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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루이 비통이 명품이 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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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오랜만에 인사를 건네려니 심금이 울리네. 흑흑. 요 몇 달 동안 할 일은 산더미인데 정신과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질 못해서 엄청 힘들었거든. 스트레스와 체력 방전으로 며칠 전에는 책상에 앉아서 필름까지 끊겼지 뭐야. 그때 결심했어. 삶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던 디에디트 원고도 이제 후다닥 쓰려고 해!!

숀 코너리가 출연한 007 시리즈 <골드 핑거> 포스터
© DANJAQ, LLC AND UNITED ARTISTS CORPORATION

지난 10월 31일에 어떤 사람의 부고를 들었어. 90세의 나이에 침대에서 평화롭게 돌아가셨다니 ‘호상’이라 칭할 수 있지만, 늘 살아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라서 뭔가 기분이 이상하더라. 미노년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Sean Connery) 이야기야.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액션물 <007> 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을 처음부터 맡아서 7번이나 역임한 인물이지.


근데 007 키드가 아니라서 그런지 숀 코너리는 내게 좀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어.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광고에서 그의 쿨내나는 멋짐을 느꼈거든. 2008년 루이 비통은 ‘코어 밸류스(Core Values)’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모델 중 한 명으로 숀 코너리 할아버지를 기용해 광고 사진을 찍었어. 바하마 제도의 할아버지 집 근처 해변에서 촬영에 임했는데 그 특유의 유유자적한 표정과 모습이 내게는 참 인상적이었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당시 사진을 담당한 스타 포토그래퍼 애니 리버비츠(Annie Leibovitz)도 현장 스태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 “우리가 드디어 전설과 일하는 기회를 가지게 됐어. 그것도 엄청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사람이랑 말이야.” 자존심 높은 그녀가 그리 말할 정도면 코너리 할아버지가 영미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느껴지지.

▲숀 코너리과 루이 비통이 만난 2008년 루이 비통 브랜드 캠페인 이미지의 일부가 루이 비통 공식 인스타그램에 떴어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았던 건 할아버지의 모습뿐만이 아냐. 캠페인 슬로건이 기막혔거든. ‘There are journeys that turn into legends.’ 캬. 숀 코너리뿐 아니라 루이 비통에게도 해당되는 기깔나는 말이야. 지금 명품 제국 LVMH의 중앙에 위치한 토털 브랜드인 루이 비통을 이렇게 잘 설명하는 말이 있나 싶었거든. 근데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루이 비통이랑 여행이랑 무슨 상관이야?”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려면 19세기 파리로 넘어가야 해. 여행과 함께 전설이 된 루이 비통의 고향으로.

트렁크 왕, 루이 비통의 초상
© Louis Vuitton Malletier

루이 비통 브랜드의 창립자인 루이 비통은 1821년 지금 스위스 근처 프랑스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어. 목수인 아버지에게 목공 기술을 배우고 15살이던 1835년 수도 파리로 향했지. 그리고 1837년부터 17년간 트렁크 공방에서 일하면서 파리에서 내로라하는 트렁크 전문가로 성장했어. 근데 왜 트렁크 공방에서 일했을까? 그건 당시 프랑스의 교통 인프라 구축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있어. 1832년 처음으로 프랑스 땅에 깔린 이후 수도 파리를 중심으로 더 넓게 가설된 철도는 1860년 이후 전국적으로 주요 노선이 확장됐고 1900년 이후에는 프랑스 전역에 거미줄처럼 촘촘히 깔리게 되었거든. 이 말인즉슨 사람들이 기차를 통해 편안하고 빠르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는 의미야. 말이 끄는 마차에 의지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움직이는 ‘여행’이란 행위가 일반화된 거지.


