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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 월마트 간판이 없는 진짜 이유

세계 각국 유통규제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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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선 대기업에게 유통시장을 개방했을까. 그렇다면 미국 뉴욕 맨해튼엔 왜 월마트 간판이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보고서가 있다. 지난해 5월 서울시가 국민 세금을 들여 제작한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이다. 대형유통채널을 규제하는 각국의 정책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이른바 세계 각국의 유통규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보고서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해외엔 유통기업을 이토록 옥죄는 법이 없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복합쇼핑몰의 출점ㆍ영업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다. 해외 선진국은 유통 관련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추세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설명을 들어보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름에 유통을 붙여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조치들을 따로 만들어 둔 법을 외국에선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유통산업발전법과 직접 비교할 수 없을 뿐, 외국에도 유통 대규모점포를 규제하는 장치는 숱하게 많다. 특히 도시계획 관점에서 대규모점포의 진입 과정을 까다롭게 했다. 어찌 보면 짓고 나서 규제하는 우리나라보다 강력한 규제인 셈이다.”


이런 사례를 잘 정리한 자료가 있다. 지난해 5월 발간된 ‘대규모점포 도시계획적 입지규제방안(이하 보고서)’이다. 총 226쪽으로 구성된 이 자료는 서울시가 연구용역을 발주해 지난해 5월 만들어졌다. 세금 8000여만원이 투입됐다. 


목적은 다음과 같다. “대규모점포 입지규제 관련 해외사례 및 타국가정책조사 등을 통한 시사점 도출, 국내도입시의 예상효과 및 문제점 연구.” “현행 국내 대규모점포 관련 제도 문제점 및 보완방안 마련.”


이 보고서의 결과는 흥미로웠다. 영국ㆍ일본ㆍ미국(뉴욕)ㆍ독일 등이 대규모점포가 골목상권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가 내건 안전장치는 ‘도시계획’이었다. 엄격한 도시계획 심사기준에 따라 대규모점포가 들어서는 게 적절치 않을 경우, 이를 과감히 짓지 못하게 했다. 그간 국내에서 도시계획 관점에서 대규모 점포와 골목상권의 상생방안을 연구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남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보고서를 접하는 건 쉽지 않다. 발주처인 시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이 보고서를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됐다.

그나마 보고서를 볼 수 있는 곳은 서울도서관, 국회도서관 등이지만 대출이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외부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비치한 것도 아니다. 


인쇄가 완료된 간행물은 서울도서관이 수집할 수 있게 규정된 ‘시정간행물 납본 가이드라인’에 따른 조치일 뿐이다. 이 보고서를 사실상 미공개 자료로 규정해도 무방한 셈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도서관에 숨겨진 보고서를 열람해 분석해봤다.


■ 꼼꼼히 심사하는 신사의 나라 = 만약 영국에 우리나라의 대형마트 같은 대규모점포를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장면적 1만㎡(약 3030평ㆍ도심지역 기준), 2만㎡(약 6060평ㆍ시 외곽지역 기준)를 넘을 경우, 사업자는 입점이 예정된 지방당국에 ‘환경영향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건설과 운영이 소상공인의 경제활동과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선진국과 유통 규제 


지방당국은 이를 충분히 숙지하고 분석한 뒤 허가를 내준다. 흥미로운 건 일반주민도 결정 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는 2500㎡(약 756평) 이상의 대규모점포를 두고도 별도의 매출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 10% 가이드라인의 마법 = 독일에선 매장면적 1200㎡(약 363평) 이상의 대규모점포는 특별지구 내에서만 출점할 수 있다. 독일 건축법의 규제다. 대규모점포가 도시계획 관점에서 주변 환경에 반드시 해로운 영향을 미칠 거라는 판단에서다.


일부 대형도시는 특례를 두고 따로 규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특례가 허술한 건 아니다. 독일 베를린엔 ‘10% 가이드라인’이란 특별한 규정이 있다. 대형마트가 진출할 경우 주변 중소상공인들의 매출액이 기존보다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출점이 아예 불가능하다.

바이에른 중심지에 1200㎡ 규모의 대형 소매점이 들어서기 위해선 지역주민들의 동의 절차가 필수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팔아야 출점이 가능하다. 지역 이해관계와 맞물린 개발방식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유통규제 정말 완화됐나 = 일본은 대표적인 ‘유통규제 완화국가’로 꼽힌다. 1970년대부터 운영되던 소상공인 보호대책인 ‘대규모점포에 관한 법률(대점법)’을 1990년대 폐지했다. 기업과 보수성향의 학자나 단체들이 유통규제 완화의 사례로 종종 꼽는 게 이 법이다. 당시 대점법은 500㎡(약 151평) 이상의 유통매장도 도심지역에 진입할 수 없게끔 촘촘히 규제했다.


대표적인 게 ‘상업활동조정협의회(상조위)’다. 대규모점포를 설립하는 사업자는 해당 지역의 상조위에 출석해 영업계획을 설명하고 설립 동의를 받아야 했다. 이 상조위의 주도 세력이 해당 지역 중소상인들이었으니, 대규모점포 설립이 쉽게 허용될 리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법이 폐지됐다고 일본이 대형 유통기업에게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준 건 아니다.


대점법 폐지 이후 제정된 ‘대점입지법’으로 지역 상공인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지자체, 지역 상공회의소 등에 대형마트 설립 심사를 맡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중소상인 보호뿐만 아니라 환경ㆍ교통ㆍ고용 등 다양한 공익 보호를 강조하게 됐다. 또한 각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해 무분별한 대형마트 설립을 막아냈다.


■월마트 없는 도시 =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게 있다. 대형 유통 매장 ‘월마트’의 간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구역에서 허용되는 소매점의 최대 크기가 1만ft²(약 281평)에 불과해서다. 

더 큰 매장을 지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월마트 뉴욕점’을 내기 위해선 도시토지이용에 관한 평가절차(ULURP)를 거쳐야 한다. 도시계획위원회와 시의회의 승인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ULU RP에서 시의회가 승인을 거부하면서 월마트는 뉴욕의 모든 주에 둥지를 트는 데 실패했다. 시는 도시계획 관점에서 월마트의 개점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도시계획 관점에서 규제


독일ㆍ영국ㆍ일본ㆍ미국 등은 대규모점포를 도시계획 단계에서 강력히 규제해 소상공인 몰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였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골목상권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막무가내로 내몰려있는 데도 소비자의 편익과 효율성을 명분으로 ‘골목상권 퇴출’을 당연시하는 여론이 확산 중이다. 만약 이런 법안들이 우리나라에서 발의된다면 ‘유통악법’이란 오명을 쓰고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을 게 뻔하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서울시가 왜 적극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시 관계자는 “보고서의 결과대로 규제를 하려면 국토법을 손봐야 하는데, 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국의 유통 규제,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책 담당자도, 기업도 문제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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