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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만든 71만 원짜리 헤드폰

조회수 2020. 12. 10. 11: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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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올해 마지막 신제품을 발표했습니다. 제가 애플 관계자가 아니라 확신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한국 날짜로 12월 9일 오후에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아마도 마지막이겠죠. 그래야만 합니다. 올해 충분히 돈을 많이 썼는걸요. 이제는 대표님이 절 바라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습니다. 법인 카드 압수당할 것 같아요. 게다가 연일 신제품이 밀어닥치는 통에 예전처럼 신제품에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마음도 조금 시들해졌어요. 배송을 한 달이나 기다려서 받은 애플워치 시리즈5는 너무 바빠서 비닐도 뜯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신제품이 뭐냐면 바로 AirPods Max(이하 에어팟 맥스). 애플의 새로운 ANC 오버이어 헤드폰입니다. 갑작스러운 네이밍이죠. 공기처럼 가벼운 ‘에어’팟의 아이덴티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심지어 따라붙은 수식어가 ‘맥스’라니. 아이러니합니다. ‘에어팟’이라는 이름이 하얗고 작은 완전 무선 이어폰으로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에어팟 맥스는 공개되자마자 소셜 미디어를 활활 불태우며 화제 몰이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현재로서는 혹평이 대부분입니다. 71만 9,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과 낯선 디자인 때문이죠. 사실은 전자가 90%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먼저 디자인부터 보겠습니다. 헤드밴드부터 이어컵 디자인, 심지어 이어 쿠션의 소재까지 모든 게 새롭습니다. 과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천지창조 수준으로 조물주 코스프레를 하는 애플이 만든 물건입니다. 기획 단계부터 여타 제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하나하나 새로 설계했겠죠. 그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었음도 분명해 보입니다. 헤드밴드 가운데의 캐노피는 통기성과 착용감을 위해 니트 메시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보기에도 독특하지만 착용감이 훌륭하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헤드폰의 헤드밴드보다 넙적한 데다, 부드럽고 탄성이 있는 소재라 본체의 무게를 분산시켜준다는 거죠. 평소에 오버이어 헤드폰을 많이 착용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장시간 착용하면 머리나 귀가 뻐근한 제품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조사들이 되도록 제품을 가볍게 만들려고 애쓰는 거구요.

흥미로운 건 애플은 정반대의 접근을 했다는 거죠. 제가 현재 사용 중인 소니의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WH-1000XM4의 무게는 약 254g입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무게를 최소화했고, 덕분에 착용감도 가볍습니다. 에어팟 맥스의 무게는 384.8g입니다. 130g이 넘는 어마어마한 차이죠. 하루종일 착용해야 한다면 이 130g이 주는 부담이 더 커질 테구요. 제품이 이렇게 무거워진 건 소재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어컵은 알루미늄, 캐노피를 제외한 헤드밴드 골격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거든요. 마음껏(?) 무겁게 만들어놓고 설계를 통해 무게를 분산시켜 착용자의 머리에 가해지는 압력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택한 겁니다. 이 과감한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 빨리 착용해보고 싶네요.

이어컵은 사진으로 봐도 상당히 사이즈가 큰 편이에요. 귀 주변을 넉넉하게 덮는 디자인으로, 마치 애플워치 스포츠 모델을 연상케 하는 알루미늄 마감입니다. 한쪽 이어컵에는 애플워치의 것과 같은 형태의 디지털 크라운이 적용됐습니다. 저 크라운을 손끝으로 돌려서 정밀한 음량 조절이나 트랙 전환, 전화 통화, 시리 호출 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_ 버튼을 손끝으로 더듬어 누르거나 터치하는 방식보다 직관적이기 때문에 훌륭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컬러는 실버, 스페이스 그레이, 스카이 블루, 핑크, 그린의 다섯 가지입니다. 이 정도 가격대의 헤드폰치고는 컬러 베리에이션이 상당히 다양한 편이죠. 특히 핑크나 그린 같은 건 보기 드문 화려한 컬러이기도 하고요. 이어 쿠션에 적용된 메시 직물의 질감도 독특하네요. 현재로선 디자인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안 좋은 방향으로) 엇갈리고 있긴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출시되고 나면 결국엔 모두 그 디자인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것이라는 사실을. 에어팟도 출시되던 당시엔 콩나물이라고 혹평을 받았죠. 저는 에어팟 1세대가 출시되자마자 구입했었는데, 처음엔 너무 부끄러워서 길에선 착용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 거리를 보세요. 모두가 콩나물을 귀에 걸고 걷습니다.

