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기 전에 가야할 대구 로컬 맛집 9

조회수 2021. 4. 16. 1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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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에디터B다. 보통 전라도 음식이라고 하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푸짐한 밥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경상도 음식’이라고 했을 땐? 음… 잘 모르겠다. 경상도 출신인 나조차도 특별한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도시든 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어떻게 지역 음식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20년 동안 살면서도 몰랐던 경상도 음식을 파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도시가 바로 대구다.

‘대구 10미’라는 것이 있다. 대구시가 지역 관광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6년에 만든 것이다. 대구식 육개장, 막창, 뭉티기, 찜갈비, 논메기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무침회, 야끼우동, 납작만두 등 열 가지.


나는 ‘대구 10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는데, 그 이유는 ‘대구에 특별한 음식이 이렇게 많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박 3일 동안 10미를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3개밖에 먹지 못했다(민망). 하지만 맛집은 많이 찾았으니 오늘 기사를 보면 언젠가의 대구 여행에 도움이 조금은 되지 않을까. 시간 순서대로 적었으니 나와 함께 여행 가듯 천천히 따라오면 좋겠다. 적고 나니 분량이 1만 자가 넘길래 두 편으로 나누었다는 점을 밝힌다.


“냉면계의 원조 평양냉면”
부산안면옥

대구에는 ‘3대 OO’이 많다. 3대 막창, 3대 치킨, 3대 짬뽕, 3대 빵집까지(공인된 것은 아니다). 맛집 투어 첫 번째로 방문한 식당은 대구 3대 평양냉면 중에 하나로 꼽히는 부산안면옥이다.

현관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부산안면옥의 역사와 창업주에 대한 정보다. 눈이 시린 푸른 바탕에 왼쪽 정렬된 방수영 사장님에 대한 정보를 간략히 요약하면, 한국전쟁 때 남한에 자리에 정착하고 영어 교사를 하다가 외삼촌에게 물려받은 곳이 부산안면옥이고, 그 뿌리가 외할아버지가 평양에서 운영하던 안면옥이라는 거다(우리가 찐이다라는 뜻). 서울에서 평양냉면을 먹으며 가장 궁금했던 게 북한에서 먹는 원조 평양냉면의 맛은 어떨까였다. 그래서 부산안면옥에 큰 기대를 했다.

사진 보정을 해서 색깔이 살짝 진해지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서울의 평냉보다 확실히 진하다. 맛도 크게 달랐다. 첫입에는 오이 향이 강하게 느껴졌고, 끝에는 간장의 짭쪼름한 맛이 살짝 올라왔다. 슴슴한 평냉과는 확연히 달랐다. 육향이 진한 평냉을 먹으면 밥을 말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메밀 함량도 그리 높지는 않은 것 같았다. 부산안면옥의 평냉은 ‘확실히 맛있다’가 아니라 ‘확실히 다르다’였고, 대구에 온다면 한 번쯤 맛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정체되어있던 평냉 지도를 1cm 넓힌다는 느낌? 고기완자가 고명으로 올라간다는 것도 특이했다.

가격은 만 원이고, 양은 정말 많다. 오늘 들릴 식당이 네 곳이기 때문에 완냉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훌륭한 음식 앞에선 그 다짐이 무용해진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 맛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산안면옥은 일년 내내 장사를 하지 않아서 더 특별하다. 4월 1일에 문을 열어 추석 전까지만 장사를 하고 비시즌에는 여행을 간다고 하시더라. 다른 테이블에 앉은 (단골처럼 보이는) 손님들은 함흥냉면을 더 많이 먹던데, 다음엔 나도 비빔으로 먹어봐야겠다. 또 다른 3대 냉면집 대동면옥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둘 다 가보는 것도 좋겠다.


