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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탑골공원이 놓친 90년대 ★가수들

조회수 2020. 4. 2. 11: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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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이름은 차우진. 디에디트의 TMI를 맡고 있는 음악평론가야. 이제부터 90년대 음악을 얘기해볼까 해…라고 쓰고 보니 어휴 손발이 오그라들어 못 쓰겠네. 주제에 맞춰 90년대 스타일로 인사해봤는데 다음부턴 하지 말아야지. 흠흠.


나는 딱 <응답하라 1994>의 주연들, 그러니까 75년에 태어나 94년에 대학에 들어간, 소위 엑스 세대다. 물론 ‘엑스 세대’라고 퉁쳐버리면 지금의 ‘밀레니얼’과 마찬가지로 그 안의 복잡한 맥락들을 싹 다 지워버리니 이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대라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의미를 곱씹게 되는, 일종의 애증이 있다. 다만 최근 양준일 신드롬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나의 90년대를 생각할 때가 좀 늘긴 했다.


생각해보면 90년대는 아무래도 기이한 시절이긴 했던 것 같다. 음악은 물론이고 광고부터 영화, 드라마, 문학까지 죄다 이상한 것들이 인기를 끌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다는 감각은 세상에 없던 것, 낯선 것, 그래서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여행스케치 –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1989)

내게 90년대는 이 노래와 함께 왔다. ‘별이 진다네’의 여행스케치 1집이 동물원과 함께 아마추어리즘을 대변했다면, 2집은 조동익, 장기호, 함춘호, 정원영 같은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과 작곡가 예민이 합세한 프로페셔널한 앨범이었다. 특히 70년대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의 그룹 동방의 빛(강근식, 조동진, 조원익, 이호준, 배수연, 유영수 등) 멤버이자 하나뮤직의 초창기 리더 겸 서울음반의 부장으로 재직한 조원익이 기획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내게 이 앨범은 80년대와 90년대를 잇는 다리였다.


음악에 국한해 생각한다면, 90년대는 ‘새로운’ 소리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 범위는 매우 넓어서 피아노와 현악기가 활용된 고급가요(그땐 정말로 이렇게 불렀다)부터 신시사이저와 미디가 주도하던 팝, 그리고 전기 기타가 맹렬하게 이끄는 헤비메탈이나 하드 록 발라드, 여기에 장르 무관하게 가요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인디 록이 포함된다. 물론 그런 것들을 듣기 위해 인천에서도 동인천, 주안, 부평을 떠돌고 또한 서울에서도 대학로, 종로, 신촌, 홍대, 압구정동 같은 동네를 뽈뽈거리며 돌아다녀야 했지만, 덕분에 제법 다양한 음악들과 함께 자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음악들이 나를 키운 셈이다.

최진영 – 너를 잊겠다는 생각은 (1990)

고 최진영 배우와는 동명이인으로, 이 최진영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같은 드라마 주제곡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다. 물론 내게는 이미 그전에 발표했던 이 노래들로 기억되는 가수로, 막 중3이 된 내가 ‘동아기획’이란 레이블을 믿고 듣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런 곡을 들었지만 사실 90년대 초반에 음악 좀 듣는다는 아이들은 헤비메탈을 들었고 블랙 신드롬, 사하라, 블랙홀, 다운타운 같은 메탈 밴드들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중 B612는 스키드로우, 건즈 앤 로지스, 본 조비 류의 ‘감정 과잉 메탈 발라드’의 가요 버전 중 최고로 꼽았다.

B612 – 나만의 그대 모습(1991)

대학에 입학하자 민중가요라는 새로운 음악이 기다리고 있었다. 꽃다지, 메아리, 노래공장을 비롯해서 새벽, 천리마, 조국과 청춘, 메이데이와 이스크라까지 거르지 않고 들었는데 그중 천지인은 민중가요에 대한 개념을 바꾼 그룹이다. 지금 들으면 여러모로 만듦새가 촌스럽지만, 그때는 그것 또한 나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물론 그사이 멍키헤드 1집 테이프를 ‘말 그대로’ 늘어지게 듣고 다녔는데, 그땐 이렇게 과격하고 괴상한 음악이 꽤 쿨하게 들렸다.

천지인 – 청계천 8가(1993)

멍키헤드 – 부채도사와 목포의 눈물 (1994)

한편, 90년대는 ‘트렌디 드라마’의 시대기도 했다. 물론 80년대 일본 청춘 드라마에서 구조적 원형을 찾을 수 있겠지만, 1992년 <질투> 이후 한국 드라마는 기존과 다른 문법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파일럿>도 그중 하나다. 주제곡은 윤상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나중에 업타운으로 활동하는 정연준이 불렀다. 새삼, 굉장히 건강한 팝이다.


