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두 번째 기로에 섰다

조회수 2020. 3. 23.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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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에겐 꼬리처럼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한때'다. 노키아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한때다. 스마트폰 시장으로 급변하는 추세를 읽지 못한 노키아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98년부터 13년간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던 노키아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2013년 휴대전화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54억4000만유로(7조2000억원)다.

노키아 휴대전화

노키아를 상징하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 바로 부활이다. 휴대전화 사업을 버린 노키아는 통신장비에 집중했다. 2014년 노키아와 지멘스 합작법인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의 지멘스 보유 지분 절반을 26억달러에 인수했다. 휴대전화 회사에서 통신장비 회사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이후 노키아는 통신장비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2014년 이후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톱 3안에 빠진 적이 없다. 2015년 프랑스 유선 통신장비 강자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한 직후에는 세계 2위까지 도약했다. 강력한 기술력을 앞세워 특허료로 매년 1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트레일러 타입의 노키아 통신장비

노키아의 부활은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화웨이가 통신장비 시장 정점에 깃발을 꽂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활의 신호탄을 쏜 2014년 이후 6년이 지난 올해. '한때' 잘 나갔던 과거의 영광은 이제 통신 장비 사업을 수식하는 단어가 될지도 모르게 됐다. 또다시 몰락의 늪에 빠질 것인가, 부활의 날개를 다시 펼칠 것인가. 노키아는 두 번째 기로에 섰다.

라지브 수리 노키아 CEO. 차기 CEO인 페카 룬드마크는 2020년 9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다

외신에 따르면, 2014년 노키아 수장 자리에 올라 회사와 함께 부활의 길을 걸었던 라지브 수리 CEO가 전격적으로 물러난다. 후임자는 에너지 회사 포텀을 이끌었던 페카 룬드마크다.

수리 CEO 퇴임은 노키아 경영난에 책임을 물은 결과로 보인다. 노키아 주가는 실적 부진으로 지난 1년 동안 30% 가까이 떨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배당금 지급도 중단했다. 수리 CEO는 대책 마련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고, 결국 올해 사령탑에서 내려오게 됐다. 

노키아 내부에서도 세계 통신 장비 시장에서 자사의 지배력이 악화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부활의 아이콘이었던 노키아가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대외 요인이자 가장 큰 위협인 화웨이 파급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화웨이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잠식할 때, 노키아의 대응 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롱텀에벌루션(LTE)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5세대(5G) 이동통신에 쏟아부은 화웨이와 맞서 싸우기에는 노키아 전력이 부족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2015년 노키아의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9%로 2위다. 화웨이는 24%로 노키아 뒤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다음 해 화웨이는 노키아를 앞질렀고, 노키아는 지금까지 화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괜찮은 한수라고 평가받았던 알카텔 루슨트 인수도 크게 빛을 발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가 2015년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할 때는 '유·무선 통합 솔루션 제공'이라는 전략에 기대감이 컸다. 노키아의 무선 통신 장비와 알카텔 루슨트의 유선 통신 장비 솔루션을 결합, 고객에게 '엔드 투 엔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굴지의 통신 장비 회사 가운데 이러한 '엔드 투 엔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는 화웨이와 노키아밖에 없었다. 에릭슨은 무선 쪽 강자였고, 미국의 통신 장비 회사로 유명한 시스코는 유선 쪽이다. 삼성전자 또한 무선 통신 장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노키아의 '엔드 투 엔드' 전략도 화웨이의 물량 공세에는 버티기 힘들었다. 오히려 구조조정과 무선 통신 분야에 집중한 에릭슨이 노키아 보다 좀 더 견딜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위권에 미치지 못했던 삼성전자 경우, 5G에 '올인'하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는 모양새다.

5G 통신장비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

사태가 CEO 교체에 이르게 되자, 노키아를 둘러싼 '말'들이 많아졌다. 노키아가 지속적인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다른 회사에 팔릴 수 있다는 매각설까지 나돈다. 블룸버그통신은 노키아는 자산 매각이나 합병까지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노키아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노키아가 사업부 매각을 검토한다고 하더라도 여건이 좋은 건 아니다. 1위 사업자이자 경쟁사인 화웨이에 팔리는 만무하다. 화웨이 입장에서도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에릭슨과의 합병 시나리오도 규제 당국 승인 문제에 발목을 잡혀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통신 장비 회사가 경영난에 허덕일 때는 '매물설'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노키아 경우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에릭슨 등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반 화웨이' 전선을 견고히 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

매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키아가 내외부적으로 큰 변화에 직면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향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사업 개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게 3위 통신장비 회사인 노키아의 변화에 따라 시장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게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노키아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업계 이목이 집중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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