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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소비, 리셀러 … 명품이 ‘가격 배짱’ 튕기는 이유

명품 브랜드와 가격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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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브랜드가 곧 가격을 올릴 거라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앞다퉈 브랜드 매장 앞에 줄을 섰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득템’하기 위해서다. 차익을 노리는 리셀러(reseller)들도 행렬에 동참했다. 해마다 서너 차례 가격을 올려도 그때마다 반복되는 풍경, 명품브랜드 업체들이 가격 인상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지난 5월 13일,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엔 긴 행렬이 늘어섰다. 그중엔 몇시간씩 기다렸다가 입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딱 한곳, 프랑스 명품브랜드 샤넬 매장이었다. 그들은 왜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고 훤한 대낮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백화점 앞에서 진을 치고 서 있었을까.

그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튿날 샤넬은 국내 판매되는 주요 제품 가격을 20% 가까이 인상했다. 632만원이던 샤넬 ‘클래식 플랩백(스몰)’은 769만원으로 올랐다. 하루 새 무려 137만원 오른 거다. 샤넬 ‘클래식 라지백’은 792만원에서 923만원으로 인상됐다. 그동안 40만~50만원 선에서 인상돼 오던 클래식백의 가격은 그때 131만원이나 올랐다.

샤넬은 지난해 11월에도 3~13% 폭으로 가격을 끌어올린 바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또 한번 오르지 않으리란 법이 없단 얘기다. 그렇게 되면 올해 초 600만원대였던 가방은 800만원으로, 700만원대였던 가방은 1000만원대로 올라설 수도 있다. 

5월 13일 그날 사람들이 샤넬 매장 앞에 진을 쳤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품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우스꽝스러운 불문율 때문이었다.

7월 1일엔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불가리’가 신혼부부 결혼반지로 잘 알려진 ‘비제로원’ 라인을 비롯해 일부 제품 가격을 10% 인상했다. 앞서 4월 15일 일부 제품의 가격을 3%가량 인상한 데 이어 채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10월 가격을 10% 올렸던 크리스챤 디올도 7월에 한번 더 가격을 인상했다. 이번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0~12% 폭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다.

디올의 스테디셀러인 ‘레이디 디올’ 미디엄 백은 550만원에서 620만원으로 12.7% 뛰었다. 레이디 디올 미니백은 445만원에서 510만원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샤넬과 디올뿐이랴. 루이비통·구찌·프라다 등 명품브랜드도 너나 할 것 없이 가격표를 바꿔 달았다.

가격 인상만 벌써 몇 번째

업계 관계자들은 “명품브랜드가 상반기에 봄 결혼식 시즌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올렸다면 하반기엔 가을 결혼식 시즌을 앞두고 또 한번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마다 비슷한 패턴으로 명품브랜드의 가격이 인상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엔 주얼리와 시계 브랜드가 가격을 인상했거나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다. 프러포즈 반지로 유명한 티파니앤코는 8월 25일 주요 주얼리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가격이 평균 7~11% 올랐다.

예비부부들 사이에서 웨딩밴드로 인기가 많은 까르띠에는 9월 1일부터 시계류와 주얼리 모두 가격을 올린다. 인상폭은 2~6%일 것으로 보인다.

가격을 올릴 때마다 업체들은 “본사의 가격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명품브랜드의 글로벌 본사는 해마다 가격을 올린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해외에선 한 자릿수 인상이 주를 이루는 데 한국에서는 가격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너무 크다”고 꼬집는다. 그럼에도 명품브랜드 업체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가격을 올려왔고, 그 덕에 매출도 꾸준히 증가세를 띠고 있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2018년 966억원이던 매출이 2019년 1869억원으로 두배가량 늘었다. 티파니코리아도 매출이 해마다 증가세다. 2018년 2370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814억원으로 늘어났다.

명품브랜드의 멈추지 않는 상승세는 백화점 매출에서도 엿볼 수 있다. 5월 기준 백화점 매출 증감률(전년 동월 대비)을 보면, 비식품군에서 잡화(-25.5%), 여성캐주얼(-32.4%), 남성의류(-15.8%), 아동·스포츠(-12.2%) 등 어느 것 하나 재미를 못 봤다. 반면 해외유명브랜드의 매출은 같은 기간 19.1% 증가했다.

합리적 판단 사라진 소비

한쪽에선 명품브랜드의 가격 인상이 보복소비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나 쓰려고 계획해 뒀던 예산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게 되자 “예물이라도 비싼 거 사자”라는 예비부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유가 그 한가지뿐일 리 없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몇년 전부터 확산하고 있는 리셀(re-sell) 문화도 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무슨 말일까.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가격이 오를 예정이라고 하면 거기서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사람(리셀러)들이 등장한다. 적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같이 취업도 안 되고, 용돈벌이도 어려운 상황에선 그것으로도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얻는 게 가능하다. 명품브랜드 업체 입장에선 리셀이 되든 그렇지 않든 그들 덕에 제품을 판매하는 격이니 반갑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리셀러가 업체들의 가격 인상 부담을 덜어주는 셈이 되고 있는 거다.”

허경옥 성신여대(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 교수는 명품브랜드로 몰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려했다.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소비라고 보긴 어렵다. 코로나19로 여행도 못 가고, 사는 재미도 없으니 명품을 사는 것으로 재미를 추구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허 교수는 그러면서도 “이것이 결코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며 “극소수의 충동적인 소비가 보편적인 것처럼 비쳐 대중의 선택에 혼란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연이은 가격 인상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명품 소비. 그 안에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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