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하자마자 엄청난 줄이 이어진 블루보틀 성수점

조회수 2019. 5. 3. 11: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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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디에디트의 외고 노예’였던’ 김작가다. 오랜 노예 생활 끝에 오늘부터 신분 상승했다. 하하하하. 이제 디에디트 에디터B로 불러주시길. 따박따박 월급 받으며 글도 따박따박 쓸 예정이다. 의미있는 입사 첫 기사로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과거 노예 시절에 썼던 기사들이 주로 공간에 관한 것들이더라. 때마침 첫 출근하는 날, 블루보틀이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성수동의 블루보틀 한국 1호점으로 출동했다.

커피를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블루보틀. 흰 바탕에 파란색 물병이 그려진 그 로고가 예뻐 보여서 일본에 가는 친구에게 ‘혹시 도쿄에 가면 머그컵 하나만…’ 이라고 부탁한 사람들 꽤 있지 않나. 나도 그랬다. 2005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카페는 2015년 일본에 진출한 뒤 도쿄, 교토 등 일본에만 10개의 매장을 열었지만, 한국 진출 소식은 소문만 무성했다. 그 블루보틀이 드디어 한국에 매장을 연 것이다.

‘에이, 카페 하나가 뭐라고…’라며 호들갑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카페 애호가들에게는 꽤 빅 뉴스였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나 외국 브랜드라는 게 이유는 아니다. 그 유명세의 이유에는 천천히 내린 ‘맛있는 커피’라는 기대가 있었다.

성수동에는 대림창고, 어니언, 오르에르 등 유명한 카페들이 많은데 거긴 성수역 인근이다. 블루보틀이 자리를 잡은 곳은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뚝섬역 근처다. 성수동 핫플레이스보다는 덜 붐비고, 서울숲과 더 가까운 곳이다.

블루보틀은 각 매장마다 조금씩 다르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성수점의 디자인은 일본의 공간 디자이너 조 나가사카가 맡았다. 폐가를 개조해 이솝 도쿄 아오야마점을 디자인하고, 일본의 많은 블루보틀 매장을 작업했던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자주(JAJU) 코엑스점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조 나가사카는 오래된 가옥을 허무는 방식이 아니라 가구나 목재를 살리고 자연광을 살리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데, 성수점에서도 그런 점을 살렸다. 통유리 덕분에 자연광이 블루보틀을 내부를 통과하는데, 노출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따뜻하게 만들더라.

내려가자마자 바로 마주치는 건 ㄷ자 카운터. 꽤 넓은 공간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카운터에서 커피에 관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블루보틀이 다른 카페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바로 단순한 메뉴 구성. 봄이 되면 벚꽃향이 들어가고, 녹차맛도 넣었다가, 인절미도 넣는 등 끊임없이 메뉴를 늘려 유혹하는 다른 카페 브랜드와 반대되는 점이다.

나는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는 뉴올리언스를 골랐다. 볶은 치커리 뿌리와 굵게 갈아낸 원두를 찬물에 넣어 12시간 동안 우려낸 콜드브루에 우유와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섞어 만든 커피 음료라고 바리스타가 설명했다. 카페라떼 보다 달짝지근할 거라는 말과 함께. 바리스타는 손님을 대하는 데 꽤 능숙하고도 여유로워 보였고, 함께 먹으면 좋은 디저트로 휘낭시에를 추천해줬다.

주문이 들어가면 10명이 조금 넘는 바리스타들이 ㄷ자 공간 안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 5분 정도가 흘렀을까. 주문하며 남겼던 이름을 바리스타가 부른다. “에디터B님! 에디터B님!” 그렇다. 여기는 진동벨이 없다. 매번 이렇게 육성으로 직접 부른다.

바리스타와 손님이 얼굴을 맞대어 이야기하고, 커피에 집중할 수 있게 전자기기를 최대한 없애는 블루보틀의 철학이 반영된 시스템이다. 오늘은 손님이 많았던 탓에 북적였다. 자신의 이름을 듣지 못한 손님을 찾느라 바리스타가 카운터를 나와 찾아다니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20분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공간을 둘러 보았다. 블루보틀이 추구한다는 그 가치. ‘커피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최대로 끌어낸다’ 꽤 거창해 보이는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이 곳에는 대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거의 없었다. 글로벌한 브랜드라면 ‘우리는 공정 무역해요’ 같은 포스터나 커피 농장 사진, 분위기 좋은 일러스트가 있을 법한데, 블루보틀에는 없었다.

심지어는 노랫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 큰 공간에서 스피커가 4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대화를 위한 블루보틀의 신념은 참 무서울 정도다.

블루보틀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겠다는 마음으로 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에이 별거 없네’, ‘여기가 왜 유명한거야 도대체’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이미 매장에 다녀온 사람들의 심심하다는 평가를 듣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직접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양한 취향 앞에서 별거없음과 미니멀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성수에 들어온 빨간 벽돌 건물의 블루보틀이 마음에 들었다. 집요한 일관성을 가진 미니멀리스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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