여기에 <내일은 사랑>과 <우리들의 천국>을 빼놓을 수 없을 거다. 대학 생활을 다룬 ‘캠퍼스 드라마’로 양대산맥, 용호쌍박을 이룬 이 작품 중 <우리들의 천국>은 요즘 미드처럼 몇 회마다 다른 노래를 엔딩 곡으로 소개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그중 이주원의 ‘아껴둔 사랑을 위해’는 한 세대의 기억을 좌우할 만큼 히트했는데, 이신의 ‘나의 너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화제의 노래였다. 당시 대표적인 바이럴 마케팅이던 길보드차트(시내 곳곳에서 불법 복제된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리어카를 이렇게 불렀다)를 점령할 만큼 높았다. 둘 다 손무현(“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가 그의 노래다)이 작곡한 곡으로, ‘나의 너에게’는 윤상이 프로듀싱했다.


또한 90년대에는 광고의 시대기도 했는데, 초콜릿을 비롯해 탄산음료와 캔커피 광고가 10대들을 사로잡았고, 그중 김승기의 ‘햄’은 유호정이 출연한 맥스웰 캔커피 광고를 통해 꽤 인기를 얻었지만 아깝게 묻힌 곡이다.

정연준 – 파일럿 (1993)

이신 – 나의 너에게(1994)

김승기 – 햄(HAM) (1992)

90년대 초반, 춤을 사랑하는 힙한 젊은이들은 락카페에 갔지만 춤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거기에 한두 번 밖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나이트클럽에도 딱 한 번 가봤으니 내게 댄스 음악은 그야말로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개념이었다. 물론 쿨도 좋아했고, 듀스도 좋아했다. ‘뿌요뿌요’, ‘버스 안에서’ 같은 90년대 중반에 쏟아져 나온 원 히트 원더 댄스곡들도 빠짐없이 들었다. 그때 군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곡들이 있다. 나중에 컬트라는 그룹을 결성해 “너를 품에 안으면”이라는 곡을 만든 김준선의 데뷔곡 ‘아라비안 나이트’는 양준일의 ‘리베카’를 처음 봤던 그 충격(뭐야 이거 무서워!)을 다시 받았던 곡이다. 이오스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세련된 비트에 신해철이 가사를 썼다는 점으로 내게는 지울 수 없는 곡이 되었다. 이오스의 보컬 김형중은 나중에 토이의 객원 보컬로 ‘좋은 사람’을 불렀다.

김준선 – 아라비안 나이트(1993)

컬트 – 너를 품에 안으면(1995)

이오스 – 지울 수 없는 기억 (1994)

그리고 1997년 군대에 있던 처지와 딱 맞아떨어졌는지, 절절한 가사와 멜로디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곡이 바로 사준의 ‘메모리즈’와 수의 ‘썸데이’였다. ‘메모리즈’는 H.O.T.의 ‘캔디’, UP의 ‘뿌요뿌요’ 같은 당대 히트 댄스곡을 대거 작곡한 장용진 작곡가의 발라드곡이고, 수는 좋은 음악에도 불구하고 당시 레즈비언 논란으로 활동이 금지되다시피 했던, 한국 사회의 이중성이란 점에서 베이비복스와 함께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곡이다.

수 – someday (1997)

사준 – 메모리즈(1997)

90년대 초반의 나는 자율학습을 빼먹고 음악감상실(극장처럼 입장료를 내고 스크린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던 곳)에서 죽치던 꼬꼬마였고 20대에는 대안 문화나 하위문화 같은 말을 좋아하는 운동권 언저리의 꼬꼬마였다. 그렇게 인천의 심지, 신촌의 백스테이지, 종로의 코아아트홀, 홍대의 시네마떼크 빛, 사당의 문화학교서울,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 등을 떠돌던 내게 홍대앞 인디씬은 남다른 의미였다.


그 시절을 가로질러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코코어, 미선이, 유앤미블루, 롤러코스터 등의 곡이다. 코코어 1집의 히든 트랙으로 숨어 있던 ‘비 오는 밤'(원래 제목이 없는데 팬들이 임의로 붙였다), 루시드 폴이 밴드 멤버였던 미선이의 쨍하게 차가운 ‘시간’, 이승열과 방준석을 알게 해준 유앤미블루의 ‘그날1’ 같은 곡들이 90년대 후반의 시간을 정의했다.

코코어 – 비오는 밤 (1995)

미선이 – 시간 (1996)

유앤미블루 – 그날1 (1996) *앨범전곡

그리고 마침내 롤러코스터다. 나의 90년대는 롤러코스터로 닫혔다. 한참 뒤 생각해보니, 내게는 롤러코스터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를 이어주는 음악이기도 했던 것이다.

롤러코스터 – 습관 (1999) *앨범전곡

하지만 어떤 기억이라도 하나 혹은 몇 개의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것마저도 내 기억의 일부일 뿐이고, 같은 시간대의 누군가는 이것과는 매우 다른 음악을 기억할 것이다. 새삼 우리는 매우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또 잊어버린다. 그러는 동안 어떤 영화와 드라마가, 글이나 만화, 음악이 우리를 조금씩 키울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지금 곁에 있는 음악을 소중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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