  • 부산안면옥
  •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125길 4
  • 매일 11:00 – 21:30

오랜 다이어트로 인해 위가 작아졌고, 냉면을 소화시키기 위해 동성로 일대를 걸었다. 사실 내게 대구는 명절에 할머니 보러 가는 곳 정도였을 뿐 힙하고 재미있는 곳은 아니었다. 근데 그건 대구를 잘 모르는 나의 착각이었다.

바이닐, 포스터, 디자인 서적, 소품을 파는 편집샵에는 손님들로 북적했다. 매장이 그렇기 넓지는 않았는데, 카테고리도 다양하게 예쁜 소품들이 많았다. 요즘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포스터, 인테리어 소품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는데 손이 무거워지는 건 싫어서 눈으로만 구경했다. 동성로에 간다면 한번 들리면 좋겠다.


  • 홀리데이비지터샵
  •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184
  • 매일 11:00 – 20:00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니 옛 간판은 그대로 두고 식당을 운영하는 가게도 보였다. 동아식당이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이라는 건 나중에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알았다. 고등어소면, 계란김밥, 된장비빔면을 판다.


  • 동아식당
  •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125길 14
  • 11:30 – 20:00 월요일 휴무

여긴 레트로 컨셉의 술집인데 뭉티기를 판매하더라. 서울 사람들은 뭉티기라는 메뉴가 낯설텐데, 대구식 육사시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고기를 뭉텅뭉텅 썰었다고 해서 경상도 방언으로 뭉티기라고 부른다. 사후 경직이 오기 전에 먹어야 육질이 가장 부드럽기 때문에 당일 도축한 소고기만 사용한다. 대구의 도축장은 주말에 열지 않는 곳이 많아서 평일에만 먹어볼 수 있다고 한다. 장미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라 주소는 따로 적지 않겠다. 동인동에 있는 왕거미식당이 유명하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다섯 시가 되었고, 예약했던 화덕피자를 먹으러 삼덕동으로 이동했다.


“구명조끼를 닮은 화덕 피자”
주토피아

‘대구 화덕 피자’로 검색을 하다가 나폴리 피자협회에서 인증한 핏제리아가 대구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이름, 주토피아. 1984년에 생긴 나폴리 피자협회는 화덕 사이즈, 온도 등 나폴리 전통 방식으로 피자를 만드는 핏제리아에 ‘이곳이 찐입니다’라는 인증을 해준다. 오른쪽 작은 간판을 보면 831이라는 숫자가 보일 텐데, 831번째로 인증을 받은 가게라는 뜻이다.

다섯 시에 오픈하자마자 가게에 방문했는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 사람들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먹지 못 할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나는 재작년 이탈리아 남부의 섬 시칠리아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온 후로 아직까지 화덕피자에 꽂혀있다.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그 맛을 넘어서는(혹은 근사한) 맛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는 홍대에 있는 로쏘1924가 본토의 피자맛에 가장 가까웠다(누가 보면 이탈리아에 10년 이상 산 줄). 게다가 주토피아는 이탈리아 남부요리 전문점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나는 1만 7,000원짜리 마르게리따 피자와 이탈리아 맥주인 비라 모레티를 함께 주문했다. 여러 피자를 다 먹어 보고 싶었는데, 이럴 땐 혼자인 게 서럽다.

주토피아에서는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스타일의 피자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까노토 스타일의 피자다. 까노토는 이탈리아어로 ‘구명보트’라는 뜻인데, 도우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두꺼운 게 특징이다. 485도가 넘는 장작 화덕의 열기에 그을린 탄 맛을 좋아한다면 까노토 피자를 좋아할 거다.

나는 행복감이 들 때(주로 먹을 때), 감정 제어센터가 고장나서 웃음이 스멀스멀 나오고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거나 손을 떨리는데 마르게리따 피자를 집을 때 딱 그랬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피자 한 판을 다 먹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무 맛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구에 간다면 주토피아에 꼭 들리길 추천한다.


