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학년 40명에게 창의성 테스트했더니 의외의 결과

조회수 2021. 1. 8. 10: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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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한국창의성학회장(서울대 경영대 교수) 인터뷰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스타트업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 중 하나다. 대세 산업인 사이버 보안,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분야에 좋은 기업이 많다. 인구 800만명에, 면적은 한국의 경상도 크기에 불과한 이 작은 나라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허브가 됐을까. ‘창의성 기반 교육’ 때문이란 게 한국창의성학회를 설립한 박남규 회장(서울대 경영대 교수)의 얘기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창의적 사고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많이 받는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개와 고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질문을 두고 45분 동안 토론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디귿자(ㄷ)로 둘러앉아 열심히 토론한다. 말수가 줄어들 때쯤 선생님은 질문의 조건을 살짝 바꾼다. 비 오는 날 싸운다면, 혹은 부엌에서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언뜻 말도 안되는 질문을 놓고 토론하는 것이 수업의 전부다.

출처: 창의성확회
강의하는 박남규 회장


한국창의성학회는 한국 사회 전반에 창의성 교육을 확산시키기 위해 서울대 16개 단과대학 교수 44명과 다른 주요 대학 교수 23명이 모여 만든 학회다. 이름이 학회지만 스타트업처럼 움직인다. 8개 영역(언어·논리, 수리·공학, 공간·도형, 예술·창작)과 23개의 지표로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 능력을 평가하는 창의성 진단 서비스(CTS·Creativity Testing Services)를 개발했다. 지금까지 총 1만8000여명이 테스트를 봤다. 테스트 결과를 모아 AI 기술과 결합해 사고 유형별 맞춤형 학습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스라엘 못지 않은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고 장담하는 박남규 회장을 만났다.


◇삼성이 애플보다 순이익이 작은 이유


박남규 회장은 경영학자로서 삼성전자와 애플에 대해 연구하다 창의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팟(iPod)이 히트를 쳤던 십수 년 전부터 연구를 했어요. 그때 벌써 애플이 삼성전자와 비교해 매출은 훨씬 적은데, 순이익은 3~5배 많더군요. 그 차이는 창의성에서 나온다는 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애플의 조직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움직이는데, 삼성전자는 그렇지 못한 거죠.”

출처: 더비비드
애플 로고와 삼성 갤럭시 폴드


-삼성전자와 애플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창의성의 기본 매커니즘은 콤비네이션(combination·결합)입니다. 애플의 아이팟은 음악 재생기와 아이튠즈를 결합한 거에요. 초기 아이폰은 휴대폰과 아이팟을 결합한 거죠. 그 아이디어는 조직 자체에 결합의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두 회사가 각자 10개 팀을 추려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비교해 볼까요.


애플은 10개 팀이 낸 아이디어 중 가장 좋은 3개를 고른 뒤, 이걸 다시 전체 10개 팀에게 던지는 방식입니다. 애플의 아이디어 경쟁은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아이디어들을 지속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창의성에 날개를 달아주는 시스템이죠. 반면 삼성은 10개 팀 중 좋은 아이디어를 낸 3개 팀만 살려두고, 나머지 7팀은 탈락시키는 시스템입니다. 아이디어 콤비네이션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죠.”

출처: 창의성학회
박남규 회장


-융합의 가치는 꼭 IT산업만의 얘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융합입니다. 미래 산업의 핵심은 서로 다른 A와 B를 융합해 새로운 결과치를 만들어내는 거죠. 한국의 바이오 산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도 의학, 한방, 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노하우를 결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합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창의성은 결합, 통합, 변형 이라는 융합과 관련된 세 가지 핵심 테마를 가능케 하는 매커니즘입니다.”


◇다시 전공으로 돌아간 서울대 건축학과 4학년

출처: 더비비드
서울대 졸업식


박 회장은 경영학자 이전에 교육자다. 평소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한국 교육의 현실에 회의가 많았다. 한국 대학 입시의 기준이 되는 서울대의 교수로서 자책감도 있었다.


“창의적 사고 역량을 갖고 있음에도 잘못된 교육 때문에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을 수없이 봐왔어요. 창의성과 관련한 자존감도 무척 낮죠. 서울대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큐가 높고 학교 성적을 잘 받는 학생도 스스로 갖고 있는 잠재 역량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식, 주입, 암기 위주의 한국식 교육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현실이죠.”

출처: 더비비드
뒤집어진 서울대 로고.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뒤집어 볼 줄 아는 사고도 중요하다.


