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 18] "아이템 가치를 숫자로 바꾸자", 듀랑고 콘텐츠 디자인 변천사

조회수 2018. 4. 27.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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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스튜디오 양회진 콘텐츠 디자이너가 말하는 듀랑고의 아이템 밸런스

“좋은 콘텐츠 디자인은 창발과 통제의 균형입니다”

 

지난 2월 <야생의 땅: 듀랑고>(이하 <듀랑고>)에는 일명 ‘누에 튀김’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가 해결된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해프닝이지만, 당시에는 게임의 밸런스를 뒤흔든 큰 사건이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한복 제작 이벤트를 위해 지급된 ‘누에’ 아이템이 튀겨진 뒤에도 제작으로 번식(!)되는  버그가 유저들 사이에 알려졌다. <듀랑고>의 제작은 재료의 특성이 제작 결과물에 이전되는 구조인데, 튀김엔 ‘기름이 더해짐’ 효과가 생긴다. 식품으로 섭취할 경우 에너지가 크게 증가하는 특성이다.

 

튀긴 누에가 살아있다는 사실도 이상하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부분은 튀긴 누에로 새 누에를 만들어 다시 튀기는 반복 과정이 가능한 것이다. 여러번 튀겨진 누에는 고효율 에너지를 가진 ‘슈퍼 누에’가 됐다.

 

이 사건은 콘텐츠 디자이너에게 큰 교훈으로 남았다. 창발성을 강조하는 <듀랑고>라지만, 무한한 창발성은 위험하다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됐다. 6년 차 콘텐츠 디자이너이자, 2년 6개월 동안 왓스튜디오에서 일해온 양회진 디자이너가 전하는 <듀랑고> 속 콘텐츠 밸런스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왓스튜디오 양회진 콘텐츠 디자이너

# <듀랑고>의 아이템 분류 '원형'과 '속성'

 

양회진 디자이너는 본격적인 게임 디자인 소개에 앞서 <듀랑고> 속 아이템의 특징을 언급했다. <듀랑고>는 MMORPG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일반적인 게임과 달리 ‘성장’이 아닌 ‘생존’과 ‘탐험’을 내세우는 게임이다. 효율적인 정답을 찾기보다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유저가 원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방향에 가까운 게임이다.

 

그래서 아이템을 제작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망치’라는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잡이와 묶을 것 그리고 망치 머리가 필요하다. 필요한 재료에 대응하는 아이템은 하나가 아니다. 망치 머리는 돌이든 뼈든 고깃덩이든 ‘덩어리’의 속성만 가지면 된다. 손잡이 또한 뼈와 나뭇가지 상관없이 ‘막대’의 속성만 가지면 된다.

 

<듀랑고>의 아이템은 '원형'과 '속성'으로 구성되어있다. 원형은 아이템의 근본 형태로 '도끼', '과일', '바위'와 같은 겉모양에 가까운 분류다. 속성은 아이템이 가진 특징과 성질로 재질, 형태, 성질 등으로 세분된다. 예를 들면 재질은 뼈, 형태는 막대 모양, 성질은 단단함과 같은 분류다.

#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진 'FGT'의 한계

 

FGT(포커스 그룹 테스트) 단계에서는​ 다양한 속성을 가진 아이템을 이용한 제작 시스템이 수많은 파생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투입된 재료에 따라서 다른 결과물이 나왔으며, 같은 완성품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했다. 예를 들면 같은 '나무 활' 아이템을 제작할 때도 '조립'과 '제작'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다양한 아이템 종류, 다양한 가공법, 제작의 성공도와 연관돼 수많은 결과값을 도출했다. 콘텐츠 디자인은 비교적 자유로웠고, 다양한 조건과 의도에 따라 수많은 창발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명확한 한계도 있었다. 다양성에 원칙이 부족하다 보니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아이템이 변화할 수 있는지 기준을 알기 어려웠다. 이것저것 되는 건 많지만, 의미 있는 할 거리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수집이나 성장 등의 동기부여를 유도할 콘텐츠가 부족했던 시기였다.

