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 '팟인팟'과 '미티쿨'

조회수 2020. 2. 23.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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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이야기하기 전 '기화'를 알고 시작합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물질의 상태 변화에 대해 배운다. 과학 교과 과정이다. 물이 얼고, 또 물이 증발하는 응고, 기화 등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가 등장한다.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라고 한다.

적정 기술을 이야기하는데 중학교 교과 과정을 왜 언급했을까. 이번에 등장하는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의 기본 원리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다. 물질의 상태 변화, 그중 기화 현상이 이번 소재를 다루는데 꼭 필요하다.

물을 100도로 끓이면 수증기가 된다. 기화의 한 종류다. 꼭 100도로 끓이지 않아도 액체 상태의 물이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되기도 한다. 바로 증발이다. 그릇에 담긴 물이 있다면 보통 표면에서 증발 현상이 일어난다. 공기와 접촉된 면이 필요하다. 물은 주변에서 에너지를 받아 주변 분자와의 결합을 끊고 기체가 된다.

여기서 핵심은 '주변의 에너지'다. 물을 끓이기 위해 가열하는 것도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증발을 위해서도 에너지가 공급돼야 하는데 보통 열에너지다. 즉 주변의 열을 흡수해 기체 상태로 변한다. 그렇다면 열을 뺏긴 '주변'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증발 과정에는 이렇게 흡열 반응이 일어난다.

항아리 속 항아리, 흡열 반응을 이용한 '지르' 혹은 '팟 인 팟' 냉장고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전기 없는 냉장고에는 '지르'가 있다. 기원전 2500년부터 이집트에서 사용했다고 하는 저장용 항아리 '지르'에서 이름을 따왔다. 일각에서는 Zero Energy Effect Refrigeration의 앞 글자를 따 ZE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적정 기술로 전기 없는 냉장고가 주목받은 건 지르를 상용화한 '팟인팟(Pot In Pot)' 냉장고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나이지리아 교사인 모하메드 바 아바가 고안했다. 더운 날씨에 음식을 저장하지 못해 애먹는 이웃을 보고 제품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일이다.

팟인팟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과 모래가 필요하다. 우선 진흙을 구워 항아리를 만든다. 작은 항아리와 큰 항아리를 만드는데, 작은 항아리가 큰 항아리 안에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여야 한다.

모하메드 바 아바

작은 항아리를 큰 항아리 안에 넣고 그 틈에 모래를 채운다. 그리고 모래에 물을 부어 축축하게 만든다. 상온에 놓아두면 모래에 있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주변 열에너지를 뺏는다. 앞서 언급한 흡열 반응이다. 열을 빼앗긴 모래는 작은 항아리도 시원하게 만든다. 항아리 위에 젖은 천을 덮어 놓으면 냉각 성능은 향상된다. 팟인팟 냉장고를 두는 장소는 통풍이 잘 되는 곳이 적당하다. 바람이 잘 통해야 수분이 더 잘 증발하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온도를 낮추는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평균적으로 13도에서 22도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날씨가 더워 음식물이 금방 상하는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냉각 성능이다.

어느 정도 음식물을 오래 보관할 수 있을까. 비정부기구 프래티컬 액션의 자료에 따르면, 상온에서 이틀 밖에 보관하지 못했던 토마토를 약 20일간 보관할 수 있다. 구아바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에서 재배하는 오크라라는 채소는 상온에서 4일 보관할 수 있는데, 항아리 냉장고에 넣으면 17일까지 상하지 않는다. 당근도 20일가량 보관할 수 있다.

팟인팟 냉장고는 단순히 음식을 신선하게 유지한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순기능으로 주목받는다. 우선 저장할 수 있는 식재료가 많아져 이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썩어 없어졌던 식재료를 수익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게 특별히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또 식단의 다양화로 많은 이들의 건강 상태를 개선했다. 식품뿐만 아니라 백신 등 의약품의 보관 기간도 늘릴 수 있다. 팟인팟 냉장고가 적정 기술로 조명 받는 배경이다.

인도 주가드의 대표 사례로 부상한 '미티쿨 냉장고'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도에서도 팟인팟과 같은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가 있다. 기본 원리는 같지만 좀 더 '냉장고스러운' 구조와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바로 미티쿨 냉장고다.

미티쿨 냉장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인도의 도예가이자 사업가인 만수크 프라자파티다.

만수크 프라자파티

2001년에 인도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도시는 파괴되고 전기 공급도 당연히 끊어졌다. 만수크 프라자파티의 이웃들은 음식을 보관할만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따금 질그릇에 음식을 두는 모습을 본 만수크 프라자파티는 진흙으로 구워 낸 냉장고 '미티쿨 냉장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미티쿨의 '미티(Mittee)'는 '토양' '흙'이란 의미다.

미티쿨 냉장고 원리는 팟인팟 냉장고, 지르와 유사하다. 캐비닛 모양의 도기 상단에는 물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래에 음식을 보관한다. 물이 토기의 내부에 젖어들면서 증발하면서 미티쿨 냉장고 자체가 시원해지는 방식이다.

문은 투명한 아크릴 문으로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게 했다. 자석을 이용해 미티쿨 냉장고 문이 제대로 닫히게 했다. 초기 미티쿨 냉장고 가격은 약 50달러다. 수백 달러 수준의 전기냉장고 대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미티쿨 냉장고 경우 섭씨 8도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각종 야채 보관 기간을 늘릴 수 있다. 구조와 형태를 바꿔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물을 보관하는 상단부분에 수도꼭지를 달 수도 있다. 여기서 좀 더 시원한 물을 식수로 활용할 수 있다.

증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통풍이 중요하다. 미티쿨 냉장고 수조 공간과 음식 보관 공간 사이를 빈 공간을 둬 바람이 잘 통하게 만들면 수분이 더 빨리 증발할 수 있다.

미티쿨 냉장고는 '주가드(기발함에서 비롯된 즉흥, 독창, 혁신적 해결책이란 의미)'의 대표 사례로도 손꼽힌다. 만수크 프라자파티는 미티쿨 뿐만 아니라 진흙을 이용해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 등을 만들며 사업을 확장했고, 인도의 혁신 벤처 사업가로 주목받았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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