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전에 은행원이 있었다, 한때 최고 직업의 요즘 근황

조회수 2021. 3. 18. 15: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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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신의 직장'

디지털·비대면 서비스 확대로 은행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은행을 두고 부르는 ‘고연봉에 안정적인 정년을 보장하는 신의 직장’이 옛말이 되고 있다.  


11일 은행연합회 은행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이 지급한 퇴직금 규모는 1조3338억원으로 2019년(1조2178억원)보다 1160억원(10%) 더 늘면서 1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라인 뱅킹이 늘어나면서 은행들이 지점 통폐합에 나서고, 이에 따라 명예퇴직이 늘어난 영향이다.


국내 은행의 퇴직금 규모는 금융권의 디지털·비대면 전환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2015년 1조원을 넘어선 뒤 매년 증가 폭을 키우며 늘어나는(1조1321억원→1조1444억원→1조1674억원→1조2178억원→1조3338억원) 모습이다.


◇감축, 감축, 또 감축… 이어지는 감축 행렬

출처: 더비비드


저금리 기조와 저성장 경기 추세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어려워진 은행권은 몸집을 줄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의 은행 점포는 2019년 말 4721개에서 지난해 상반기 4613개로 6개월 만에 100곳 이상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140여 개 점포가 추가로 폐쇄된 것으로 금감원은 추산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250개에 가까운 은행 영업점이 사라진 것이다. 일주일에 5개꼴인데, 평일 기준으로 하루 한 곳씩 문을 닫은 셈이다. 2018년에 43개, 2019년에는 50개가 없어진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영업점이 줄면 은행원도 감소한다. 국내 은행 임직원 수는 2016년 8만2332명에서 작년 7만6447명으로 4년 새 5000명 이상 줄었다. 대규모 명예퇴직 행렬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4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중은행 중 농협에서 487명, 하나에서 511명이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이는 2019년보다 각각 39%, 38% 증가한 수치다. 우리은행은 명예퇴직 신청자가 445명으로 2019년 305명에 비교하면 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 명예퇴직을 단행할 예정인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규모가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이 아닌 40대의 명예퇴직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하나은행의 경우 40세 이상~55세 미만을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을 진행하는데, 지난해 퇴직을 확정 지은 인원이 285명으로 2019년 말 92명에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농협의 경우 40대 퇴직자가 2018년 37명, 2019년 19명 등으로 전체 명예퇴직 인원 대비 5~6%를 차지한다.


금융업 재편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데다, 대규모 명퇴 행렬을 보고 먼저 일을 그만두겠다고 나서는 2030 은행원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파격적인 급여와 복지 조건을 내세우며 기존 금융권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간편송금 업체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올초 전 직장 연봉보다 50% 많은 급여와 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걸고 인력 확보에 나섰다. 2018년 약 160명이던 직원 수는 2년 새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최고 실적 났는데도 쉬쉬하는 이유

출처: tvN 드라마 '아는와이프' 캡처


안정성은 줄고 있지만 ‘고연봉에 호사를 누리는 직종’이라는 눈칫밥은 여전하다. 금융업계에선 지난해 의외의 최고 실적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다. 국내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중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한 3개 지주사가 지난해에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기업들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은행 돈을 많이 빌리면서 은행권의 대출 이자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증시 호황으로 비은행 부문의 수수료 이익도 크게 늘었다.


이익이 늘었지만 직원들에게 주는 성과급은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앞서 4대 시중은행은 하나은행을 제외하고 임단협이 타결돼 기본급의 180~200% 수준의 성과급을 받게 됐다. 대략 두 달 치 월급을 성과급으로 받는 셈입니다. 연봉의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를 성과급으로 받는 반도체 업계와 비교하면 성과급이 아주 많은 수준은 아니다.


성과급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반도체 업계와 달리 은행업계는 조용하다. 은행들의 이익은 대부분 이자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주로 ‘서민들의 돈으로 이자 놀음을 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8개 금융 지주사들이 벌어들인 이자 수익만 41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판 제조업계와 달리 은행의 이익은 ‘불로소득’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성과급을 높게 받았다 하면 ‘서민 돈으로 성과급 잔치’라는 뭇매를 받기 십상이다.


◇펀드 잘못 팔면 수천만원 과징금 

출처: 더비비드


이런 상황 속에서 은행원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사모펀드 비리 사태가 반복되면서 금융 소비자 보호 제도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3월 25일 시행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은행 등 금융사가 사모펀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팔면 전체 판매액의 50%까지 과징금이 부과되는 게 대표적이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사고가 난 펀드를 5000억원에 판매했다면 해당 은행, 증권사는 2500억원까지 과징금을 물어낼 수 있는 것이다. 펀드 등 금융상품 내용도 모르고 고객에게 판매한 은행 직원은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고로 사모펀드 판매를 속속 중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시행령 발표로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1조6000억원대 손실을 낸 라임펀드는 우리은행에서 3577억원, 신한은행에서 2769억원이 팔려나갔다. 이번 시행령이 적용됐다면 우리은행은 최대 1788억원, 신한은행은 1384억원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판매사들에 제시하는 보상액은 과징금과는 별도이기 때문에 판매사 입장에선 번 돈은 물론 창구에서 판 전체 판매액보다 더 많은 돈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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