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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세척기'를 아직도 안 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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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우리집은 설거지 안 해요. 그냥 담가 두기만 하세요”

몇 년 전 해외 출장길에 지인의 집에 며칠 동안 신세를 졌던적이 있다. 아무래도 남의 집에서 먹고 자는 것은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설거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거지를 안 한다니… 아! 식기세척기가 있구나. 그런데 저거 제대로 닦이는 건가?


식기세척기는 왜 이렇게 미움을 받을까

어쩌다 보니 가전에 대한 이야기가 ‘진작 살걸 그랬지…’하는 후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번 글인 <진작 살 걸 그랬지, 스타일러>를 참고하시길. 이번에는 1년 반 정도 우리집 설거지를 도맡고 있는 ‘도우미님’ 식기세척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식기세척기는 기대가 큰 제품이지만 동시에 가장 억울한 가전제품이 아닌가 싶다. 쓰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물과 전기는 생각보다 훨씬 적게 쓰고, 설거지는 아주 잘 한다. 나보다 훨씬 잘 한다. 그런데 식기세척기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지 않다. 아니, ‘사도 되나?’를 넘어, ‘사지 말라’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제품이다.

식기세척기를 구입하는 순간까지도 적지 않은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니까 ‘잘 닦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사실 ‘가전제품’이라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는 기계다. 식기세척기는 설거지를 하는 기기인데 그릇을 잘 못 닦는다면 존재의 의미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아니 식기세척기가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설거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진다니 더 빨리 사봐야겠다!…가 아니라 왜 그렇게 평판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으니 일단 사고 보자!?


이 평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식기세척기는 서구의 넙적한 접시에 어울리고 밥그릇, 국그릇같은 우리나라의 오목한 식기는 닦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제대로 닦이는 건가?’라는 내 의문도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반응이고, 지금도 ‘우리집에 식기세척기 있다~’라는 말을 꺼내면 누군가는 시리처럼 ‘그거 제대로 닦이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구구단처럼 ‘우리나라 식기는 잘 안 된다던데…’라는 부연 설명이 이어진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를 했던 나 스스로도 그전까지는 식기세척기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구구단’을 외는 이들도 식기세척기를 써보지 않았다. 맞다. 써 본 사람들은 “꼭 사라!”고 말한다. 식기세척기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도시전설’이었던 것이다.


잘 씻긴다. 진짜 잘 씻긴다. 잘 씻긴다고!

우리집 식기세척기는 밀레의 G4910SCi다. 밀레 제품 중에서는 보급형에 들어가지만 다른 제품보다 훨씬 비싸다. 밀레 제품을 사고 싶었던 자기 합리화 같지만 여느 가전제품이 그렇듯 밀레는 비싸도 확실하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식기세척기는 밀레와 밀레가 아닌 제품으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꽤 눈에 띄었다.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불신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제대로 가자고 마음 먹었고 싱크대 공사 날짜를 잡았다.


빌트인 제품이지만 설치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약속을 잡고 설치 기사가 집에 찾아와 식기세척기를 놓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를 상의했다. 요즘 식기세척기가 늘어나면서 싱크대도 나름의 규격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싱크대의 한 칸을 빼 내면 식기세척기가 딱 들어맞는다. 전기와 상하수를 연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아, 싱크대 한 칸을 비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 작은 서랍들 안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밀레의 빌트인 제품들은 앞판의 디자인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 소재와 색깔을 꽤 많이 고를 수 있는데 선택 장애가 있다면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비싼 금속 재질로 결정했는데, 닦아내기 편한 데다가 잘 어울리고 질리지 않아서 잘 고른 것 같다.


설거지는 보통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세 시간 반까지 걸린다. 그릇들을 잘 맞춰서 엎어두고 세제를 넣은 뒤 시작 버튼만 누르면 된다. 식기세척기용 세제는 보통 가루나 고체 형태를 많이 쓴다. 제품에 따라서 액체 세제를 쓰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고른 제품은 꼭 고체, 가루 세제만 쓰게 되어 있다. 여러가지 메뉴가 있는데 이런 제품들이 그렇듯 자동 모드에 두고 쓰는 경우가 많다. 물과 전기를 아껴쓰는 에코 모드, 그리고 설거지 물의 온도와 속도를 높이는 옵션들이 있다.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잘 씻긴다는 이야기다.

자, 그래서 얼마나 잘 닦냐고? 가전 이야기를 쓸 때마다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는데 식기세척기도 마찬가지다. 나름 그릇을 뽀득뽀득 잘 닦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기계 안에서 나온 그릇은 느낌이 좀 다르다. 한 마디로 광이 난다. 그 동안 설거지를 제대로 안 한 건 아닌데 좀 다르다. 그래도 주변에서 잘 믿어주지 않는다. 그 동안 들었던 질문들을 정리해볼까 한다.



Q1. 그래서, 진짜 그릇 잘 닦이나?

