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없이 시각장애인 마라톤 완주 이끈 '꿈의 글래스'

조회수 2019. 10. 13.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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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광장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제5회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어울림 마라톤 대회였다. 평소 운동 기회가 제한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도록 만든 행사다. 이날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은 오랫동안 시각장애인 선수들의 가이드 러너 역할을 해 온 전문 마라톤 가이드 러너와 함께 달렸다. 가이드 러너는 시각 장애인 선수들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제5회 시각장애인과 함게 하는 어울림 마라톤 대회 스타트 모습, 사진 제공:웰컴저축은행

이번 마라톤 대회에는 독특한 장비를 착용하고 마라톤을 완주한 한 사람이 눈길을 모았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한동호씨다. 이날은 한 씨가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도전에 첫 발을 디딘 날이다.


한 씨는 한의대 재학 시절인 20대 때 레버씨 시신경 위축증을 앓고 시력을 잃었다. 낮에도 사물의 형체만 간신히 구분할 수 있는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굴의 노력 끝에 몇 년 뒤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사진 가운데 한동호 선수 사진 제공:웰컴저축은행

한 씨는 이날 머리에는 선글라스와 같은 모양의 웨어러블 글래스를 착용하고, 상체에는 작은 백팩과 같은 보디슈트를 입었다. 나머지는 일반 선수와 같다. 가이드 러너가 없어 겉으로 봐서는 비장애인 선수와 구별하기 힘들다.


이번 대회는 별도의 교통 통제가 없어 평소 한강시민공원을 이용하던 시민은 물론이고 자전거도 같은 도로를 달렸다. 자원봉사자와 현장요원이 곳곳에 배치됐지만, 시각장애인 선수의 경우 가이드 러너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한 씨는 가이드 러너 없이 곡선 코스를 부드럽게 달렸고, 앞서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멈추지 않고 피해 달려나갔다. 비장애인 마라토너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공식 경기에 처음 나가서 세운 기록은 50분 이내로 나타났다.  


이날 한 씨의 가이드 러너 역할을 한 것이 웰컴드림글래스와 상체에 착용한 보디슈트다. 

웰컴드림글래스와 보디슈트를 착용한 모습, 사진 제공:웰컴저축은행

웰컴드림글래스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인 한 씨를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된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용 웨어러블 글래스다.


웰컴드림글래스는 크게 3단계를 거쳐 구현된다. 우선 글래스 내 탑재된 RGB 카메라로 경로 이미지 정보를 수집한다. 보디슈트 안에 내장된 초정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3D 캠으로 이용자의 위치 정보와 주변 정보를 수집한다. 수집된 경로의 사물이나 사람, 자전거, 장애물의 종류와 노면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이용자에게 동선을 지시한다. 코스 정보는 사운드를 시각화해 청각 신호로 지속적으로 전달된다.

달릴 때 전달되는 정보는 음성언어가 아닌 청각신호로 전달돼 즉각적으로 몸이 반응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웰컴저축은행

한 씨가 착용한 글래스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시각 및 청각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동시에 코스에 대한 정보도 계속 전달해 마라토너가 코스의 상태를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청각 신호는 음성 메시지가 아니다. 실시간으로 달리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부호와 같은 신호로 전달됐다. 공감각적 음향 효과를 살려 가까이 있는 사물에 대한 소리는 크고, 멀리 있는 사물에 대한 소리는 작게 만드는 식으로 시각 정보를 귀로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HRTF(머리전달함수)로 불리는 방식을 활용해 어떤 소리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했다. HRTF 측정 장면.
시뮬레이션된 공간에서 청각 신호를 듣고 장애물 등을 파악하는 게이밍 훈련도 이어졌다. 사진 제공:웰컴저축은행

GPS 정보도 주로 이용하는 데이터와 다르게 준비됐다. 널리 쓰이는 GPS의 경우 오차 범위가 미터(m) 단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달릴 때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대교나 지하보도 같은 곳은 위성 시스템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화는 경우도 많다. 자칫하면 앞서가는 사람이나 장애물과도 부딪힐 수 있어 보다 세밀한 오차 범위의 위치 정보가 필요하다. 


개발팀은 정교한 데이터 특성으로 군사용으로 주로 쓰이는 RTK(Realtime Kinematic) GPS를 활용하기로 했다. 마라톤 공간에 베이스 스테이션을 설치해 위치 보정 데이터를 추가로 만들고, 이를 통해 보다 정교한 데이터를 한 씨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오차 범위도 1센티미터(cm)로 대폭 줄어든다. 


웰컴드림글래스는 애초 웰컴저축은행의 사회 공헌사업으로 시작했다. 기업의 재원을 출연하는 단순한 사회 공헌이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자산을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다양하게 검토됐다. 

