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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미국인이 만든 소주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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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풍류를 아는 에디터B다. 집에만 있다고 해서 풍류를 잃을 순 없다. 오히려 코로나 시대의 지속 가능한 버티기를 위해서는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기보다 최선을 다해 즐겨야 한다. 편의점 파스타를 먹어도 제대로 된 면기에 옮겨 먹고, 콜라는 반드시 콜라잔에, 맥주는 맥주잔에 따라 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더 맛있는 술, 재밌는 술, 특이한 술을 마시려 노력하고 있다. 토끼소주를 산 이유다.

토끼소주는 이력부터 독특하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한국에 진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 소주가 미국 양조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오호? 특이한 녀석이로구나?’ 하며 반드시 마셔보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일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증류식 소주를 이미 마셔 봤다면 토끼소주에게 너무 큰 기대는 말자. 이 소주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만 말하면 ‘뉴욕에서 온 증류식 소주’ 딱 그 정도니까. 근데 이 말은 따지고 보면 칭찬이다.

토끼소주는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을 발효시킨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화요, 일품진로 같은 증류식 소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말이 왜 칭찬이냐면, 화요나 일품진로가 어떤 술? 없어서 못 마시는 술! 소주 문화권에서 자라지 않은 미국인이 만든 증류식 소주가 그 맛을 잘 구현했다면 그게 ‘굿 잡’이 아니라 무어란 말인가. 물론 같은 용량의 일품진로(375mL)가 1만 1,800원인데 비해 토끼소주는 1만 9,900원이기 때문에 비싼 편이긴 하다. 토끼소주 블랙라벨(750mL)의 가격은 4만 9,000원.

내가 생각하기에 토끼소주의 가장 큰 매력은 ‘서사가 있는 술’이라는 점이다. 많은 브랜드가 제품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인다. 그런 과정에서 브랜드 헤리티지나 에피소드를 강조하기도 하고. 반면에 토끼소주는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스토리가 쌓였다. 이 술을 만든 브랜든 힐(Brandon Hill)의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브랜든 힐은 대학생 시절 한국인 룸메이트 덕분에 소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11년에 전통주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을 정도였다. 2016년에는 친구가 뉴욕에서 한식당을 열면서 소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고(브랜든은 인싸인 듯), 그때 만든 소주가 인기를 얻어 지금의 토끼소주가 된 것이다.


이렇게 글로만 읽으면 운 좋게 갑자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어린 시절부터 착착 쌓아둔 경험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브랜든의 가족은 직접 술을 빚어서 마실 정도로 양조를 좋아하던 가족이었다. 그 역시 성인이 되자마자 술을 직접 빚어서 마시기 시작했고, 20대 중반에는 양조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고. 그러니까 미국인이 어쩌다 운 좋게 한국 소주로 대박 난 이야기가 아니라, 양조 덕후가 마침내 꿈을 이룬 이야기에 가깝다는 말이다. 역시 포기하지 않는 덕후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 다시 소주 얘기로 돌아가자.

증류식 소주 미경험자를 위해 토끼소주에 대한 감상을 몇 글자 끄적여 보겠다. 화요 같은 증류식 소주를 마셔 봤다면 ‘소주라고 다 같은 소주가 아니다’라는 말에는 동의할 거다. 기분 좋게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 풍성한 쓴맛, 연태고량주나 이과두주 같은 느낌을 상상하면 어느 정도 비슷하다.


보통 우리가 많이 마시는 초록병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알코올과 물을 섞어서 만든 술이다. 나는 술을 만들 때 방법보다는 결과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희석식으로 만들어도 맛이 더 좋다면 증류식을 맹목적으로 찬양할 이유는 없다. 내가 증류식 소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증류식으로 제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맛있기 때문이다. 원재료가 다르니 맛도 다를 수밖에. 희석식 소주는 타피오카나 감자, 고구마 등을 재료로 하는 반면, 증류식 소주는 국내 쌀이 주재료가 된다. 나는 증류식 소주를 알고 난 뒤로 희석식 소주를 그리워한 적이 없다. 지나간 것은 빨리 잊는 편이다.