A. 그릇에서 번쩍이는 광이 난다.


손으로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본다. 뜨거운 스팀으로 씻어내기 때문에 음식물은 물론이고 기름기도 깨끗이 닦인다. 무엇보다 와인글래스처럼 예민한 식기는 아주 만족스럽다. 물만 쏘고 수세미로 직접 문지르지 않기 때문에 흠집이 나지 않는다.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문지르지 않는 세차’를 떠올리면 된다. 물론 쓰던 그릇도 광이 살아난다. 창피하지만 ‘이 그릇이 원래 이랬구나…’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Q2. 우리나라 그릇은 오목해서 안 닦인다는데?

A.애초에 컵도 닦는 게 식기세척기다.

입구가 좁은 와인잔도 잘 닦인다. 식기세척기 트레이에 그릇을 잘 꽂아놓기만 하면 그릇 깊숙한 속까지 다 닦아낸다. 밥그릇, 국그릇 쯤이야…


Q3. 달그락거리고, 시끄러운 것 아닌가?

A. 식기세척기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집안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나거나 특별히 층간 소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길다란 막대가 돌면서 뜨거운 물을 위로 뿜어 그릇을 닦아내는 식이기 때문에 ‘쉭쉭~’하는 소리 정도가 들린다. 그냥 설거지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조용하다. 설명서를 찾아보니 30~40dB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밤에 돌려도 된다는 이야기다.


Q4. 물, 전기를 엄청나게 쓴다던데…

A. 아니다.

설거지 시간이 길다보니 물이나 전기를 많이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사실 가장 놀랐던 부분인데 물과 전력 소비는 놀랄만큼 적다. 식기세척기의 원리는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쏘는 것인데, 표면을 닦아낼 만큼만 아주 미세하게 뿌리기 때문에 물 소비량이 적고, 그렇기 때문에 전기도 적게 쓴다. 다만 시간은 꽤 오래 걸린다.

제품 설명서에는 에코모드에서 물을 6.5리터 쓰고, 전력 소비량은 0.45kWh라고 한다. 설거지를 해보면 알겠지만 물 6.5리터면 밥솥 하나 닦으면 흘려보내는 수준이다. 그리고 전기요금은 0.45kWh면 한 번 설거지하는데 넉넉잡고 100~200원이면 된다.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식기세척기가 쓰는 전기량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Q5. 넣기만 하면 다 씻기나?

A. 식기세척기라고 해서 모든 설거지를 다 해주는 건 아니다.

먹던 그릇을 그냥 넣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음식물 찌꺼기는 털어내야 한다. 애벌 설거지 정도는 해서 넣는 게 결과물이 깨끗하기도 하고 식기세척기 관리에도 유리하다. 음식 찌꺼기를 걸러내는 망이 있긴 한데, 간단히 헹궈서 넣으니까 별로 찌꺼기가 걸리지 않는다.


애벌 설거지라고 하면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거네…’라고 할 수 있는데 밥 그릇에 묻은 밥풀을 물로 흔들어서 떼어내는 정도면 충분하다. 큰 건더기만 떼어내고 넣으면 된다. 대신 그릇 테트리스를 잘 해야 한다. 그릇이 포개져서 물이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당연히 그 부분은 안 닦인다.


그리고 설거지가 끝나면 문을 꼭 열어 주어야 한다. 식기세척기 안에 가득찬 뜨거운 수증기를 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제품이 있는데 가능하면 이 옵션이 있는 것으로 고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의외로 손은 가는 편이다.


Q6. 그렇게 좋다면 왜 대박이 나지 않았나?

A. 여전히 식기세척기는 사치재다.

빨래하는 세탁기를 사치재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릇 닦는 건 아직 사람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설거지도 하기 싫으면 밥숟가락 놓으라’는 이야기는 참 자극적이다.


무엇보다 식기세척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릇을 모아서 씻어야 한다는 점이다. 혼자 밥그릇, 국그릇 하나씩에 반찬 덜어먹은 접시 한 두 개 넣고 돌리기는 애매하기 때문이다. 식기세척기의 용량이 보통 6인용, 12인용으로 나오는 이유도 2인 가족이 하루 세 끼 쓰는 그릇을 모으면 6인분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12인용은 4인 가족의 세 끼니 그릇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니까 싱크대에 그릇 쌓이는 것을 보기 어렵고 그때그때 씻어 놓아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은 그 과정이 곤욕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작은 걸 샀다가는 그릇이 넘쳐서 고무장갑을 껴야 하는 수가 생긴다.


식기세척기는 생각보다 괜찮은 기계다. 쓰면서 느끼는 것은 몇 가지 오랜 인식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빨래를 세탁기에 맡긴다고 ‘게으르다’고 손가락질받지 않는 것처럼 식기세척기나 로봇청소기의 힘을 빌리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문화와 습관, 그리고 생각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익숙해지면 “진작 살 걸 그랬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바로 식기세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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