어울림 마라톤 대회 당일, 가이드 러너 없이 완주에 성공한 한동호씨 모습 사진 제공: 웰컴저축은행

이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캠페인 전문 회사인 더크림유니언이 프로젝트를 맡았고, 웰컴저축은행 내부 개발팀과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팀의 자문, 여기에 다양한 영역의 미디어 아티스트들까지 ‘TF 팀’으로 참여했다. 빅데이터, 사물 인식, 초정밀 GPS 등 첨단 기술이 총동원됐다.


시스템 및 기기 개발에는 총 7개월이 소요됐다. 본격적인 하드웨어 제작이 대회를 두 달여 앞두고 가장 나중에 시작됐다. 보통 1~2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임을 감안하면 촉박한 시일이었다. 하지만 수십 명의 개발 인원이 매달렸고, 대회 완주도 무사히 마쳤다. 

지자기, 자이로, 가속도 9축 센서, 블루투스 골전도 이어폰이 내장된 글래스 모습
보디슈트는 미니 PC가 내장돼 RTK GPS값과 캠의 영상정보, 글래스의 시선데이터 등을 받는다. 이 데이터를 LTE를 통해 서버로 송신. 서버에서 통합처리된 데이터를 미니 PC가 청각 신호 전환한다.

한 씨와 개발팀은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그리스 국제 마라톤이다. 웰컴드림글래스를 착용하고 대회에 출전해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마라톤이 시작된 그리스 아테네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새로운 도전의 신화를 쓸 계획이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비장애인 마라토너가 한 공간에서 뛸 수 있도록 기획된 어울림 마라톤 대회와는 다르다. 비장애인 마라토너들이 대규모로 함께 뛰는 공간이다. 규모도 크고 국제 대회인 만큼 규정도 까다롭다. 한 씨의 대회 신청은 무사히 마쳤지만, 개발팀이 사전답사 등을 통해 충분히 주변 환경 및 국제 규정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웰컴저축은행은 꿈테크 프로젝트 일환인 '런포드림'을 통해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를 한씨의 글래스에 담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다행인 점은 그리스 국제 마라톤이 열리는 지역이 평지이고, 도로라는 점이다. 또 반환점이 없는 일 방향 코스인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한강시민공원 등지에서 일반 시민, 자전거 등과 함께 달려야 했던 어울림 마라톤 대회보다 변수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시스템 고도화가 계속될 예정이다.


웰컴드림글래스가 가이드 러너 역할을 하려면, 실시간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존 데이터와 융합하는 서버의 데이터 분석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맡은 것이 웰컴저축은행의 정보통신기술(ICT) 본부다.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GPU 등의 장비를 통해 분석하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LTE 통신을 통해 정보가 오고 가기 때문에 이 속도를 올리는 작업에 집중했다. 

권영관 웰컴저축은행 ICT본부장이 웰컴드림글래스의 기획의도와 빅데이터 등 기술 협업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어울림 마라톤 대회 당시에도 장애는 있었다. 대회 당일 날씨가 흐려서 통신환경이 좋지 않았다. LTE 통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각 및 청각 정보를 수집,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해 전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통신 인프라는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히 대회 시작 직전에 통신이 제대로 연결되면서 무사히 완주가 가능했다.


웰컴드림글래스는 시각장애인 한 씨를 위해 맞춤형으로 기획된 제품이다. 신체능력은 물론이고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3kg 상당의 특수장비를 갖추고 뛸 수 있었다.

이재기 더크림유니언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엔지니어, 디자이너, 선수 간 협업이 이뤄진 상황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재기 더크림유니언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한동호씨가 수영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우수하고 의지가 강한 점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선수 역시 글래스만 끼고 달린다고 생각했다 바디슈트를 입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이런 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선구자가 되는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권영관 웰컴저축은행 ICT본부장은 “그간 금융 정보 위주로 일해왔던 빅데이터 개발팀도 처음에는 생소한 데이터 앞에서 당황했다"면서 "하지만 금세 데이터에 흥미를 느끼며 해외 사례를 찾아보며 적용에 앞장섰다"라고 개발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은행이 보유한 빅데이터 기술이 사회적으로 널리 쓰일만한 또 다른 기회를 찾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웰컴저축은행은 후속 연구개발(R&D)을 통해 시가장애인을 위한 보조 주행 디바이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사진 제공: 웰컴저축은행

웰컴드림글래스 관련 기술을 당장 시각장애인의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씨 개인에 초점을 맞춰 수개월 동안 개발이 이뤄졌고, 공감각적 적응 능력이 뛰어난 선수의 역할도 컸다는 분석이다. 머신러닝에 필요로 하는 시간이 4000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개인화가 이뤄지는데도 시간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인프라가 바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R&D)은 계속 이어진다. 기술은 보이지 않는 길도 달릴 수 있게 만든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김명희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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