건축학과 4학년 학생이 전공을 포기하고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며 박 교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꼭 하고 싶은 게 건축학인데, 그렇게 멋진 전공을 왜 포기하려 하냐고 물었어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려면 창의성이 뛰어나야 하는데, 본인에겐 그런 역량이 없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일단 창의성 진단을 해보고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검사를 했더니 창의적 사고 역량이 100점 만점에 97~8점이 나왔어요. 엄청난 점수죠. ‘너 이렇게 멋진 애’라고 격려했더니, 결국 그 학생은 건축학 공부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출처: 더비비드
서울대 정문


일부 학생의 얘기가 아니다. 박 회장은 서울대 1학년 학생 40여명을 대상으로 창의성 진단 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객관적 지표인 창의적 사고 역량이 뛰어난 학생들도 주관적 지표인 자존감을 나타내는 점수는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창의적 사고 역량 점수는 70~80점대가 나오는데, 자존감 점수는 30점대에 불과한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 관계자들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니다. 예전에는 일하다가 혼나면 ‘업무 때문에 혼나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요즘 신입사원들은 혼나면 자존감이 무너져 내려서 다음날 돌연 출근을 안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해요. ‘너는 창의적이야’라고 청년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게 무척 시급한 과제가 됐습니다.”


◇이스라엘 랍비 청년이 하얀 종이 들고 한 말

출처: 더비비드
이스라엘 한 가정의 자녀 교육 모습


한국과 정반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이스라엘 청년들은 다르다. 박 회장은 이스라엘 랍비(rabbi·율법교사에 대한 경칭) 두 명을 서울대로 초청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두 랍비는 각각 26, 27살로 박 회장이 서울대에서 만나는 학생들 또래였다.


“랍비들이 대뜸 하얀 에이포(A4) 용지 한 장을 들고 이 종이가 왜 빨간색, 파란색인지 입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교실로 들어오는 태양 광선이 언뜻 색깔이 없어 보여도 그 안엔 7가지 색깔이 숨어 있으니, 하얗게 보이는 종이도 알고 보면 빨갛고 파랄 수 있다는 기초 과학 상식 얘기를 하더군요. 아주 기초적인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창의를 만들어낸 겁니다. 두 젊은이의 자신감이 참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더군요.”

출처: 창의성학회
창의성학회 현장


한국창의성학회는 한국 청년들이 자신감있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것이다. 뜻을 함께할 서울대 교수 40여명을 모으는 데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 교육이 바뀌려면 서울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했더니 대다수가 공감했다. 심리학, 법학, 조선해양공학, 재료공학, 치의학, 의류학 등 수많은 분야의 교수들이 학회에 모였다. 창의성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한 기업들도 함께 하고 있다. 밀리, GS홈쇼핑, 블랙록자산운용, 두하우컨설팅, 박영사 등이 대표 개인이나 법인 자격으로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창의성 진단 서비스


한국창의성학회는 창의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Unprecedented) 독창적(Unique)이고 실용적(Useful)인 산출물, 혹은 프로세스를 비교 대상 집단보다 먼저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는 지식, 주입, 암기 위주의 교육 하에선 나오기 어렵다. 성적이 창의성과 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실제 학교 성적이 낮지만 창의적 사고 역량이 상위 30%에 속하는 학생이 많다.

출처: 디캠프
디캠프 디데이에서 발표하는 박남규 회장


박 회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공부를 잘하는’ 인재는 30%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한국의 교육을 창의적으로 바꾸고,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창의적 정체성이 넘치도록 만들어, 학교 성적으로 1등과 100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젊은 인재 100명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창의성학회는 창의력 측정을 위해 ‘창의성 진단 서비스’(CTS)를 개발했다.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진단한 뒤, 그 결과를 AI 기술로 가공해서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다. 창의적 사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공교육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온·오프라인 교재를 출간할 계획입니다.”

출처: 디캠프
박남규 회장


CTS는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고 알맞은 직무에 배치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아이큐 같은 지표로 직무 배치를 하면 직원들은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회사는 높은 퇴사율로 고전해야 합니다. CTS를 해보면 7가지 직무에 대한 사고 역량 적합도가 수치로 나옵니다. 직원 개개인의 역량에 적합한 일을 하게끔 직무 배치를 할 수 있죠. 서로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창업경진대회에 나간 학회


학회로서는 특이하게 CTS로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주최한 디데이(창업경진대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학회를 넘어 하나의 기업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CTS의 타깃은 전세계다. 창의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교육 관련 종사자와 기업 HRD 종사자들을 잠재 고객으로 보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주요 국가에 ‘Academy of Creativity’와 ‘Journal of Creativity’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상표권을 출원해 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출처: 고려대
대학 도서관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창업해서 1조원을 벌어도, 지금으로선 이 학생이 서울대에 입학할 방법이 없습니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으면 ‘광탈(광속 탈락)’이죠. 이런 현실이 과연 정당한 걸까요? 교과 과정을 덜 배웠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지닌 다양한 창의성을 찾아내, 스스로 소중한 인적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년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인적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백승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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