현재 애플 홈페이지에는 부드럽게 길이가 조절되어서 사용자의 모양에 맞게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한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너무 자랑스럽게 쓰여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주문한 제품이 도착하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ANC 성능에 대해서는 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구현되기 어려워 보이는 에어팟 프로로도 그 정도 성능을 보여줬으니까요. 심지어 오버이어형 헤드폰이 되었으니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완벽한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위해 마이크를 굉장히 많이 넣었더군요. 총 9개의 마이크가 들어갔습니다. 그중 8개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용 마이크로 작동하며, 3개는 음성 인식용 마이크입니다. 음? 그럼 11개인데요? 계산이 빠르시군요. 2개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과 음성 인식용을 겸한다고 합니다. 애플이 설계한 H1 헤드폰 칩셋은 각각의 이어컵에 하나씩 탑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초당 90억 회의 연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런 성능은 여러 역할을 하죠. 실시간으로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사운드 신호를 측정해서 중저음을 조절해주는 적응형 EQ, 주변 소음과 내부 소리를 감지해서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ANC 등 지속적인 연산이 필요한 기능을 위해 활용됩니다.

또 에어팟 맥스는 동적 머리 위치 추적 기능과 함께 공간 음향을 이용해 몰입감 넘치는 사운드 경험을 제공합니다. 자이로스코프 및 가속도계를 이용해 사용자의 머리나 기기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정해진 위치에 사운드를 고정하는 거죠. 에어팟 프로에서도 보여줬던 기능이지만 하드웨어적인 이점이 생겼으니 더 생동감 넘치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에어팟 맥스에 기대되는 요소는 많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격 정책에 대한 의문이 남죠. 특히 70만 원이 넘는 한국 가격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어떤 제품의 가격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폄훼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아직 사용해보기도 전에 말이죠. 하지만 지금으로선 애플의 가격 책정이 의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보스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QC35 2세대가 40만 원대 초반, 신제품인 보스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헤드폰 700도 49만 원대입니다. 소니 1000XM4 역시 45만 원대에 출시됐습니다. 물론 가격대가 더 높은 제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뱅앤올룹슨의 베오플레이 H95 같은 경우는 100만 원이 넘죠. 그럼 애플은 오디오 브랜드 기기로서 그에 근접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의문투성이지만, 여기부터는 실제 제품을 받아본 뒤 판단해야 할 영역입니다. 이 난폭한 가격 책정에도 불구하고 구입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건지, 초기 물량이 적었던 것인지 저의 배송 일자는 자꾸만 밀리고 있습니다. 핑크나 스카이 블루가 갖고 싶었는데 내년 3월에 보내준다고 해서 실버를 주문했습니다.

배터리 시간은 ANC 활성화 모드 기준으로 최대 20시간입니다. 앞서 언급한 소니나 다른 제품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죠. 구성품은 심플합니다. 헤드폰을 보관하면 바로 초절전 모드로 들어가서 배터리를 아껴주는 스마트 케이스와 라이트닝 to USB-C 케이블, 설명서. 이 역시 가격 대비 볼품없는 구성이네요. 유선을 지원하지만, 원하면 별도로 구입해야 하는 것도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또, 모르죠. 한 달쯤 뒤에는 에어팟 맥스를 뜯어보고 “인생 헤드폰을 만났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하지만 그때 무너지더라도, 오늘까지는 도도하게. 시니컬한 마음을 살짝 간직한 채로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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