빠져 있을 때가 중간고사 기간이었어요. 중간고사가 낮 2시인가 시작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옆 방에 가서 ‘잠깐 몸 좀 풀어볼까?’ 했는데 3시! 하하 그래서 부랴부랴 시험 보러 갔던 적이 있을 정도로 <듄2> 에 흠뻑 빠져있었어요.

인생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가장 빠졌던 게임은 <듄2> 를 꼽고 싶네요.

 

 

아직도 하시나요?

 

아니오, 하하

 

 

컴퓨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저는 개발자가 아니잖아요. 개발자가 컴퓨터를 다루는 방식이랑 제가 컴퓨터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데 그래서 몇 가지를 고민하다가 옛날 어렸을 때 받던 선물 상자 있잖아요. 종합 선물 상자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그 안에 뭐가 들었을지는 잘 모르는데 이제 그걸 펼쳐 봤을 때 즐거움이라든지, 실망했던 것들이 다 같이 있던 것이고, 너무 많이 탐하면 문제가 될 것 같고요.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또 다른 건 공항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Airport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마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결합한 이미지 때문인 것 같아요. 요즘 컴퓨터라고 하면 스탠드얼론(stand alone) 컴퓨터를 얘기하기보다는 대부분 네트워크가 연결된 컴퓨터인데, 제가 가고 싶은 곳을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공항에서 어느 나라로 가고 싶거나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것처럼 이제 컴퓨터에 들어가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또 하나는 ‘제2의 뇌’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찌 됐든 제 기억장치가 계속 노화되고 있는데, 컴퓨터에 그것들이 로그화되서 계속 남겨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요. 또 다양한 연산이라든지 제 생각을 정리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저의 두 번째 뇌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많죠? 하하

 

 

마지막으로, 넥슨컴퓨터박물관에 한 마디.

 

박물관은 일단 되게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계속 잘 유지되었으면 좋겠고요. 개인적인 바람이 몇 가지는 있어요. 첫 번째 바램은 넥슨컴퓨터박물관이 게임 쪽에서 조금 유니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일본의 콘솔 게임들을 모아 놓는 것은 좋은 시도이긴 하지만 일본에 가면 그런 것 있고, 미국에 가도 그런 것 있는데 예전에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바람의나라> 복원하셨던 것처럼 한국 온라인 게임, 특히 초창기 2000년대까지의 모습들을 제대로 복원해 두거나, 제대로 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 같아요.

넥슨컴퓨터박물관 <바람의나라1994> 프로젝트.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 복원에 성공한 사례다.

그게 사실 세계에서 한국이 굉장히 유니크한 영역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게임의 복원이라든지, 당시의 경험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남겨질 수 있는 공간, 그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면 굉장히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또 다른 바람은 넥슨컴퓨터박물관이 게임 업계 입장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좋게 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방향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게임이 꽤 많거든요. 이를테면, 알래스카 전통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 알래스카 부족 회의를 통해 게임 개발자들과 알래스카 전통에 관련한 게임을 만든 것이 있어요. 이라는 게임인데 세계적으로 굉장한 호응을 얻었어요. 

 

이런 시도들이 해외에서는 매우 많은데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넥슨컴퓨터박물관이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바람은 위안부 할머니 관련된 게임이라던가, 광주와 관련된 게임 같은 것들이 나오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나라의 게임이지만 월드와이드(world wide)하게 굉장히 유니크한 것이고, 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게임이어서 그런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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