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목포 유랑, 맛과 낭만

조회수 2019. 10. 7. 08: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유달산 기슭의 원도심을 거닐며 굴곡진 항구도시의 역사, 아프고도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주했다.

경사진 골목을 따라 낡은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손바닥만 한 슈퍼엔 불량식품과 옛날 포스터가 가득하고, 연둣빛 포니 택시를 지나니 1980년대 교복 차림의 젊은 여행객들이 사진 찍기에 한창이다.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풍경. 언젠가, 어떤 영화에선가 본 것도 같은 풍경. 여기는 늦여름이 우악스럽게도 버티는 남도 끝자락, 지금 목포에서 가장 뜨거운 관광지 중 하나인 ‘연희네 슈퍼’ 앞이다. 

개인적으로는 목포를 맛의 도시라 각인한 지 오래다. 온갖 산해진미를 품은 바다와 평야, 철마 다 쏟아지는 신선한 먹거리는 이 도시의 정교한 이정표와도 같았다. 온종일 먹고 또 먹어도 부족한 남도 미식가들의 성지. 최근 목포가 ‘레트로 여행지’로 뜨고 있다는 소식은 그래서 꽤나 인상 깊었다. 분주한 부둣가를 서성이며 ‘항구의 낭만’을 외치다 낙지탕탕이와 꽃게살비빔밥만 먹고 떠나도 여행자의 본분은 다한 거라 믿었던 이 도시에 언제부터 ‘힙하다’란 단어가 따라붙기 시작한 걸까. 유달산 자락에 국내 최장 거리의 해상케이블카가 개통한 9월, 추석 연휴를 고작 하루 앞두고 나는 끝내 목포로 향했다. 

원도심 레트로 여행 문화관광해설사와의 만남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 앞에서 이뤄졌다. 널찍널찍한 도로마다 카페와 상점들이 빼곡히 도열한, 한눈에도 복고적 감성이 짙은 원도심 한복판이었다. “일대가 전부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돼 있어요. 대한제국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목포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공간이죠."

"특히 이 곳 번화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의 핵심 동네라 일본식 적산가옥과 상가주택이 여럿 남아 있어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목포근대역사관도 1920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 지점으로 세운 건물이고요.”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시작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은 한동안 막힘이 없었다. 그가 왜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하고자 제안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풍경 아래 감춰진 막연한 불편함에 대해서도. 

목포의 원도심,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 상업의 중심지였던 번화로. 오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밴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의 가장 번영했던 시절로 거슬러 오르는 통로였다. 실제로 조선 말기만 해도 무안현에 딸린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목포는 1897년 개항 이후 식민지 거점 도시로 이용되며 무섭게 성장했다. 호남의 미곡과 면화가 목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 갔고, 일본의 가공품 역시 목포를 통해 내륙으로 운반됐다. 그 집요한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공간이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다. “일본이 한국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예요. 1999년 이후 폐허처럼 방치돼 있던 건물을 개보수해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시켰죠. 한때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으로서 그 역사성과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개항 이후 목포의 역사, 주요 지역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무수한 사진들을 감상한 뒤, 역사관을 나와 본격적인 거리 산책에 나섰다. 물기 가득한 햇살 아래, 세월을 잔뜩 머금은 가옥과 상가주택이 저마다 문구점이며 식당, 카페, 갤러리 등으로 변모해 있었다. 1897 개항문화거리의 명소인 빈집 갤러리 ‘사슴수퍼마켙’을 구경하고, 며칠 전 문을 열었다는 카페 ‘목포 1897’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이켠 뒤 드디어 목포 다크 투어리즘의 하이라이트 코스로 향했다.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줄기 아래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르네상스양식의 우아한 벽돌 건물.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며 최근 여행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이곳은 과거 목포일본영사관으로 쓰인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이다. 금방이라도 드레스 차림의 아이유가 나타날 것 같은 동화적 외관, 총 7개 주제로 구분된 전시물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시선을 끈건 건물 앞에 홀로 앉은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가녀린 소녀의 깊은 눈매, 주먹을 꼭 움켜쥔 두 손이 난폭했던 침략자들의 흔적 위로 묵직한 여운을 채우고 있었다. 1897 개항문화거리 산책은 목포역 방향으로 계속됐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번화가였던 해안로에 접어들자 풍경이 한층 고즈넉해졌다. 드문드문 일본인 상가주택이 옛 모습을 지키고 있을 뿐, 얼핏 봐서는 흔한 항구도시의 원도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쯤 색이 빠진 건물과 오래된 서체의 간판들, 명절을 앞둔 탓인지 인파가 드문 거리는 낯선 이방인의 여정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1920년대 조선인 모자 장인이 운영한 ‘갑자옥 모자점’이나 일제강점기의 화물 창고였던 ‘붉은 벽돌창고’ 사이 사이, 역시나 멋스러운 카페와 공방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산책의 마지막 거점은 오거리. 과거 일본인 거주지와 조선인 거주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크고 작은 분란이 끊이지 않던 장소다. 물론 그 피해자는 대부분 조선인이었을터. 사연 많고 곡절 많은 옛 번화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분노의 역사든 굴욕의 역사든 잊지 않고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내가 이 시국에 굳이 목포를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오후 6시경,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초원음식점’의 갈치찜을 맛본 뒤 항구도시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지인에게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목포 최고의 일몰 포인트는 유달유원지 남쪽의 신안비치호텔 앞. 

아니나 다를까, 이내 목포대교와 해상케이블카가 맞닿은 탁 트인 바다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빠르게 시야를 물들이는 어둠 너머, 목포대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던 케이블카도 저마다 빛을 밝히고 나섰다. 안개에 가려 일몰이 보이지 않던 그날, 목포의 밤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왔다. 


목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가는 길 KTX를 타면 서울역에서 목포역까지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자가용으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4시간가량 소요된다. 

유달산

목포9경 중 1경이자 목포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 정상부 곳곳에 운치 있는 정자가 자리하는데, 원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표적 전망 포인트다. 

LOCATION 전남 목포시 죽교동 산27-3

연희네 슈퍼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에서 주인공 연희가 살던 달동네 구멍가게의 촬영지. 촬영 당시 소품을 그대로 재현해 전시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LOCATION 전남 목포시 해안로127번길 14-2

옥단이길

목포 개항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조선인 마을을 관광 루트 테마 거리로 엮었다. 100년의 역사를 품은 채 목원동의 주요 명소 20곳을 연결한다. 

WEB youth.mokpo.go.kr/tour/theme/okdan

초원음식점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갈치 요리 전문점. 갈치찜과 꽃게무침덮밥이 대표 메뉴이며, 특히 갈치찜의 경우 목포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먹갈치만 사용한다. 

LOCATION 전남 목포시 번화로 37-6 

류현경(프리랜서)

사진 전재호

취재 협조 목포시청 www.mokpo.go.kr

중화루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 메뉴는 목포식 유니짜장인 중깐. 가는 면발의 부드러움과 짜장 소스의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LOCATION 전남 목포시 영산로75번길 6 

독천식당

목포에서 낙지 요릿집을 찾으면 현지인 셋 중 둘은 추천하는 곳. 목포시가 인증한 목포 음식 명인의 집으로, 낙지육회탕탕이와 낙지비빔밥이 특히 인기다. 

LOCATION 전남 목포시 호남로64번길 3-1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