 

제약이나 강제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양조차 많지 않아 콘텐츠 수명이 짧았다. 이 시기에는 저급/고급 의상 모두 3~4개의 가죽이면 만들 수 있었다. 일주일이면 준비된 대부분 아이템을 만들어 볼 수 있었고, 게임을 지속해야 할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창발과 통제의 균형을 생각하면, 커다란 창발에 통제는 거의 없었던 무법 시대에 가까웠다.

# 아이템에 규칙과 두께를 더한 '3차 LBT'

 

3차 LBT(리미티드 베타 테스트)는 FGT에서 문제가 된 콘텐츠 소모 속도와 규칙성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였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설계하기 위해, 재료는 가공 정도에 따라 수직적 단계로 구분했다. 예를 들면 생가죽은 '가죽 건조'를 거쳐 건조 가죽이 되고, '무두질'을 거쳐 무두질 된 가죽이 되는 방식이다. 현실과 밀접한 용어라서 쉽게 감이 오지 않지만, 게임 용어에 비유하자면 1티어-2티어-3티어 재료가 된다고 이해하면 쉽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위 재료는 고급 제작에 쓰이게 유도했다. 저급 아이템에서 고급 아이템으로 갈수록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재료가 다수 필요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고급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 더 많은 재료, 도구, 건설 그리고 시간을 찾아 나섰고 이는 콘텐츠 수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콘텐츠 소모에 필요한 시간은 늘렸지만, 고민은 계속됐다. 무작정 제작에 필요한 시간을 늘린다면 유저들은 반드시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증가하는 제작 비용과 아이템 티어 사이의 관계를 ​보다 치밀하게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어난 플레이 타임에 대한 플레이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아이템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와 뼈 막대는 ​같은 막대 모양을 가졌지만, 입수 난이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나뭇가지는 채집으로 쉽게 얻지만, 뼈 막대는 동물을 찾는 시간과 사냥 과정 그리고 채집에 별도의 도구까지 필요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채집부터 제작에 소모되는 모든 수고를 데이터로 치환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보다 명확하게 아이템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아이템 가치의 수치화 작업은 유저들에게도 제작법과 아이템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유저들은 수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호소했다. 3차 LBT를 기준으로 '개선손잡이'와 같은 특정 아이템을 만드는 단계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개선손잡이는 상위 도구의 손잡이 용도로 쓰이는 재료다. 안 그래도 많은 작업이 필요한 상위 제작에 까다로운 제조 과정이 필요한 재료가 더해지니, 유저들은 불쾌감을 느끼고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피드백을 쏟아냈다. 유저가 만들고 싶은 것은 상위 아이템인 '금속 칼'인데, 고작 손잡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플레이 타임은 늘어났지만, 선택지가 넓지 않다는 불만도 생겼다. 무제한의 상태에서 규칙을 정했지만, 그 규칙으로 인해 콘텐츠의 선택 요소나 변화 요소가 약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는 고정된 재료의 개수와 완성품의 능력치에서 기인한 지루함인 경우가 많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니 유저의 선택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CBT의 목표​ "아이템 선택지 늘리고 개성 살리자"

 

심기일전한 CBT는 유저 선택의 의미를 늘리고, 보다 개성 있는 아이템을 만들자기 위한 과정이었다. 일단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과정의 선택지를 대폭 늘렸다. 재료와 가공법, 제작법, 개조법까지 제조 과정 곳곳에 유저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줬다. 기존에 존재하던 선택지는 다양하게 늘렸다.

 

같은 재료가 제작 방법에 따라 다양한 효과로 변하는 '속성'을 추가했다. 재료의 '잠재속성'은 가벼움, 높은 밀도, 질긴 섬유 등의 모호한 수식어로 대체했다. 용도에 따라 다양한 효과로 파생되기 때문에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유추할 수 있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성능 속성'은 가공 시 발현하는 옵션이다. 무기와 의상, 건물, 음식 등으로 용도에 따라 나타나는 효과가 달라지는 시스템이다.