근데 예나 지금이나 여행을 가려면 짐을 싸야 하잖아. 특히 짐 싸는 사람이 ‘패커’라는 전문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트렁크와 짐 싸기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어. 바리바리 싸야 할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옷이 문제였어. 당대 여인들은 크리놀린을 이용한 패션에 미쳐있었거든. 크리놀린은 겉치마 안에 입는 속치마의 일종인데, 겉치마를 최대한 볼륨감 있고 넓게 퍼지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대 역할을 했어. 겉치마가 얼마나 풍성하고, 주름이 겹쳐있고, 화려한지에 따라 입는 사람의 자존심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치마 한 벌의 실제 부피가 장난이 아니었거든. 이런 치마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려면 짐 싸는 기술과 든든한 트렁크가 꼭 필요했지.

크리놀린을 과장스럽게 묘사한 당시 풍속화
© The Met

각양각색의 크리놀린 열풍을 보여주는 당대 풍속화
© Museum of Fine Arts

루이 비통은 당대 파리에서 손꼽을 정도로 손재주 있는 패커이자 트렁크 제조자였어. 1854년 자신의 가게를 개업한 후 그가 고안한 새로운 트렁크는 사람들을 열광시켰지. 당시만 해도 트렁크는 비가 내릴 때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뚜껑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나무 재질의 외형을 가졌거든. 근데 루이 비통은 이런 통념을 깨고 트렁크 틀에만 나무를 사용하고 커버로는 방수 처리를 거쳐 내구성을 높인 캔버스를 사용해 무게를 최소화했어. 무엇보다 평평한 직사각형 모양이 되면서 처음으로 트렁크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지. 고객들이 루이 비통의 가게로 몰린 건 당연한 일이었어.

루이 비통이 전개한 역사적인 캔버스 트렁크를 차곡차곡 쌓은 모습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모노그램 캔버스, 다미에 캔버스, 트리아농 그레이 캔버스 그리고 레드 스트라이프 캔버스
© Collection Archives Louis Vuitton

이렇게 처음에는 ‘트리아농 그레이’로 시작된 캔버스는 ‘레드 스트라이프’ 캔버스로 진화했고, 루이 비통의 아들인 조르주 비통이 회사를 운영할 땐 ‘다미에’ 캔버스와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모노그램’ 캔버스가 등장하면서 신화가 시작됐어.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평평한 커버, 모노그램 캔버스, 그리고 특허받은 도난방지용 번호 잠금장치까지 더해진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지금 만드는 하드 사이드 트렁크의 원형이야.

옛 아니에르 공방의 모습을 담은 브랜드 안내문
© Louis Vuitton Malletier / L.Guiguet

1888년 아니에르 공방을 배경으로 모인 장인들과 비통 가문 사람들
© Louis Vuitton Malletier

루이 비통은 1859년 파리 북서부 지역인 아니에르(Asnières)에 공방을 열었는데 센 강변의 강둑에 자리 잡고 있어서 트렁크 제작에 필요한 포플러 나무 원목을 수월하게 나를 수 있었고 루이 비통 파리 매장 부근에 있는 생-라자르 역까지 잇는 철로와도 가까워서 지리적인 장점이 많았어. 무엇보다 전문 공방 체제로 운영하면서 창업자가 기거했기 때문에 수많은 맞춤형 트렁크를 만들고, 고안하고, 실험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지.

아니에르 공방에 붙어있는 옛 비통 가문의 저택 모습
© Louis Vuitton Malletier / Tommaso Sartori

아니에르 공방에서는 섬세한 수작업이 일상이야
© Louis Vuitton Malletier

아니에르 비통 저택에는 소중한 작업들을 모아놓는 타입캡슐 전시실이 있어.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작업은 맨 앞에 있는 침대 트렁크야. 진짜 신기하게 생기지 않았어?
© Louis Vuitton Malletier / Cristal Leonard

철도에서 시작한 여행 수단이 곧 선박, 비행기, 자동차 등으로 넓어지고, 각종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맞춰 트렁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루이 비통의 전설을 만든 브랜드의 숨겨진 심장부로 활약했어. 프랑스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냥 드 브라자가 1905년 아프리카 탐험을 위해 의뢰한 침대 트렁크, 잔느 랑방, 폴 푸아레 등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를 위한 우아한 트렁크,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랑수아 사강 등 대문호를 위한 책과 필기 기구용 트렁크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 1923년 맞춤 제작한 ‘라이브러리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인도 바로다 지역을 통치하던 마하자라(왕)가 1926년 주문한 이동식 티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루이 비통에서 만든 전설적인 트렁크 100선을 묶은 책 ‘100 Legendary Trunks’의 소개 영상이야

