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속 항공기 시대 연 '제트엔진'

조회수 2019. 12. 5.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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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형제가 하늘을 날았다. 비행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프로펠러를 사용한 비행기였다. 비행기에는 실린더 내 폭발로 직선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바꾸는 피스톤엔진을 사용했다. 하지만 피스톤엔진으로 움직이는 프로펠러식 비행기는 공기 저항에 약했고 구조적인 한계도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제든 새로운 기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새 시대를 열게 된 주인공은 제트엔진이었다. 제트엔진은 공기를 빨아들여 연료를 연소하고 터빈을 회전 시켜 뒤로 다량의 가스를 고속으로 내뿜으며 강한 추력을 얻는다.

X-15
A380

초음속 항공기도 제트엔진 발명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공식적으로 107km 상공에서 마하 6.7 속도를 기록한 'X-15', 약 800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며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A380'도 제트엔진이 있어 가능했다.


제트엔진의 시작은 독일이었다. 괴팅겐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공기역학을 공부한 독일 물리학자 한스 폰 오하인(Hans von Ohain)은 프로펠러 없이 움직이는 비행기를 상상하며 자신만의 제트엔진을 구체화해 나갔다.


당시에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개념적으로는 제트엔진이 피스톤엔진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졌으며 결국에는 제트엔진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이 팽배했다. 단지 기술력만 갖춰지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하인켈 HE 178

독일 항공기 제조업체 에른스트 하인켈(Ernst Heinkel)은 오하인에게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제트엔진 개발에 착수한다. 오랜 연구 끝에 제트엔진이 완성된다. 오하인이 만든 제트엔진은 1939년 개발된 '하인켈 HE 178(Heinkel)'에 탑재된다. 하인켈 HE 178은 제트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제트기로 그해 8월 27일 첫 비행에 성공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5일 전이었다.


하지만 제트엔진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영국 얼스던에서 정비사의 아들로 태어난 프랭크 휘틀(Frank Whittle)이다. 휘틀은 1930년 최초로 제트엔진 특허를 등록한다. 이후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파워 제트(Power Jets)를 설립한다. 별다른 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1937년 4월 12일 비로소 제트엔진 '휘틀 유닛(Whittle Unit)'을 완성한다. 놀라운 발명의 시작이었지만 제트엔진을 대하는 태도는 독일과 달랐다. 다른 국가는 물론 영국에서조차 휘틀의 제트엔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휘틀과 그가 만든 제트엔진

1941년 5월 15일, 휘틀은 개선된 제트엔진 W.1을 '글로스터(Gloster) E-28/29'에 장착하고 비행에 성공한다. 글로스터는 최대속도 545km/h로 약 17분 동안 비행했다.


시간이 지나 휘틀은 항공엔진 제작업체 롤스로이스(Rolls-Royce)에 엔진 개발과 생산을 넘긴다. 1944년 개발된 새 엔진은 제2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연합군 최초의 제트 전투기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에 들어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휘틀의 엔진 기술은 미국에도 공유된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미국 첫 제트 전투기인 '벨(Bell) XP-59'에 들어가는 제트엔진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휘틀의 제트엔진이 먼저 고안됐지만, 실제 비행기에 적용된 것은 오하인의 제트엔진이었다.

프랭크 휘틀과 한스 폰 오하인

프랭크 휘틀과 한스 폰 오하인은 1966년 미국 항공우주학회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서로 마주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오하인은 휘틀에게 "영국에서 당신의 기술을 알아차리고 충분한 지원을 했었다면 나보다 6년은 앞섰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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