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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칼텍이 만들고 빌 게이츠가 인정한 '물이 필요없는 화장실'

조회수 2020. 3. 14.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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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는 성소이다.

세계화장실협회(WTA)의 임무 성명서 중 한 문구이다. 우리가 매일 '볼일'을 보는 화장실이 이렇게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로 수식되는 존재일까. 집 내부 화장실과 공중 화장실이 많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좀 어색할지 모른다. 시야를 넓히면 상황이 다르다.

케냐의 한 공중 화장실

세계 인구 가운데 절반 수준인 45억명은 안전한 화장실이 없는 환경에서 산다고 한다. 18억명은 배설물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배설물 처리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위생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대표적인 박테리아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염병과 설사병이 특히 치명적이다. 비위생적 환경 때문에 설사병에 걸려 사망하는 5세 미만 어린이도 1년에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에 달한다.

그만큼 깨끗한 화장실은 중요하다. 이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는 사람 중 한명이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직을 사임하고 세계를 여행하다 개발도상국의 화장실 위생 상태에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화장실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화장실 개선 사업 박람회에서 인분이 든 통을 들고 나온 빌 게이츠

2018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화장실 개선 사업 박람회'에서 빌 게이츠는 "자급자족형 화장실을 개발하는데 앞으로 2억달러를 쓰겠다"고 밝혔다. 1994년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설립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앞서 7년이란 기간 동안 위생 개선 사업 분야에 2억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빌 게이츠가 언급한 자급자족형 화장실은 무엇일까. 개발도상국에서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물이다. 현대식 화장실은 한 번에 수 리터의 물을 사용한다. 식수도 확보하기 힘든 일부 개발도상국에는 터무니없다. 물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화장실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자급자족형 화장실이다. 

배설물 처리 시설도 중요하다. 소변과 대변과 같은 배설물을 안전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질병 확산을 야기한다. 이러한 배설물(하수) 처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전력 공급이 필요한데, 전기가 부족한 곳에서는 이 또한 마땅치 않다. 

이에 빌 게이츠가 주목한 기술이 '태양광 전력 화장실'이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2012년 현대적 위생 시설에 접근이 불가능한 사람을 위해 '화장실의 재발견'이라는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화장실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과 아이디어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이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의 '태양광 전력 화장실'이다.

칼텍의 마이클 호프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지속 가능한 화장실을 제시했다. 이 화장실은 물이 필요 없는데,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람이 배설을 하면 배설물이 화장실 아래에 탱크에 쌓인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탱크 안에는 하단의 침전물과 상단의 액체 배설물로 분리된다. 이 액체 배설물을 다시 변기에 흘려 내려보내는 물로 재 활용하는 것이다. 침전물은 따로 분리해 비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운용하면 위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염된 물을 변기에서 재활용하면 변기를 비롯해 화장실 전체가 오염된다. 마이클 호프만 교수팀은 액체 배설물을 정화조에서 전기 분해하는 방식을 택했다. 액체 배설물의 오염 물질을 전기 분해하면 일산화염소(OCl-)와 수소(H+) 이온이 발생한다. 이 일산화염소로 살균과 표백이 가능하다.

즉 전기분해로 발생한 일산화염소로 액체 배설물 속 세균을 죽인다. 연구팀 실험 결과, 살균력은 20~30분 내에 100%에 가까웠다. 마이클 호프만 교수는 "살균 소독한 물에는 이미 염소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다음 번 물을 흘려보낼 때도 (변기 등의) 소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배설물에 존재하는 액체(소변)에서 정화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물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 태양광을 통해 전기 분해 전력을 얻는다. 전기 분해는 약 3V 전압의 전기가 필요하다. 또 전기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는 연료 전지용으로 쓸 수 있다. 정화된 물의 양이 많으면 농업용수로도 활용 가능하다. 

일련의 과정으로 칼텍의 태양광 전력 화장실은 지속 가능하다. 빌 게이츠가 강조한 것과 같이 '자급자족형' 화장실이다.

2015년 칼텍 연구팀은 태양광 전력 화장실을 한층 개선했다. 바로 유지 보수 부분이다. 자급자족형 화장실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모든 시설물이 그러하듯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 태양광 전력 화장실의 부품 중 하나가 고장 나면 이를 재빨리 수리해야지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칼텍 연구팀은 태양광 전력 화장실 구성 요소에 센서를 부착, 스마트폰으로 이상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화장실 부품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알려, 신속히 수리하는 방식이다. 태양광 전력 화장실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저렴한 센서를 이용해서도 충분히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 아이디어는 2015년 보다폰이 모바일과 무선 기술로 세계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프로젝트인 '보다폰 와이어리스 이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1위에게는 3년 동안 30만달러의 프로젝트 지원금이 제공된다.

칼텍의 '태양광 전력 화장실'이 대규모 공급 단계에 있는 건 아니다. 현재 중국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중국 장수성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도 이 화장실을 활용하고 있다. 향후 칼텍의 태양광 전력 화장실과 게이츠 재단의 투자가 시너지를 창출, 세계 각지에서 화장실의 재발견을 이루어 낼지 주목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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