<A Short History of Louis Vuitton Travel Trunks>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Christie’s가 소개하는 루이 비통 빈티지 트렁크 영상

그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세면도구, 셔츠, 바이올린, 보석, 시계, 향수, 화장품 등 세계 각지의 명사가 요청하는 스페셜 오더에 대한 맞춤 트렁크 제작을 전담하고 있거든. 최고의 손기술과 안목을 가진 장인들이 상주하면서 말이야.

피크닉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 Tommaso Sartori

핑크빛 주얼리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 Tommaso Sartori

다양한 게임을 위한 맞춤형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 Sophie Green

얼마 전에 만든 방짜유기 보관용 트렁크야. 청담동에 있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주문할 수 있다고
© Louis Vuitton Malletier

브랜드 가치와 직결되는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당연히 아니에르 공방에서 탄생해.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이메이르의 걸작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운송하는 트렁크,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 트렁크, 테니스 그랜드 슬램 대회인 롤랑 가로스 우승 트로피 트렁크, 미국 NBA 우승 트로피 트렁크 등 그 종류도 다양하지. 심지어 e-스포츠인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트렁크까지 2019년에 이어 올해도 맡고 있어. 루이 비통의 창업 이래 한시도 잊지 않던 ‘귀한 물건을 안전하고 멋지게 옮기는 트렁크를 제작한다’는 말이 그대로 구현되는 장소가 아니에르 공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랄까.

요하네스 페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위한 맞춤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 Sophie Green

미국 NBA 우승 트로피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2019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과 루이 비통의 첫 만남
© Louis Vuitton Malletier

2019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심지어 광원까지 동원했어
© Louis Vuitton Malletier

게다가 패션쇼에 필요한 특수 트렁크까지 전담하다 보니 루이 비통의 전통과 맞닿은 컨템퍼러리 트렁크의 산실이기도 해.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2015년 F/W 여성 컬렉션에서 발표한 투명한 ‘스텔레르 산책용 트렁크’, 2019년 S/S 여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초경량 ‘네오-브리프케이스’, 버질 아블로가 2020년 S/S 남성 컬렉션에서 보여준 모노그램을 엠보싱 처리한 ‘플라워 트렁크’, 스니커즈를 보관하는 ‘모노그램 이클립스 스니커 박스’ 등이 대표적인 작업이야.

네오-브리프케이스
© Louis Vuitton Malletier / Sophie Green

꽃과 식물을 위한 플라워 트렁크
© Louis Vuitton Malletier / Sophie Green

플라워 트렁크의 디테일. 모노그램이 엠보싱 처리됐어
© Louis Vuitton Malletier / Sophie Green

플라워 트렁크 뚜껑 내부
© Louis Vuitton Malletier / Sophie Green

모노그램 이클립스 스니커 박스
© Louis Vuitton Malletier / Gregoire Vieille

워메. 숀 코너리 할아버지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네. 지금까지 루이 비통의 전설과 여행, 트렁크와 장인 정신에 대해서 말해봤는데 어땠어. 굉장히 흥미롭지 않아? 아니에르 공방에 가고 싶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니 랜선 투어 영상으로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아. 아니에르 공방을 탐방하고 싶은 사람들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

더불어 루이 비통이 얼마 전부터 새로 시작한 브랜드 캠페인 이미지를 보여줄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꿈을 향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포토그래퍼 비비안 사센Viviane Sassen이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자연과 현지 아이들을 렌즈에 담았어. 모래 해변, 빙하 호수, 용암 동굴 등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천상의 풍경을 통해 꿈, 일상을 벗어난 모험, 문화유산의 전수, 낙관주의 등을 표현했다고 해. 숀 코너리 할아버지가 말년에 머물던 바하마의 해변 풍광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이대로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야. 할아버지의 새로운 여행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축원의 이미지로 남기고 싶어. 그럼 여러분, 곧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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