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시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 단어

조회수 2021. 11. 26. 09: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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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철인의 마음

출처: 2017년 KBS뉴스의 한 장면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시인 윤동주(1917-1945). 그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哲人)이었다.

윤동주의 시에는 ‘부끄러움’이 없는 삶에 대한 시적 탐색이 쉽고 간편한 우리말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어’를 쓰면 출세는 물론이고 삶도 제대로 보존하기 힘들었던 악랄한 식민지 치하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그의 시 곳곳에 등장한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_〈코스모스〉 3연(1938년 9월)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_〈길〉 5연(1941년 9월)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_〈별 헤는 밤〉 8연, 9연(1941년 11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_〈쉽게 씌여진 시〉 7연(1942년 6월)

출처: 영화 <동주>(2015) 스틸컷

시인의 모어가 1941년 3월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한 해 전 지금은 옛 영광을 망각한 양대 신문이 폐간되고, 시인의 등단이 되어줄 문학잡지도 따라서 출간이 금지된다. 그의 대학 4학년 가을, 그는 시를 하나 또 쓰게 된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_〈길〉 5연(1941년 9월)

나라를 잃고 이름을 잃고 언어를 잃어도 시인 노릇을 못할 것도 없었다. 그때도 시인은 많았다. 다른 이들처럼 현실을 짐짓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낯을 못 들고 치욕과 수치에 울었다.

출처: 영화 <동주>(2015) 스틸컷

윤동주는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일제는 그를 생체실험 대상으로 취급했다. 1945년 3월 만 27년 2개월 동안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던 시인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난다.

“우리 제발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

- 영화 <베테랑>에서

신화적 상징에서 아담과 이브가 이성을 갖추고 난 뒤 수치에 사로잡히면서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듯, 인간은 뭇 동물들 가운데 얼굴을 붉히는 유일한 종이다. 만약 얼굴을 붉힐 만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낯’이 뜨거워지고, 이러한 ‘체면’을 살피지 못하면 ‘후안무치’나 ‘철면피’라는 모욕을 듣는다. 그래서 ‘쪽팔리다’라는 속어는 우리가 얼마나 수치라는 감정을 중시하는지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부끄러움은 줄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나의 몫이 되는 일과 뻔뻔한 사람들의 사건 사고들은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마주하고 있다.

어느새 부끄러워하는 것은 약점에 대한 자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뻔뻔함과 스스로를 명품에 빗대 과시하는 모습은 멋이 되어 가고 있다.

출처: 영화 <동주>(2015) 스틸컷

시인 윤동주를 오래 기억하고 사랑하는 우리. 우리는 그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_〈서시〉(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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