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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커피의 정원, 베트남 달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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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땅의 달랏으로 떠났다. 푸른 하늘과 청량한 공기까지. 서울을 떠난 도시인에게 최적의 도피처였다.

감각의 달랏

여행은 다양한 감각으로 기억된다. 달랏의 자연을 거닐며 여행의 순간을 오감에 아로새겼다.

달랏. 왜인지 모르게 말장난을 치고 싶게 만드는  이 단어의 유래로 2가지 유력한 설이 있다. 하나는 베트남의 소수민족, ‘랏족의 후예’라는 것이고, 하나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라틴어 애칭의 약자라는 설이다.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신선함을”. 2가지 모두 설득력 있으나 후자 쪽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라틴어 애칭의 뜻을 곰곰이 보면 달랏을 관통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청명한 도시. 꽃과 신선한 커피, 솔 향이 지천에 널린 곳. 이런 곳에서라면 누구든 즐겁고 상쾌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영원한 봄의 도시’, ‘구름 위의 정원’처럼 별명도 하나같이 로맨틱하다. 달랏에 대한 기록은 1890년대,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를 침범하기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했을 때, 프랑스 총독은 달랏에 기차역을 세우고 별장을 짓고 골프장까지 만들며 휴양도시로 개발했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도 이곳에 3채의 별장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 이때 남겨진 건물과 시설들은 지금 리조트와 관광지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을 출발한 지 4시간 30분 남짓, 비행기 창밖으로 구 름 아래 땅이 보였다. 붉고 푸른 논밭이 조각보처럼 이어 붙어 있다. 호수로 보이는 물가 마을 조금을 제외하고는 굽이굽이 산이 솟았다. 그 산봉우리를 발아래 두고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이름 모를 작물이 자라는 밭을 가르고 낸 활주로였다. 이렇게 초록이 가까이에 있는 공항은 처음이다. 내심 놀라며, 비행기 밖으로 나섰다. 물기가 어린 차가운 공기다. 


한 달 전 다낭에 갔을 때만 해도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도 땀을 뻘뻘 흘렸는데. 내가 막 첫발을 디딘 땅이 해발고도 1500미터에 위치한 고지대임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숲과 거리가 온통 소나무 군락을 이룰 정도이니, 이곳의 낮은 온도를 실감할 수 있다. 시내로 향하는 길가엔 붉은 봉선화와 따뜻한 파란색의 수국이 줄지어 피어 있었다. 1월 초에 수국이라니, 진귀한 풍경이었다. “달랏엔 1년 내내 수국이 피어 있어요. 땅이 비옥하니까 농작물도 꽃도 잘 자라죠. 게다가 품질도 좋아서 베트남 사람들도 달랏에서 나는 채소나 꽃, 커피는 믿고 사요.”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와 매우 비슷해서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도 유명하다. 동행한 가이드가 설명을 덧붙였다. 버스가 향하는 곳은 다딴라 폭포다. 


지대가 높고 산과 계곡이 많은 달랏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여러 개 있다. 그중에서도 다딴라는 루지와 케이블카, 집라 인 등 액티비티 요소를 고루 갖춰 가장 인기가 좋다. 루지와 케이블카를 타고 차례로 내려가면 폭포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굵직한 물줄기가 바위 사이로 유려하 게 흐르다가 아래로 세차게 내리꽂힌다.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에 주위의 소음은 힘을 잃고 만다. 이게 달랏의 자연이다, 하고 보여주기에 부족함 없는 위용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소수민족인 꺼호족의 터전, 꾸란 마을이다. 프랑스인에 의해 파괴되고 잊혔다가 2011년에야 민속촌으로 복원되어 부족의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지프차를 타고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는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한다. 구소련 시절의 지프차가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물을 갈랐다. 꾸란 마을 중앙부로 들어가면 너른 잔디밭이 딸린 작은 호수가 나타나고 그 주위를 전통 가옥이 둘러싸고 있다. 기둥을 세워서 땅과 집의 바닥을 1미터 이상 띄워 지은 것이 특징이다. 베트남 중부 고산지대의 몇몇 소수민족 가옥에서 발견되는 형태다. 벽체보다 곱절은 높게 솟은 지붕은 볏짚으로 엮었다. 이 높이가 권력을 상징했다고 전해진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봤다. 지나는 사람을 알은체도 하지 않는 말과 소가 잔디밭을 유유히 걷고 있다. 


고요한 가운데 오랜만에 한참 동안이나 사색을 즐겼다. 도시 외곽으로 가면 다시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야만 감상할 수 있는 절경이 있다. 랑비안산이다. 정상의 해발고도는 약 2200미터. 구불거리는 산길을 차로 20분은 더 달려야 하는 곳이다. 도보로는 3시간이 넘게 걸린다. 고도가 높은 탓에 날씨가 흐리면 가는 길 곳곳에 안개가 자욱하다고 들었으나 내가 랑비안산을 찾은 날은 마침 해가 쨍쨍했다. 달랏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다. 연인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니 전설 속 그 장소인모양이다. 서로 다른 부족 출신의 끄랑과 호비앙이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이 산에서 함께 자살했다는 전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견될 만한 이야기 덕에 랑비안산 정상은 관광객들의 포토 스폿으로 인기다.

