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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치즈가 맛 없다뇨, 작은 목장 주인의 집념

조회수 2021. 5. 6. 20: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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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목장에서 갓 짠 원유로 만든 국산 치즈

출처: 더비비드
국내에서 유일하게 크림 치즈와 마스카포네 치즈를 직접 생산하는 ‘영준목장’ 나원경 대표.


“아버지는 영화 각본가, 고모는 드라마 작가입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집안에서 성장했죠. 저희 목장에서 만드는 생산물 하나하나 예술작품 다루듯 소중히 대합니다. 소는 저의 친구이자 스승이죠.”


국내에서 유일하게 크림 치즈와 마스카포네 치즈를 직접 생산하는 ‘영준목장’ 나원경 대표의 말이다. 목장 명칭은 첫째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네 자녀에게 먹일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영준목장의 치즈는 현재 백화점 등에 진출했다. 


크림치즈, 리코타 치즈, 스트링 치즈, 체다 치즈, 구워 먹는 치즈 등 다양한 상품을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한다. 요즘은 그릭요거트도 생산한다. 나 대표에게 치즈 불모지인 한국에서 치즈로 이름을 알린 법에 관해 들었다.

서울 토박이가 귀농한 이유
“소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싶어요.”

출처: 더비비드
나 대표와 아내 김주혜씨는 서울 토박이다.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의 구워먹는 치즈.


영준목장은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에 있지만 나 대표 내외는 서울 토박이다. 나 대표는 한남동에서 태어나 강남에서 자랐고 아내 김주혜씨는 여의도 출신이다. 이과 출신이면 으레 공대나 의대로 진학하던 시절, 건국대 축산학과를 택했고 귀농을 결심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농축산 일이 참 정직해요. 뿌린 대로 거두죠. 축산과 선후배 중 목장일에 뛰어든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서울 토박이인 저만 귀농을 택했습니다.”


1994년부터 목장 두 곳에서 3년간 목장장으로 일했다. 소를 관리하는 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도시 깍쟁이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악바리처럼 굴었다. “난생 처음 연탄을 때고 재래식 화장실을 썼습니다. 밤에는 낫질을 연습했어요. 전날 과음하고 출근하지 않은 동료의 빈 자리를 채우려고요. 이때 몸무게가 20kg 가까이 빠졌습니다.”

‘목장 생활=목가적인 삶’은 착각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도 그저 버텼죠.”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의 전경.


1996년 충청북도 미원면 대신리에 영준목장을 세웠다. 땅 살 돈이 없어 애써 모은 돈과 가족에게 지원받은 돈 3000만원으로 전세로 땅을 빌렸다. “옆 집 소 똥싸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작은 농장이었어요. 소 두 마리로 조촐하게 시작했죠. 농장이 자리한 산은 돌투성이 악산이었어요. 일일이 돌을 걷어내고, 울타리까지 쳐야 했죠. 할 일이 태산인데 그저 제 농장이라 너무 행복했어요.”


하지만 농장 규모가 커지면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의 젖소들.

  • 확장: 1997년 30분 거리에 있는 목장으로 이사해 드디어 집 다운 집에 살게 됐다. 목장에서 관리하는 소가 50~60마리까지 늘어났다. 하루 2번씩 3~4시간을 들여 소 젖을 짜야 해서 가족 여행도 제대로 못 갔다. 부모님을 뵈러 서울 갔던 길에 자녀들이 한강을 보고 ‘우와 바다다’라고 했을 정도다.
  • 정착: 2002년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사연을 들은 지인이 10년 분할 상환을 조건으로 자신의 땅에 목장을 차리라고 제안했다. 결국 그 해 현재의 영준목장 터로 자리잡는다. 소는 100마리로 늘었다. 15평 판넬 집에서 여섯 식구가 도란도란 지냈다.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의 수제크림치즈.

  • 재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2004년 3월 백 년 만의 폭설이 목장을 덮쳤다. 목장의 모든 시설이 와르르 무너졌다. 복구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서 정부의 폭설지원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2008년에야 복구 작업이 끝났다.
  • 사고: 4년 간 옆에서 복구 작업을 도왔던 인부가 낙상사로 목숨을 잃었다. 목장을 수리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이 스쳐 괴로웠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매일 새벽 1시까지 일할 만큼 성실했던 나 대표는 10시간을 그저 앉아있기만 했다. 방치된 소 몇 마리가 죽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소 대부분을 팔았다.
  • 재기: 다시 일어설 전환점이 필요했다. 목장일을 더 키울 자신은 없었다. 이때 눈 돌린 것이 치즈다. 아내 김씨가 아이와 주변 이웃들을 위해 틈틈이 만들던 치즈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잃었던 삶의 의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목장의 새로운 먹거리
“빵순이 아내가 네 자녀 먹이려
만들었습니다.”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 오프라인 매장.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 스트링 치즈의 먹음직스러운 자태.


