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복병 만난 '반도체 사이클'..호황이냐 불황이냐

조회수 2020. 4. 27.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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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관련 업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가 있다. 바로 반도체 사이클이다.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에서 따와 '실리콘 사이클'이라고도 한다. 반도체 산업 호황과 불황 주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197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 경기가 4년에 한 번씩 호황이 반복되는 현상이 이러한 키워드를 탄생시켰다. 물론 불황도 4년마다 찾아온다.

실리콘 웨이퍼

시장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반도체 사이클 주기도 조금씩 변한다. 일각에서는 3년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체로 3~4년으로 의견이 수렴되는데, 반도체 가격과 관련 기업의 실적을 보면 크게 틀리지도 않다.

가장 가까웠던 호황기는 언제일까. 메모리 반도체 기준으로 2018년 정도로 보는 게 적당하다. 2017년 3분기부터 D램 가격이 급등했다. D램 고정 거래 가격은 2018년 9월 정점을 찍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전은 상승세를 탔다. 이후에는 하락세다.

DDR4 D램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8Gb가격은 지난해 10월 2.81달러까지 떨어졌다. 2018년 9월 최고치인 8.19달러에서 65%나 급락했다. 2.81달러가 바닥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후 두 달 동안 DDR4 8Gb 가격은 보합세를 유지했다.

정점인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반도체 사이클을 생각해보자. 빠르게 잡으면 3년이다. 즉 2021년 9월 정점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36개월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반도체 사이클은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매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추정치이지만, 2021년 정점을 앞두고 D램 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바로 가격 반등이다.

반도체 호황, 오는 것 같더니...코로나 19에 덜컥

반도체 가격 반등의 신호는 올해 1월 감지됐다. DDR4 8Gb의 2020년 1월 가격은 2.84달러였다. 전월 대비 1.1% 상승했다. D램 가격이 상승한 건 13개월 만이다.

상승세'라고 표현하기에는 이르다. 1월 이후에도 D램 가격이 올라야 일시적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2월 DDR4 8Gb 가격은 2.88달러를 기록했다. 전달보다 1.41% 올랐다. 한 번 더 올랐지만, 확신하긴 어렵다. 3월에는 2.94달러를 기록했다. 다시 2.1% 올랐다. 3개월 연속으로 D램 가격이 오르자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반도체 호황 사이클이 다시 돌아오고 있구나'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D램익스체인지는 "PC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계속해 메모리 재고를 쌓는 중이라 현재 상황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또 "3월 이뤄진 거래 대부분은 1분기 추가 수요 계약으로 4월 맺을 2분기 계약을 고려하면 가격 상승 폭이 더욱 클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전망했다. D 램뿐만 아니라 낸드플래시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 반도체 호황기 도래의 믿음을 보다 견고히 했다.

반도체 호황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 19)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각 국가는 방역을 위해 하늘길과 뱃길을 닫았다. 미국과 유럽 등 코로나 19 확산이 빠른 국가에서는 공장 가동 중단도 잇따랐다.

실업자는 쏟아지고 경기 전망은 어둡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GDP 기준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2.8%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1월 내놓은 경제 성장 전망치보다 5%P 낮춘 것이다. 각국 봉쇄가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이어질 것이란 가정 하에 내린 판단이다. 만약 국가별 봉쇄 정책이 3분기까지 이어지면 -8%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 사이클 기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요동치는 반도체 사이클, 불확실성 ↑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라는 것이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증권거래소가 발표하는 '반도체업종지수(SOX)'다.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 주가를 토대로 반도체 경기와 기술주의 선행 지표다. 미국 반도체 주의 가격 동향을 파악하는데 활용하지만, 반도체 산업 경기와도 어느 정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 예측에 도움이 된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3년

이 지수는 2017년 D램 값이 상승했을 때부터 본격적인 우상향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점을 찍었던 2018년 하반기부터는 하락 곡선이 보였다가 2019년을 시작으로 상승과 반복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2019년 중후반부터 다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고점을 찍었다.

