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 18] 게임 이용 장애 논란 "개발자들, 자존감-자부심 가져라"

조회수 2018. 4. 26. 15: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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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말하는 '게임 이용 장애'

 작년 12월 20일, 해외 과학 전문지 'New Scientist'는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가 2018년부터 국제 질병 분류 11차 개정판(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이하 ICD-11)에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공식적으로 추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미국 게임 산업 협회(ESA),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게임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단체들이 잇달아 반대 성명을 내놓으면서 '게임 장애' 논란이 확산됐다.

 

오는 5월 진행되는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 안건에서 '게임 장애 질병 코드'가 포함된 '국제 질병 분류 11차 개정판'이 빠지게 되면서, 논란은 잠시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해 '게임 장애 질병 코드'가 등록되지 않을거라 확신하기 어렵다"는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정보정책과 사무관의 말처럼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거센 시기에,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2018 NDC를 찾아 '게임 장애'에 대해 강연하는 시간을 가졌다. 디스이즈게임이 그의 강연을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 '게임 이용 장애'의 기원과 변천사

 

'게임 이용 장애'의 기원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43세의 가정주부가 6개월간 일주일에 60시간 이상을 인터넷 채팅방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때문에 직업도 잃고 부부 사이가 나빠져 남편과 별거를 하게 됐다. 그런데 그는 과거 약물 중독이나 정신과 병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사례를 들은 연구자 킴벌리 영은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문제를 겪는다고 판단했고, 미국 정신의학회에 보고했다. 그때,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IMF를 거치고, IT 산업 육성이 국가 정책이 되면서 인터넷이 활발하게 보급되고,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심리학, 인문학 분야에서 인터넷 사용과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런데 문제적인 인터넷 사용을 판단할 수 있는 적당한 기준이 없었다. 학자마다 문제적인 인터넷 사용을 다르게 정의했고, 많은 인터넷 활동 중 어떤 것을 사용량 기준으로 삼아야 할 지 모호했다. 무엇보다 인터넷 기술 발전의 속도를 학자들이 따라 잡지 못하면서, '문제적 인터넷 사용'이라는 말도 구식이 되어버렸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 이용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라는 단어는 '인터넷 중독(Internet Addiction)'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인터넷 활동에는 채팅, 서핑, 쇼핑 등 다양한 부분이 존재했다. 인터넷 중독이 그 중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학자들은 정확한 타깃이 필요했다. '재수없게도' 게임이 그 타깃이 되면서, 인터넷 중독은 '게임 중독(Gaming Addiction)'으로  대체됐다. 나중에는 콘솔·포터블 게임이 제외되면서 '인터넷 게임 중독(Internet Gaming Addiction)'으로 더 좁혀졌고, 최종적으로 '중독(Addiction)'이라는 단어가 '장애(Disorder)'로 바뀌게 됐다. 


# "게임 이용 장애 연구에는 단점이 너무 많다"

 

게임 이용 장애는 DSM-5(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 포함되어 있는데, 조금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섹션 3에 등록됐다. '게임 이용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에서 '게이밍(Gaming)'은 과도한 인터넷 사용이 아니라 게임을 많이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만, '인터넷'이 붙은 이유는 '도박 장애(Gambling Disorder)'와 감별하기 위해서다. 어떤 의사들은 도박과 게임이 똑같다고 주장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진단을 내리기 위한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임을 일주일에 60시간을 해야 중독인가, 80시간을 해야 중독인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DSM-5에서 말하는 게임 이용 장애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인터넷 게임에 몰두한다

2. 게임을 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3. 게임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하고싶은 내성이 생긴다

4. 인터넷 게임 참여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실패한다

5. 인터넷 게임을 제외하고 이전의 취미와 오락 활동에 대한 흥미가 감소한다

6. 정신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과도하게 인터넷 게임을 지속한다

7. 가족, 치료자 또는 타인에게 인터넷 게임을 한 시간을 속인다

8.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완화시키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한다

9. 인터넷 게임 참여로 인해 중요한 대인관계, 직업, 학업 또는 진로 기회를 위태롭게 하거나 상실한다



여기서 핵심은 금단증상, 내성, 갈망이다. DSM-5에는 들어가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해서 WHO의 ICD-11에서는 제외됐다. 