날씨가 좋아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커피농장, 멜린으로 향했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커피 수출국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이 커피나무를 들여와 심은 것이 지금의 초석이 됐다. 베트남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아라비카보다 맛이 쓰고 카페인이 강한 로부스타 품종을 재배한다. 하지만 지대가 높은 달랏에서는 아라비카 품종도 잘 자란다. 멜린 커피농장에서는 한 해 약 8톤의 아라비카 원두를 생산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위즐커피다. 잘 익은 커피체리만 골라 먹은 사향족제비의 배설물에서 채취하는 고급 커피다. 

이 농장에서는 한 해 200킬로그램 남짓 생산되고, 가격도 일반 베트남 커피의 2배가 훌쩍 넘는다. 그래도 베트남식 커피 드리퍼인 커피 핀으로 내린 위즐커피 한잔은 맛봐야 하지 않겠나. 단내가 감돌게 볶은 원두로 주문한 뒤 농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붉은 땅에서 자란 푸른 나무, 그 위로 더 파란 하늘이 나이테처럼 겹겹이 펼쳐진다. 햇빛이 닿아 잔잔한 금빛 물결이 이는 호수의 모습도 겹쳤다. 따뜻한 날씨, 마른 바람이 부는 소리까지 오롯이 들리는 풍경. 갓 내린 커피의 향을 맡고, 한 입 머금었다. 달랏에서의 오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CITY
달랏 도심 여행자를 위한 시티투어 가이드

인구 35만 명의 작은 도시 달랏. 시내 곳곳에 숨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탐방했다.


1. 달랏 기차역

프랑스 식민지 역사의 상징이자 달랏 관광의 아이콘  같은 곳. 1903년 공사를 시작해 호찌민까지 연결하는 데 무려 30년이나 걸렸다. 산악 지형에 길마저 험한 까닭이다. 기차역은 뾰족한 지붕을 얹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창을 꾸몄다.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이다. 역사 내 바닥, 매표소 등 대부분의 시설이 초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에서는 이를 보존하기 위해 기차역을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세월이 오래 흐르긴 했으나 여전히 눈길을 끌 만큼 아름답다. 산 아래 마을과 달랏을 잇던 열차 운행은 중단되었고, 하루 5회 린푸옥 사원까지 오가는 관광열차만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승차 인원이 10명 이하일 경우에는 취소된다. 역사 안에는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1964년, 베트남전쟁 도중 공격을 받고 파괴되기 전까지 이 높은 도시와 외부를 무던히도 드나들었을 것이다. 이곳에 들른다면 아름다운 모습 뒤에 숨겨진 달랏의 지난한 시간들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2. 죽림선원

동남아시아에서 대승불교를 믿는 나라는 베트남이  거의 유일하다. 죽림선원은 1994년 건축된 대승불교 선원으로, 주변 산에 폭 싸인 듯한 모습이다. 선원 뒤편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 바로 입구로 연결된다. 거의 10분 동안 울창한 소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지는 풍광이 절경이니 시간을 들여 찾아볼 것을 권한다. 죽림선원의 ‘선원’은 승려들이 모여 공부하고 참선하는 장소로 종교 의례와 행사를 진행하는 ‘사원’과는 그 목적이 다르다. 선원 안을 오가는 승려들이 경건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서인지 꽃과 풀이 소담하게 잘 가꿔져 있고, 적막하다고 표현할 만큼 조용하다.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다 보면, 멀리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맑은 소리가 장애물 없이 귀로 흘러드는 기분이 든다. 

3. 크레이지 하우스 

베트남 마지막 수상인 쯔엉진 수상의 둘째딸인 항응아가 모스크바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베트남으로 돌아와 남긴 야심작이다. 1990년도에 건축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관광객의 입장료 수입으로 공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기존 건축의 틀을 완전히 깨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에 비추어본다면 합격점이다. 외부는 가시덤불이 둘러진 성의 요새 같다. 고드름처럼 흘러내린 외벽도 덕지덕지 붙어 있다. 입구로 들어서 무작정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안으로 이어지는가 싶다가도 바깥으로 나와 있고, 이내 지붕까지 오를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와중에도 근사한 자태를 뽐낸다. 과연, 베트남의 가우디라는 별명이 붙을 만한 세기의 역작이다. 내부에는 총 10개의 방이 있는데,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잊었던 상상력까지 자극하는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4. 야시장

동남아 여행의 화룡점정은 역시 야시장이다.  한산하기만 하던 시내가 밤만 되면 인파로 북적이는 것도 야시장 덕분일 터. 달랏의 야시장은 도심 가운데 쑤언후엉 호수와 바로 마주하고 있다. 호아빈 광장 가득 노점상이 들어설 만큼 그 규모가 크다. 싼 가격의 옷과 신발, 평범한 여행 기념품을 지나쳐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다채로운 풍경이 눈길을 끈다. 맛 좋기로 소문난 달랏의 고구마와 옥수수를 직화로 구워내는 노점이 단연 인기다. 현지인들은 딸기를 비롯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한아름씩 품에 안고 시장을 나선다. 반짱(라이스페이퍼)에 달걀을 풀어 올리고 각종 소스와 토핑을 얹은 반짱느엉도 달랏의 명물이다. 반짱느엉 노점은 광장 초입부터 즐비하니,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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