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는 없는, 성인 3명을 지탱하는 한국산 '종이 책장'

조회수 2021. 4. 22. 09: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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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은 창업 3~5년차에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착한 물건을 착한 가격으로 만드는 곳

출처: 더비비드
'종이가구 장인' 페이퍼팝 박대희 대표
출처: 페이퍼팝
페이퍼팝의 'ㅁㅁㅂㅂ 종이책장'. ㅁㅁㅂㅂ는 책장의 생김새와 닮은 한글의 자음 미음과 비읍을 활용한 명칭이다.


“매년 190만명의 1인 가구가 이사를 갑니다. 그때 5000톤이 넘는 폐가구가 버려지는데요.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 처리돼 환경에 큰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 재활용 가능한 종이가구를 만듭니다.”


소셜벤처 ‘페이퍼팝’ 박대희 대표의 말이다. 그는 재활용 되고 유해물질이 없는 소재 ‘종이’로 착한 제품을 만들어 착한 가격에 제공한다. 책장, 의자, 선반, 침대, 펫용품 등 종이로 못 만드는 게 없다. 가볍고 버리기 쉬워서 이사를 자주 다니는 1인 가구가 주요 타깃이다. 박 대표는 어떤 계기로 종이가구 장인이 됐을까.

독일 포장 전시회와
동일본 대지진의 공통점
“이걸로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출처: 더비비드
박 대표는 종이 패키지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박대희 대표는 청소년 환경 운동단체 ‘그린 스카우트’에서 쓰레기를 줍던 어린이였다. 어른이 된 후 종이로 과자상자 만드는 일을 했다. “2009년 군 전역 후 종이 패키지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말뚝을 박았죠. 과자 패키지의 틀을 짜고 디자이너와 최종본을 만든 뒤 거래처에 납품하는 일을 했어요.”


2012년 독일 포장 전시회 출장을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종이로 만든 구조물, 종이 중화물용 완충제, 종이 건죽 내장재 등 기발한 제품이 정말 많았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 때 임시 대피소에 설치된 종이침대를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그때 충격이 다시 떠올랐죠. 종이로 상자 이상의 것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퇴근 후 홀로 연구 개발을 했다. 칼로 종이를 자르고 접으면서 초기 형태의 종이 책장을 발명했다. “서울시 창업 지원 아이템으로 선정되면서 투자금을 받았어요. 2013년부터 개인사업자로 종이 가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창업가는 ‘사춘기’를 거쳐야 한다
“시행착오 거듭하며 될 물건 찾고,
회사 정체성을 확립했죠”


사업 초창기 종이 책장 주문만 하루 300건씩 들어왔다. 생산, 포장, 배송 모두 혼자 하니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문 후 한달 뒤에 제품을 받은 소비자들이 단 악플을 보고 심각성을 깨달았죠.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어요. 일의 체계를 잡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페이퍼팝
페이퍼팝 공정 과정.

박 대표가 일의 체계를 잡아 나간 과정은 이렇다. 
  • R&D: 일반 조립 가구처럼 나사와 못으로 종이가구를 조립하고 연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종이가구용 플라스틱 연결부재를 개발해 특허도 출원했다. 기존의 볼트, 너트보다 커서 공구없이 손으로 쉽게 조립할 수 있다.
  • 디자인: 실용신안·디자인권 등을 취득했다. 2017년 종이 책장으로 환경산업기술원의 ‘에코 디자인상’을 받았다. 친환경적 디자인 제품에 주는 상이다.
  • 시장성 검증: 신제품을 기획할 때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소비자 반응을 살폈다. 지금까지 20여차례의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성과가 좋으면 양산에 들어갔다. 3~4달에 하나 꼴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출처: 페이퍼팝
페이퍼팝의 인기 상품인 종이의자. 코로나19 창궐 이전에는 소풍, 음악 페스티벌용으로 인기가 많았다.
출처: 더비비드
페이퍼팝의 코로나 칸막이.

