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0.1%가 사는 집을 구경하는 전시가 있다

조회수 2020. 4. 14. 12: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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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공간덕후 에디터B다. 날씨가 좋든, 날이 좋지 않든, 날이 적당하든 외출하기 힘든 날이 이어지고 있다. 벚꽃이 아름답게 흩날리지만 봐주는 이가 없으니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길거리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들리지 않는다. 정말 봄이 오긴 온 건가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집에 있으니 극심한 우울이 찾아왔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북적이는 곳은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해 고급스럽고 비밀스런 공간을 소개한다. 바로 아크로 갤러리다. 아크로라는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 많을 거다. 하지만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 아크로는 앞서 말한 두 미술관을 운영하는 대림산업의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의 이름이다. 아크로 갤러리는 바로 아크로가 제안하는 하이엔드 주거 문화를 볼 수 있는 갤러리인 것이고.


갤러리에 가기 위해 오랜만에 압구정에 갔다. 압구정역에서 내려 10분쯤 걸어가니 도산공원에 도착했다. 목적지가 보였다.

아크로 갤러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사실 요즘 같은 시국에 전시를 보러 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시장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은 위험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아크로 갤러리는 소규모로만 인원을 받는 데다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카운셀러(도슨트 역할을 하는 안내원의 명칭)의 투어에 동행하는 인원은 많아봤자 10명 정도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입구 근처에 있는 근엄해 보이는 가드를 지나 내부로 들어갔다. 마스크 착용 유무를 확인하고, 손 소독을 시키고, 열감지 카메라로 체온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놓였다.

아크로 갤러리는 크게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있다. 1층은 방문객들이 커피를 마시고 담화를 나누는 공간이고, 2층이 바로 전시장이다. 내가 이른 시간에 방문했기 때문일까. 손님보다는 직원이 더 많아 보였다. 하긴 평일 오전 11시니까. 적막함 속에 음악이 흐르는데 마치 VVIP룸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가 가격을 말하지 않았다. 이 전시는 무료다.

2층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아직 앞 팀이 투어 중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기다리는 동안 1층을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살짝만 둘러봐도 얼마나 신경을 쓴 공간인지 알 수 있었다. 스피커, 테이블, 소파 하나하나가 하이엔드 브랜드였다. 아크로 갤러리는 전 세계 다수의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있는데, 덕분에 갤러리 어디서나 쇼핑을 하는 기분이다. 지루할 수 있는 대기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유명한 도이체 그라모폰의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클래식을 들으며 커피를 홀짝 마시니 삶의 질이 올라가는 기분. 어느새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아크로 갤러리는 작년에 브랜드 리뉴얼을 하면서 첫 선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컬렉터의 집’으로 주제를 잡았다. 가상 속 컬렉터의 집에 방문객이 놀러 가보는 컨셉이랄까. 그 가상의 컬렉터는 상위 0.1%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그의 집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올라가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로 럭셔리한 집을 떠올려보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큰 문 앞에 섰다. 현관문은 세로 사이즈가 3m쯤 되었던 것 같다. 고급스러운 공간일수록 문을 크거나 무겁게 만들곤 하는데, 힘들게 문을 여는 경험이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실내 공간 디자이너에게 들었던 말이다.

빅사이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신발장이 보인다. 신발장치고는 꽤 커 보이지만 신발을 보관하는 곳이니 신발장이 맞다. 복도는 너무 넓어서 고기도 구워 먹고 할리갈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입로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발장이 있는 복도가 내가 사는 집보다 크다.


위에서 한 차례 말했듯이 잘 만든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에 모든 감각을 자극시키며 새로운 세상에 들어왔다는 걸 알려준다. 갤러리에서는 문 사이즈뿐만 아니라 곳곳에 비치해둔 방향제가 후각적으로, 조명이 시각적으로 자극했다.