속성은 채집과 가공과 제작을 통해서도 획득할 수 있었다. 기존에 가진 속성에 가공법에 따라 추가되는 속성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택했다. 예를 들면 같은 건조가죽도 무두질 방법에 따라 '높은밀도', '가벼움', '질긴섬유' 등으로 파생되는 식이다. 장신구를 부착하는 '개조'도 아이템에 새로운 개성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변화는 각 채집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특정 재료를 목표로 하는 사냥과 채집 문화를 만들어냈다. 단단한 속성을 원하는 제작자는 큰 타르보사우르스 다리뼈를 필요로하고, 강풍 저항이 필요한 유저는 울프 가죽을 찾아다니는 '메타'가 형성됐다. 이는 제작자에게도 다양한 제작법을 시도하는 계기가 됐고, 노력에 따라 성취감의 정도가 달라지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메타의 형성은 일부 아이템에 편중된 선호를 불러오기도 했다.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유저들은 결국 최적의 효율을 내는 아이템을 연구했다. '회-찜-찜' '다듬기-파편가공-압축가공' 같은 정석 가공법이 유행했고, 장비에서도 회피는 버려지고 방어력 위주의 아이템이 유행하는 경우가 생겼다.

 

경우의 수는 늘어났지만, 고정된 결과값으로 인해 계산된 플레이가 가능해진 원인이 컸다. 몇 번만 반복하면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루함'이 반복됐다. 창발과 통제의 균형 차원에서 바라보면 통제가 훨씬 커져 버린 불균형 상황이었다.

# "적절한 무작위성은 게임의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다"

 

라이브를 앞두고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양회진 디자이너는 2017년 GDC(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Rewards in Video Games'라는 강연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은 게임의 보상에는 확정 보상과 무작위 보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완전한 확정 보상은 게임을 숙제처럼 만들고, 완전한 무작위 보상은 성취감을 빼앗는다는 조언이었다.

 

양 디자이너가 판단한 <듀랑고>는 확정보상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약 90%의 보상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 콘텐츠 디자인 팀은 채집물에 '무작위 잠재속성'을 추가했다. 예를 들면 기존 스밀로돈의 다리뼈에서 구현되던 '단단한' 속성의 레벨을 고정이 아닌 랜덤으로 바꾸고, '가벼움'과 '뾰족함' 속성을 추가로 얻을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불확실성은 기대와 즐거움을 줬다. 채집물을 반복 채집하는 과정도 노동이 아닌, 보다 좋은 속성을 가진 재료를 얻기 위한 게임으로 느껴졌다. 채집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 속성'도 추가했다. 이는 제작 시 무작위 옵션이 발현되는 시스템이었다. 무작위 옵션은 전투 시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해서 수요가 많았다. 희귀 속성은 플레이어의 기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달성 시 큰 성취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라이브 서비스를 대비해 추가된 무작위 요소는, 단순 반복적인 재료 수집의 지루함과 제작에 대한 기대감 부족 부분을 해소했다. 양 디자이너는 실제로 선택지의 크기는 크게 늘리지 못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대감으로 플레이 한순간 한순간이 새롭게 느껴지게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 그래서 <듀랑고>의 콘텐츠는 완성형인가요?

 

강연 막바지에는 콘텐츠 디자인팀이 작업 중인 <듀랑고>의 변화가 예고됐다. 기존 콘텐츠를 보강하는 작업은 속성, 제작법 그리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농사와 요리 부분의 다양성을 개편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신규 콘텐츠 부분은 동물 교배와 도감, 그리고 많은 유저들이 기대하는 스토리 추가 등이 될 예정이다.

 

양회진 디자이너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듀랑고>의 콘텐츠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제조법 사이의 밸런스나 콘텐츠 부족 문제, 일부 유저들에게 여전히 높은 제작 난이도에 대한 피드백은 콘텐츠 디자이너들을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일하게 하는 의견들이다.

 

그는 잘 만들어진 콘텐츠란 의미 있는 선택이 가능하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콘텐츠 디자인의 밸런스는 창발과 통제의 균형에서 온다고 믿는다. 둘 사이의 조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듀랑고>의 콘텐츠는 완벽하지 않지만, 꾸준히 균형잡힌 방향으로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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