  • 회사 미션 수립: 2018년 한 대기업이 후원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회사가 한단계 성장했다. 이때 소셜벤처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깨닫고 소셜벤처로 법인을 냈다. 소셜벤처란 사회적 기업과 달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귀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을 내면서 자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말한다. 
  • 운영 효율화: 값싼 접착제 등 회사 기조와 맞지 않는 기존 제작 방식은 과감히 버렸다. 포장재로비닐 대신 비싼 종이를 택했다.
  • 위기 관리: 지난해 코로나19 감염병 여파로 연 2만개씩 팔리던 베스트셀러 ‘야외용 등받이 의자’의 판매량이 급감했다. 하지만 재빨리 신제품 ‘코로나 파티션’을 출시해 역전에 성공했다. 플라스틱, 철 소재 회사보다 개발 기간이 짧은 덕에 가능한 일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종이의 위력
“성인 두 명 누워도 끄덕 없어요”


페이퍼팝은 ‘종이는 하중과 수분에 약하다’는 편견을 깼다. 1인용 가구가 주로 사용하는 합판 소재의 저가 가구와 비교했을 때 구입, 처분 비용도 저렴하다.

출처: 페이퍼팝
모두 종이 가구로 이뤄진 페이퍼팝 전시용 부스.
출처: 페이퍼팝
페이퍼팝의 침대 프레임 '보리'위에 앉은 박 대표.

페이퍼팝 종이가구가 튼튼한 이유
  1. 박스용 종이, 시중 골판지보다 강도가 3~4배 높은 강화 골판지를 사용했다.
  2. 일반 박스보다 섬유 조직이 많은 AP판지(올펄프)를 사용, 특수방수코팅을 적용해 물에 젖어도 닦기만 하면 원상복귀 된다.
  3.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을 이용해 하중을 분산시켰다.
  4. 책장은 180kg까지 견딜 수 있다. 침대는 최소 300kg의 무게를 지탱한다.
출처: 페이퍼팝
페이퍼팝의 서서책상.
출처: 더비비드
페이퍼팝 사무실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이 가구들.


주요 저가 가구 소재인 엠디에프(MDF), 피비(PB)와 비교

  1. MDF, PB는 나무 부스러기와 접착제를 섞어 만들어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페이퍼팝 제품은 모두 재활용할 수 있다. 단 제품에 부착된 연결부재를 분리해 버려야 한다.
  2. 일반 소형 가구를 버릴 때 2000~5000원의 폐기물 처리비용을 내야 하지만 종이가구는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3. 합판보다 가벼워 배송비가 저렴하고 이동과 보관이 쉽다.
  4. 가격이 저렴하다. 2단 책장 기준으로 페이퍼팝은 1만원대, 타사는 3만원대에 판매한다.

고양이도 좋아하는 소셜벤처
“종이가구계 이케아를 꿈꿉니다”

출처: 페이퍼팝
페이퍼팝 최고의 인기 상품 중 하나인 캣 펀치. 아마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이용자는 '고양이가 환장한다.'는 후기를 남겼다.
출처: 더비비드
페이퍼팝 제품 옆에 선 박 대표.


찾는 곳이 많다. B2B 거래로 대기업, 전시회관, 미술관 등에 종이로 만든 의자와 팝업 부스를 납품했다. “조선시대에도 종이 가구가 있었어요. 20세기 들어 값싼 소재에 밀려났을 뿐이죠. 최근 종이 가공술이 발달하고 친환경 기조가 맞물리면서 종이 가구가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혁신성과 사회적 의미를 인정 받아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프론트원과 가구 브랜드 데스커가 공동 개최한 3월 디데이(창업경진대회)에서 최종 5개사로 선정됐다. “종이 가구로 유명한 외국 기업 몇 군데가 있어요. 제품이 예쁘고 의미도 좋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라 한국에 알려지지는 않았죠. 종이는 사실 플라스틱보다 비싼 소재에요. 사람이 직접 종이를 접어야 해서 인건비도 들고요. 저희는 제품 구조를 짤 때부터 대량생산 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로봇을 투입해 공정을 자동화했고요. 덕분에 타사 종이가구 대비 3분의 1의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생활 방식을 완전히 자리잡게 하는 게 목표다. “국적과 상관없이 ‘편안함과 친환경’ 두 가치를 전달하고 싶어요. 오는 6월 일본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전 세계인들과 지속가능한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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