 

내성은 오늘 술을 마셨는데, 오늘과 똑같은 기분을 내기 위해서는 내일 더 많이 마셔야하고, 그 다음 날 더 많이 마셔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게임이 그런가? 게임 시장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어떤 시기에는 MMORPG가 유행하다가 다시 캐주얼 게임이 인기를 얻고, FPS 장르가 대세로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트렌트가 계속 바뀌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한 가지만 지속적으로 하면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데 이걸 내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금단증상은 누군가 게임을 못하게 하면 짜증이 나는 걸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느끼는 짜증과 치밀어오르는 화가 금단증상일까? 사람들에게 카톡이 왔는데 5초 동안 열지 않고 참으라고 해보자. 5초를 못 참고 카톡을 열게 되면 이건 '카톡 금단증상'인가? 금단증상, 내성, 갈망 등은 중독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

 

게임 이용 장애가 DSM-5 정식 질환에 오르지 못 한 이유는 이처럼 진행된 연구들의 단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 자체가 문제인지, 인터넷을 통한 행동과 경험이 문제인지 기준이 애매하다. 또, 오랜 시간에 걸친 종적 연구가 거의 없고 단면적인 횡적 연구만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해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게임 이용 장애는 공존 질환과 너무 많이 관련되어 있다. 게임을 과도할 정도로 많이 하는 사람을 연구해봤더니 75%가 우울증, 57%가 불안장애, 60%가 강박증, 100%가 주의력 결핍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게임 이용 장애가 주 원인인지, 다른 질환이 주 원인인지 충분히 고려를 해봐야 한다. 

 

# '스토리텔링'이라는 무기로 게임을 방어하라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도박과 인터넷 게임이 같다고 말한다. 그들은 확률, 현저성(Salience), 돈 등 게임과 도박이 공유하는 요소가 많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특히, 유럽의 학자들은 게임에서의 확률을 문제시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확률이 없으면 재미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기능성 게임에서 '확률'이 필수적인 이유다. 현저성(Salience)은 어떤 것을 보고 또 봐도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 환자가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소주병을 보고 또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초록색 소주병을 보는 것조차 꺼린다. 재미있는 만화를 계속 읽을 수록 더 보고싶은 것처럼 게임은 현저성이 높다. 

 

그런데 사람의 뇌를 연구해본 결과, 인터넷 게임과 도박은 전혀 같지 않았다. 우리 뇌에는 '인지회로, 보상회로, 디폴트 무브 네트워크 등 다양한 회로가 있다. 인지회로(CogNet)는 머리를 쓰거나, 어떤 일을 해야할 때, 보상회로(Reward Ct)는 말 그대로 보상을 바라거나 필요할 때, 디폴트 무브 네트워크(DMN)는 멍 때리는 것처럼 휴지기에 활성화된다.

이 세 개의 영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뇌를 연구해봤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보상 회로는 게임보다 도박에서 더 활성화된 반면에 인지 회로는 도박보다는 게임에서 더 활성화됐다. 도박과 게임에 똑같은 시간을 소모하더라도 게임을 할 때 인지회로가 더 활성화되는 것이다. 왜일까?

 

게임에는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은 게임을 다른 것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스토리텔링은 인지회로 뿐만 아니라 작업 기억 능력도 활성화시킨다. '빨간 모자를 쓴 아이가 늑대를 피해서 할머니집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다 기억하려면 '빨간 모자', '늑대', '할머니'와 같은 키워드를 모두 기억해야 한다

 

이런 것을 기억하는 과정이 작업 기억 능력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인지회로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나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단순히 캐릭터외 외양을 예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보다 스토리텔링을 발전시키는 게 더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도박이 게임과 똑같은 그래픽을 가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도박에서 스토리를 궁금해하지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게임과 도박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 "게임 개발자들, 자존감을 지키고 자부심을 가져라"

 

WHO의 ICD-11 개정 초안에서는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게임 사용시 통제력이 약화된 게임 행동 패턴을 보인다

2. 일상 생활과 관련된 모든 활동보다 게임이 우선시 된다

3.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게임을 해야 한다

4. 행동 패턴이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영역에서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해야하며 적어도 12개월 동안은 분명해야 한다​



이 조건을 모두 불충족시키는 게임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영화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가 영화가 너무 재밌으면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일을 안 할 수도 있으니 딱 1,000만 명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다면, 과연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게임 이용 장애를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게임 플레이 자체만이 문제라면,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것은 괜찮은 것인가? 게임과 관련된 오프라인 활동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다. 

 

지금도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찬반 논문이 나오고 있고, 양측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와 관련된 토론이 자주 열리는데,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토론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찬반이 갈리지만 개발자들이 자존감을 지키고 자부심을 가져야한다.

 

마약 중독 환자가 세상에 나와서 "마약은 마약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은 그의 말에 전망이 없고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개발자는 다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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