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서아프리카 여성 노동 환경 개선한 '땅콩 껍질 제거기'

조회수 2019. 12. 22.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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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영화를 보며 땅콩 껍질을 까먹는 일이 누군가에는 생존을 위한 노동이다.

서아프리카는 땅콩으로 유명하다. 많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땅콩은 중요한 수익원이자 식량이다. 특히 세네갈은 '땅콩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다. 19세기 프랑스가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땅콩 재배를 장려했기 때문이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무렵 노동인구의 87%가 땅콩 농업에 종사했다. 지금도 땅콩은 세네갈 농민의 중요한 수익원이다.

최근 세네갈을 비롯한 일부 서아프리카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땅콩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다. 아시아에서 쌀을 수입해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콩 재배와 판매는 여전히 이들 국가의 농가에겐 여전히 핵심 경제 활동이자 생존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경제 활동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뤄진다. 성인 남성이 땅콩을 재배하면, 성인 여성과 아이들이 땅콩을 가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땅콩 껍질을 까서 먹기 편한 상태로 만든다.

서아프리카 지역 땅콩 생산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땅콩 가공 업무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는 직접 손으로 땅콩을 제거했다. 지금도 이러한 수작업 방식은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말 그대로 노동 집약적 생산방식이다. 성인 여성들은 하루 종일 땅콩 껍질을 벗기는 일에 매달렸다. 손으로 작업하면 한 시간에 1kg 땅콩 껍질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땅콩 껍질을 까는 일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하루 종일 이 작업에 손발이 묶이는 것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문제다. 땅콩 가공 작업에 투입되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 당한다.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해 다시 빈곤한 삶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도 만만치 않다. 산패한 땅콩 등 견과류에는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성 물질이 발생한다. 이 곰팡이 독에 노출되면 성장 장애, 발달 장애,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지속적으로 중독될 경우 간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땅콩 껍질을 벗기는 여성과 아이들은 이러한 위험에 처한 것이다.

서아프리카 말리에 사는 한 여성이 여행 중인 조크 브랜디스에게 이러한 고통과 위험을 호소했다. 조크 브랜디스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영화인이자 발명가다. 20대부터 자선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말리의 물 처리 시스템 수리를 위해 해당 지역을 찾았다가 땅콩 껍질 제거 작업의 어려움을 인지하게 됐다. 이때가 2001년이다. 

조크 브랜디스(Full Belly Project)

조크 브랜디스는 미국의 땅콩 전문가인 팀 윌리엄스 박사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다. 윌리엄스 박사는 브랜디스에게 불가리아의 땅콩 껍질 제거기 디자인에 대해 알려줬다. 브랜디스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땅콩 껍질 제거기를 재 설계했고, 1년 뒤 '범용 견과류 껍질 제거기(Universal Nut Sheller)'를 개발했다.

범용 견과류 껍질 제거기는 콘크리트 원통(외부 고정 장치)과 렌치·해머 기능을 하는 내부 로터로 이뤄졌다. 로터는 쇠 파이프 등과 연결해 상단 손잡이로 돌릴 수 있다. 콘크리트 원통과 내부 로터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땅콩을 넣으면 된다. 손잡이를 돌리면 로터가 돌아가면서 콘크리트 원통과의 마찰과 압력으로 껍질을 깨부순다. 땅콩은 빠짝 말린 것이 적당하다.

껍질과 땅콩 속은 껍질 제거기 하단 구멍을 통해 아래로 쏟아진다. 이 가운데 먹거나 판매할 땅콩만 골라내면 된다. 장시간 땅콩 껍질을 만질 염려가 없다.

이 장치를 사용하면 시간당 50kg의 땅콩 껍질을 제거할 수 있다. 수작업 대비 생산량이 50배 늘어나는 셈이다. 땅콩 이외에도 다른 견과류 껍질을 벗기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

장치를 만드는 데는 약 5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콘크리트와 일부 쇠 파이프, 철제 부품 등을 구성도 단순하다. 제작 과정도 간단해 누구나 쉽게 범용 견과류 껍질 제거기를 만들 수 있다.

브랜디스는 범용 견과류 껍질 제거기를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미국에서 '풀 베리 프로젝트'라는 비영리 재단을 만들었다. 말리를 비롯해, 우간다, 세네갈, 잠비아 등 아프리카에 장치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가나 지역에서 일부 장치의 효율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보다 많은 지역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브랜디스와 풀 베리 프로젝트는 범용 견과류 껍질 제거기 뿐만 아니라 발로 밟는 펌프, 비누 등 다양한 적정 기술을 개발, 보급 중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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