자타공인 빵순이인 아내 김 씨는 재미 삼아 치즈 만들기에 입문했다. 미국에서 출간된 목장용 치즈 제조 도서를 직구해서 읽을 만큼 푹 빠졌다. 조리법대로 크림치즈를 만들어보니 깊은 우유 풍미가 느껴졌다. “아이들이 잘 먹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더니 ‘당장 팔아보라’며 난리가 났습니다.”


이후 인터넷에서 치즈를 판매하다가 2012년 한 유명 호텔에 납품하기 위해 크림치즈를 들고 갔다. 옷에 묻은 볏짚도 떼지 않고 호텔 문을 두드렸다. “식자재 구매 담당자가 시식을 해보더니 ‘너무 맛있다. 어떻게든 팔아야 한다’며 극찬했습니다. 다만 포장이 아쉽다며 당장 디자이너를 붙여주더라고요. 덕분에 현재의 세련된 포장을 갖추게 됐습니다.”

출처: 영준목장
호텔 셰프와 공동 개발한 영준목장의 리코타 치즈.


리코타 치즈는 호텔 셰프들과 공동 개발했다. “생크림은 빼고 유청만 넣어서 리코타 치즈를 만듭니다. 고단백 저지방 치즈죠. 셰프들이 이 점에 환호하더군요. 그 분들 제안으로 압착해서 리코타 치즈를 만들었습니다. 포슬포슬한 타사 리코타 치즈와는 달리 단단하죠. 염도, 수분, 강도, 거칠기 등을 두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1년 동안 리코타 치즈를 개발했어요. 개발 후 호텔 뷔페에 영준목장의 리코타 치즈가 단독 메뉴로 올랐습니다.”


국내 최고 호텔을 뚫으니 이후엔 유명 백화점과 기업이 먼저 영준목장을 찾았다. 2014년 12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의 1호점을 시작으로 13호까지 확장했다가 헌재 10개의 오프라인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국내 소비자가 가장 사랑하는 카페 스타벅스에 스트링 치즈도 납품했다. 온라인몰 등에서 지난해 매출이 2015년 대비 400% 신장했다.

까다로운 강남 소비자 사로잡은 비결
“치즈를 어묵처럼 즉석조리,
인공첨가물 無”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의 구워먹는 프레시 치즈.


사업이 안정되자 또다른 도전을 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치즈 중 하나인 생치즈(프레시 치즈)의 95%가 수입산이다. “치즈 시장 규모는 매년 17~20%씩 커지는데 수입과 국산의 비중엔 변화가 없어요. 국내 치즈 시장이 극단적으로 수입 의존적인 구조인 셈이죠. 저희가 직접 생치즈를 만들어 공급해보기로 했어요.”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은 즉석 어묵처럼 고객들 앞에서 반제품 치즈를 완제품으로 만들고 직접 시식하게 해 눈길을 끌었다.


영준목장만의 ‘신선함’ 전략

  • 당일 생산: 100% 당일 생산한 원유로 치즈를 만든다. 분유로 환원해 만든 치즈와 품질 면에서 비교 불가다.
  • 자연 공정: 타사는 우유를 한 데 모아 단백질과 성분을 보정하고 치즈를 만든다. 반면 영준목장은 성분 보정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 소와 우유의 상태에 맞춰서 시간과 온도를 조절해 치즈를 제조한다.
  • 즉석 제조: 즉석 어묵처럼 고객들 앞에서 반제품 치즈를 완제품으로 만들고 직접 시식하게 했다. 이를 위해 즉석치즈 제조에 관한 특허도 출원했다. 백화점 치즈 구역에서 영준목장만의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의 치즈에는 방부제, 착항료, 색소 등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영준목장 치즈의 차별점

  1. 방부제, 착향료, 색소 등 인공첨가물을 넣지 않았다.
  2. 우유 본연의 풍미가 강하고 짠 맛이 적다.
이런 차별점을 무기로 온라인몰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출처: 영준목장
영준목장 치즈는 순하고 담백한 맛 때문에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다. "항암 치료 후 단백질 섭취가 중요한 암 환자들 사이에서도 고기 대신 먹기 좋다고 소문 났어요."

긴 유통기한 포기한 이유

출처: 더비비드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모두가 건강하게 즐기는 치즈를 만드는 게 목표다.


나 대표는 영준목장 치즈 맛의 비결로 집념을 꼽았다. “한국에서 치즈 만들다 버린 양으로 1등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실패작들을 버렸어요.”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모두가 건강하게 즐기는 치즈를 만드는 게 목표다. “큰 기업으로부터 저희 크림치즈를 쓰는 조건으로 방부제로 유통기한을 늘리면 안 되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거절했죠. 제가 소비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건 결국 ‘정직함’이니까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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