아크로 갤러리에서는 두 곳의 펜트하우스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313㎡의 단층형 펜트하우스. 둘째 공간은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복층 펜트하우스. 지금 보고 있는 건 단층형 펜트하우스다. 거실로 들어섰을 때 먼저 시선을 강탈하는 건 타오르는 불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방문객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이는 인테리어라고 하더라.

실제 불은 아니다. 수증기가 올라오고 밑에는 붉은 조명이 나오는 제품인데 가격은 1,500만 원 정도. 가습기의 효과도 있으니 건강을 생각하면 벽난로보다 이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격을 듣기 전에 했던 생각이다.

거실에는 스킵 플로어 방식의 계단이 있어서 공간이 더 넓어 보였다. 스킵 플로어 방식이 뭐냐면, 쉽게 말해 계단이 활용해 층을 하나 더 만드는 건데 공간 활용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실내 건축에 깨알 같은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카운셀러가 하나하나 알려줘서 알았다. 카운셀러의 친절한 설명이 끝나자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부엌 쪽을 봤다. 아까부터 통유리창 옆에 놓인 테이블과 부엌이 자꾸 시선을 잡아끌더라.

예술을 좋아하는 부부답게 아티스트와 콜라보한 그릇을 세팅했다. 그릇! 너무 중요하다. 나는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을 땐 꼭 그릇에 덜어 먹곤 하는데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고 심리적인 이유에서 그렇다. 그래서 최근에는 냉면을 담아 먹을 용도로 놋그릇까지 샀다. 아무튼 이 컬렉터의 취향과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친구 하고 싶었다.


제품 옆에는 제품 설명과 가격이 적혀있다. 모두 아크로와 협업하는 하이엔드 브랜드라고 보면 된다.

이쯤 되니 질문이 하나 떠오르지 않나. ‘아크로가 만든 아파트는 다 이렇게 생긴 건가요?’ 그렇지는 않다. ‘컬렉터의 집’에서 선보이는 공간은 아크로가 지향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언젠가는 이렇게도 구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 뿐이니까. 머지않아 성수동에 위치한 아크로 포레스트도 곧 입주 예정이라는데, 그곳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살진 못해도 궁금해할 수는 있는 거잖아? 우리나라는 궁금해할 자유가 있는 나라다.

바로 옆에는 돌로 만든 키친 테이블이 있다. 키친 리노에서 제작했는데, 불로 지져 마감을 해 울퉁불퉁한 질감을 살렸다고 하더라. 상위 계층의 주거 환경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 집의 주방디자인과 설계를 담당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디테일 연출의 끝 봉준호에게 합격점을 받은 브랜드라니 더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겠더라. ‘의심할 여지 없는 하이엔드겠네’라고 생각했다.

테이블에서 솟아 나오는 이 장치는 환풍기다. 층고가 높아서 천장에 설치하는 것보다는 이런 방식이 더 낫기 때문이다. 미적으로도 마찬가지고.

부엌 옆에는 작은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면 숨겨진 공간이 나온다. 세탁기도 보이고 그릇도 보이고, 세제도 보이는데 난생처음 보는 가전도 눈에 띈다. 바로 가정용 식물 재배기다. 신선 채소를 실내에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전이다. 주방 옆 텃밭이라니, 신선함의 끝이다.

과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집에 사는 컬렉터는 굉장한 자산가라는 점을 잊지 말자. 심지어는 이 정도 공간에 사는 사람은 요리를 할 때 셰프를 부르기 때문에 웬만한 장비와 주방 기구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부엌이 이 정도라면 침실은 어느 정도일까 몹시 궁금해진다.

실내 정원을 지나가면 침실이 나온다. 정적인 사진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지나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찍어보았다.

이곳이 바로 침실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저 그림의 가격이 2억 원이라는 것이 아니라 침대 옆 비밀의 문의 존재다. 혹시 디자이너 디터람스의 디자인을 좋아한다면 잠시 심박 수 체크하시길.