희석식 소주가 깊은 맛없이 쓴맛만 난다면, 증류식 소주는 음미하고 싶은 맛과 향이 난다. 희석식이 캡사이신만 잔뜩 넣은 인스턴트 라면이라면, 증류식은 종갓집에서 숙성한 고추장을 푼 라면이다. 맛있게 맵다. 그 정도의 차이다. 토끼소주 역시 알콜의 향이 부담스럽지 않고 맛은 부드러우며 향은 풍부했다. 하지만 일품진로나 화요보다 더 맛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제 디자인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전면에는 역동적인 토끼 일러스트가 보인다. 한국 전통 민화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브랜든이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친구와 함께 만든 로고라고 한다. 오른쪽 하단에는 붉은색 낙관이 들어가 있고, 酒(술 주)가 적혀있다. 이 세련된 디자인 역시 토끼소주의 인기에 한 몫했을 거다.

토끼소주라고 제품명을 지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브랜든이 한국에 있었던 2011년이 기묘년으로 토끼해였기 때문. 두 번째는 브랜든이 토끼가 달에 산다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설화 때문인지 소주 뒷면에는 ‘달과 함께 마신다면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적혀있다. 술꾼들이 좋아할 낭만적인 말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토끼소주는 뉴욕 여행 기념품이거나 해외직구로 마시는 술이었다. 브랜든은 올해 뉴욕 브루클린에서 충주로 양조장을 옮겼고, 덕분에 국내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모름지기 술이 있는 곳에는 안주가 빠질 수 없는 법. 코로나 시대에 더 자주 찾는 배달의민족 앱을 켜서 안동찜닭을 주문했다. 사실 토끼소주를 장바구니에 담을 때부터 안동찜닭과 함께 먹으려고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어린 시절에는 안동찜닭을 자주 먹었다. 엄마나 아빠, 어느 누구도 안동시에 연고가 없으면서 많이도 먹었다. 초등학생 때였나. 엄마가 안동찜닭이라는 걸 처음 만들어봤다며 식탁에 올리던 때가 기억난다.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먹어보라고 하던 장면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그립다. 안동찜닭은 가족들의 온기가 떠오르는 음식이다.


엄마는 왜 그렇게 찜닭을 자주 했을까. 생각해보면 4인 가족이 먹기에 찜닭만 한 음식이 없었다. 돼지고기처럼 굽는 사람과 먹는 사람을 나누지도 않으며, 회처럼 호불호가 갈리지도 않는다. 찜닭은 고기 요리이면서도 면이 기본으로 포함되어있고, 달짝지근한 국물에 밥까지 비벼먹을 수 있으니 풀코스에 가까운 음식이다. 특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닭 위에 참깨가 솔솔 뿌려진 미쟝센은 감격스러울 정도.

토끼소주와 안동찜닭을 페어링한 이유는 단순하다. 소주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안동이 나오고, 찜닭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남긴 것들이 꽤 많은데 대표적인 게 바로 소주다. 당시 고려에는 발효주만 있었는데 몽골이 증류기와 증류 기술을 전파하면서 고려사람도 당시로는 고급술인 소주를 마시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도 돈 많은 양반들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그런데 안동찜닭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찜닭이 오랜 역사를 지닌 음식일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안동구시장 상인들이 프랜차이즈 치킨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고 그것이 찜닭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안동에서 만들어진 찜닭이 안동찜닭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국적으로 퍼진 건 그 이후의 일이다. 혹시 자신이 1980년대 이전에 찜닭을 개발했다는 사람이라면 제보 바란다.


물론 음식사에 조선왕조실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디 누가 최초인지는 100%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 때부터 안동찜닭이 있었다는 설도 있으니까.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봉추찜닭에서 처음으로 찜닭에 소주를 먹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둘의 궁합은 여전하다. ‘찜쏘’의 궁합은 좋다. 사실 소주는 웬만한 고기 음식과는 문제없이 잘 어울린다. 찜닭도 예외는 아니다. 말 없이 다 받아주는 속 깊은 친구 같다. 그래서 고민이 많을 땐 맥주보다는 소주를 찾게 되나보다. 만약 찜닭이 오랜만이라면 치즈찜닭, 묵은지찜닭, 로제찜닭 같은 찜닭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맛보는 것도 추천한다. 참고로 토끼소주는 전통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인터넷 배송이 된다. 나는 띵굴마켓에서 주문했다.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링크를 붙인다. 광고는 아니다. 그럼 모두 이번 주말에도 즐거운 미식 생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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