2019년 중후반부터 보인 상승세를 두고 반도체 경기가 다시 회복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1년 단위로 보면 상승하는 모습이 보다 명확하다. 반도체 호황 사이클 도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1년

문제는 2월 이후부터다. 2월 이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급락했다. 거의 2019년 이전 상황까지 떨어졌다. 지금까지 차근차근 쌓아올린 지수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반도체 사이클의 회귀에 대한 기대도 무너졌다.

갑작스럽게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미끄러진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코로나 19다. 코로나 19 사태로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상황에 반도체 산업이라고 피할 도리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4월에 접어들면서 저점을 찍었던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다시 회복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우상향 추세지만, 정확하게는 '요동'치고 있다는 게 적절해 보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반도체 산업의 모든 것을 표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흔들리는 그래프를 보면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반도체 사이클, 정확하게는 호황 도래를 발목 잡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효과에 따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서버용 웃고, 모바일용 울고

분명 코로나 19 사태가 반도체 사이클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모든 반도체 분야에서 성장 중심이 흔들리는 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를 기준으로 보면 보통 서버·PC용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용 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코로나 19의 칼날이 서버·PC용 메모리 반도체에는 무뎌지는 모양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데이터 센터 서버 수요가 늘어나 2분기 출하량이 전분기 대비 7~9%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19 여파를 고려한 전망치다.

1분기 2분기 서버 출하량 전망

미국 기업들의 클라우드 서버 투자 수요가 우선 확대됐다. 중국에서 5세대(5G) 이동통신과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위해 적극 투자하는 것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따라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출하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중국 내 정보기술(IT) 기업의 사업 확장도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힘을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하면서 재택근무로 인한 원격 서버 시스템 수요, 자가 격리로 인한 전자상거래 증가,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률 증가로 서버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함께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 19의 역설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면 문제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성장 추세를 거스르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트렌스포스는 "2020년 서버 출하량은 지속 증가할 것"이라며 "상반기 코로나 19 확산세가 멈춘다면 전년대비 5% 성장, (코로나 19 사태가)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3%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모바일 메모리 반도체는 죽을 쑤고 있다. 스마트폰이 안 팔리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자 소비를 뒤로 미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경기가 어려우니 새 폰은 나중에 사겠다'는 심리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코로나 여파로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13% 급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스트래티지애널리스틱스, 연간 기준) 삼성전자의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도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유안타증권은 올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12% 줄어든 2억5000만대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 19로 인해 스마트폰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있었지만 최근 회복할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소비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SA가 중국 내 1300명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중 37%는 신규 스마트폰 구입을 뒤로 미뤘다고 응답했다. 또 32%는 5세대(5G) 이동통신 가입을 유예할 것이라고 밝혔다. 암울한 스마트폰 시장에 모바일용 반도체가 빛을 볼리 만무하다.

경기 침체 버틴다면...

올 기미가 보였던 반도체 사이클이 코로나 19로 인해 발목 잡혔지만, 이 유예 기간의 끝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별로 코로나 19 사태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 지가 관건이다.

코로나 19가 종식된 이후 소위 'AC(After Corona)' 시대에서는 어떨까. 코로나 19 사태를 학습한 만큼 IT 인프라 확충에 대한 수요가 꾸준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로 인해 서버와 PC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한층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장밋빛 미래다.

반면, 모바일용 메모리 반도체는 지속적 스마트폰 출하량 감소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할 공산이 크다. 5G가 성장 동력인데, 이 동력을 어디까지 이어갈지 주목된다.

장밋빛 미래든 어두운 미래 든 코로나 19로 인한 장기간 경기 침체를 견뎌야 도래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2017~2018년에 버금가는 반도체 사이클은 아직 오지 않았고, 코로나 19는 여전히 이 사이클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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