짠! 바로 디터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과 관련 자료를 모아둔 공간이다. “Less but Better”를 말하며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했던 디터람스의 물건을 모으는 컬렉터라니 부러울 뿐이다. 개인 서재는 흔하지만 개인 컬렉션 공간은 처음 봤다. 내게 이런 공간이 있다면 영화 포스터와 굿즈를 몽땅 전시하지 않을까.

이 정도 컬렉션이라면 친구를 데리고 와서 집구경 시켜줄 맛이 나겠다. 한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든 채 홀짝홀짝 마셔가면서 말이다. 디터람스 룸이 남편을 위한 방이라면 드레스룸은 아내를 위한 방이다.

브랜드만 보면 샤넬이 너무 많아 샤넬 컬렉션 같은 느낌도 든다. 아내의 드레스룸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이런 공간은 남녀노소 모두의 꿈이 아닐까. 아크로 갤러리에 전시된 모든 제품이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한 번…’이라는 꿈 정도는 꿔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화려한 첫 번째 공간 투어가 끝났다. 이제는 더 화려한 복층 공간으로 이동하자.

첫 번째 공간의 주인이 부부였다면 둘째 공간의 주인은 3인 이상의 가족이다. 515㎡로 두 배 가까이 더 넓다. 1층은 테이블, 와인셀러, 피아노 등이 있는 가족 공용 공간이고 2층은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와인잔을 들고 내려올 것만 같다. 복층이기 때문에 당연히 층고도 더 높은데 약 8.1m 정도. 이런 곳에 산다면 술이 안 들어갈 수 없겠지? 그래서 바로 옆에 와인 셀러가 있다.

와인 셀러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규모만 보면 와인 저장고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다. 공간 내부에는 별도로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아마도 이 컬렉터는 와인뿐만 아니라 시가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다양한 종류의 시가도 보관하고 있더라. 그의 취향이 묻어있는 다른 방도 궁금해졌다. 2층으로 올라가자.

아니나 다를까 2층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아크로 갤러리에서 봤던 공간 중 가장 부러웠던 AV룸이다.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내 소원이 집 안에 영화관을 만드는 거다. 이 정도만 되어도 바랄 게 없겠다.


영화가 지겹다면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이 정도 공간이면 지뢰 찾기를 해도 4배는 더 재미있을 거다. 나는 AV룸을 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오랜만에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불태워봤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컬렉터의 집에도 드레스룸은 있다. 재밌는 건 왼쪽에는 남편, 오른쪽에는 아내를 위한 드레스룸이 있다는 점이다. 부부가 서로의 착장을 비교하며 드레스업하는 영화 속 장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고니는 코발트블루가 어울리더라” “사장님, 제가 코발트블루가 어울렸습니까?” 이런 대사.

기사에서 특별히 소개하지 않았지만 이외에도 취향이 반영된 럭셔리한 공간이 많았다. 필라테스 룸, 사우나 그리고 화실도 있었다. 게스트 룸도 있었고, 게스트를 위한 드레스룸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한 단락에 몰아넣고 언급만 하는 이유는 전체 공간을 봤을 때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이 고급스러워 우선순위를 매기다 보니 자연스레 뒷순위로 밀리게 되었다. 그러니 반드시 직접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안하게도 사진으로는 반도 담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참 특이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긴 이런 집을 구경할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아니, 흔치 않다는 말보다는 제로가 가깝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지인 중 재벌 3세가 있거나 본인이 재벌 3세가 아니라면 말이다. 100만 유튜버가 되어도 이 정도로 갖춰놓고 살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묘한 경험이었다. 묘하고 흥미로웠다. ‘컬렉터의 집’이라는 컨셉 덕분에 실제 집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세계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상위 0.1%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에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문득 그 느낌이 궁금해졌지만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평생 모를 수 있는 VVIP의 세계를 슬쩍 훔쳐본 것만으로도 즐거웠으니까. 다음 컬렉션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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