  • 주토피아
  • 대구 중구 동덕로30길 141
  • 17:00 – 23:00

만족스런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재미있는 홍보 문구를 봤다. 기산반점 현관문을 보면 ‘백종원이 몰라서 못 온 기산반점’이라고 작게 적혀 있다. 사장님의 위트에 웃음이 살짝 나다가 조금 안쓰러웠다. 로컬이 아니라면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추천한 곳에 가기 마련인데, 그런 방식이 편하고 좋긴 하지만 어쩐지 숨어있는 맛집은 계속 숨겨진 채 있을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체인점이 없는 떡볶이집”
중앙떡볶이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다. “대구 음식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맵고 짠 거지” 정말 그랬다. 2박 3일 동안 먹었던 대부분의 대구 음식은 맵고 짰다. 떡볶이가 대표적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떡볶이집 ‘윤옥연할매떡볶이’에서는 셀프로 양념을 추가해서 국물을 더 맵게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매운 떡볶이의 대명사 신전떡볶이는 대구가 본점이다. 나는 윤옥연할매떡볶이와 함께 대구 3대 떡볶이에 꼭 포함되는 중앙떡볶이에 갔다.

중앙떡볶이(이하 중떡) 앞에는 항상 줄이 있다. 포장을 하려면 무조건 줄을 서야 한다. ‘줄이 기네? 몇 시간 뒤에 와야지’ 이런 안이한 생각으로는 중떡을 먹을 수 없다. 홀에서 먹을 거면 번호표를 뽑고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홀 안에 자리를 안내해주는 사람이 따로 없어서 알아서 잘 앉아야 한다. 모르는 사람과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건 아쉬운 부분이다.


제일 잘 나가는 메뉴는 떡볶이+납작만두 세트. 가래떡과 납작만두가 떡볶이 국물에 버무려진 상태로 나온다. 대구 10미에 포함되는 납작만두는 이름만 만두이고 속은 거의 비었다. ‘밀가루전’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크게 상관없을 거다. 옆 테이블에 앉은 대구 사람조차 “이건 만두에 대한 모욕인데?”라며 웃으며 말하는 걸 들었다. 즉석떡볶이의 튀김만두처럼 떡볶이 국물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심심한 맛이다. 아무튼 납작만두는 기름을 둘러 구워 구운 후 떡볶이 토핑으로 올려주고 둘의 시너지가 엄청나다. 나는 떡볶이보다 납작만두가 훨씬 맛있었다.

분명히 처음 먹었을 때는 납작만두만 맛있었고(정확히는 떡볶이 국물이 맛있었다), 가래떡으로 만든 떡볶이는 커서 먹기에도 불편했는데, 며칠이 지나니 이상하게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괜히 줄 서서 먹는 맛집이 아닌 거지.


“내 인생 첫 양념오뎅”
미성당 납작만두

중떡을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미성당 납작만두’를 봤다. 이름은 숱하게 들어봤기에 여기서 떡볶이 국물과 섞지 않은 납작만두를 하나만 먹어보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충격적인 비주얼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보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그 유명한 양념오뎅이구나’ ‘정말 대구 사람들은 빨간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어묵은 살짝 매콤한 맛이 나는데, 김칫국에 푹 담근 어묵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충분히 매력적인 맛이었다. 국물 맛도 궁금해서 한 모금 마셨는데… 앗 짜다! 역시 짜다. 어묵의 간은 적당했는데 국물만 따로 먹기에는 많이 짰다. 짜지 않게 김치를 컨트롤하는 게 셰프의 역량일 것 같은데, 다른 곳에 가면 양념오뎅을 잘하는 분이 있을 것 같았다.

보통 대구에서 납작만두를 시키면 이런 비주얼로 나온다. 만두가 있고, 그 위에 고춧가루 간장 양념이 올라간 형태. 간장 소스와 만난 납작만두는 중떡의 납작만두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역시 납작만두 자체는 백지에 가깝고, 어떤 소스를 만나느냐에 180도 달라진다. 대구 여행 첫날은 이렇게 납작만두로 마무리했다. 바로 이어서 2편을 읽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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