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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 제주도의 감성과 배우들이 완성시킨 누아르

조회수 2021. 4. 9. 18: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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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감성’은 한국의 갱스터 누아르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 같다. 조폭들의 세계에서 감성을 자극할 무언가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다. [낙원의 밤]은 이국적인 제주도와 배우들의 매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 

출처: 넷플릭스

조직 폭력배 태구는 교통사고로 세상에 둘도 없는 누나와 조카를 잃는다. 경쟁 조직 북성파가 배후에 있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잔혹한 복수를 감행하고, 조직의 도움으로 해외 도피를 위해 잠시 제주도에 머물면서 시한부로 살아가는 재연을 만난다. 태구와 재연은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지만, 안타깝게도 평화로운 나날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줄거리만 보면 수많은 한국 갱스터 누아르 영화들이 머리를 스친다. 음모와 배신, 복수가 난무하고 선혈이 낭자한 난투극에서 더 이상 새로움을 찾기란 어렵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끼리 감정을 나누는 장면 역시 여러 차례 봐온 것이다.


아쉽거나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도 여럿 있다. 연기하는 배우들조차 반대했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잔인한 박훈정 감독 연출 스타일에 거부감이 있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신세계]에서 묘사된 피 튀기는 권력 다툼이나 [마녀]에서 보여준 시원시원하면서 만화 같은 액션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두 작품을 애매하게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이 들 수도 있다.

출처: 넷플릭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극의 배경이자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제주도가 달래준다. 야자수와 파도가 출렁이는 제주도만의 이국적인 매력은 자칫 ‘뻔하다’라고 느껴질 법한 이야기에 새로움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는 두 주인공의 처절한 운명이 펼쳐내는 아이러니는 예상보다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영화가 끝나면 태구와 재연이 즐겼던 물회와 제주도 소주가 생각나는 건 덤이다.


캐릭터들이 지닌 질감 또한 새롭다. ‘감성 누아르’라는 장르나 ‘낙원의 밤’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태구는 ‘내성적인 조폭’이라는 독특한 설정이다. 이러한 태구 역에 엄태구를 캐스팅한 건 신의 한 수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과 특유의 목소리 톤과 대비되는 반전 매력을 갖춘 엄태구는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표정 변화와 말수는 적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온갖 감정들은 엄태구를 통해 온전히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출처: 넷플릭스

재연은 한국 누아르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성 캐릭터 중 하나다. 그동안 해당 장르에서 쉽게 소모되거나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됐던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과 달리, 재연은 체념과 분노, 복수심, 태구를 향한 연민과 동질감 등 다양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인물이다. [멜로가 체질], [죄 많은 소녀], [빈센조] 등 다양한 작품에서 빛났던 전여빈의 퍼포먼스는 이런 재연에게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에 모자람이 없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10분 동안 보여준 활약상은 ‘지금까지의 120분이 전여빈을 위한 빌드업이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다.


두 사람이 빚어내는 케미스트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누아르 영화 특성상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거나,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된 서로를 향한 신뢰와 공감을 통해 ‘로맨스’ 또는 ‘동료애’라고 단순하게 표현하기 힘든 인간관계를 그리기도 한다. 관객 입장에선 긴장감에 지칠 때 즈음 숨을 돌릴 만한 여유를 찾게 되니, 작품에 몰입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차승원은 태구를 쫓는 북성파의 ‘2인자’ 마 이사로 [독전]에 이어 또 한 번 매력적인 빌런을 연기한다. 당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되갚아주는 냉혈한인 동시에 한편으론 능글맞고 유머러스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소화해내며 존재감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태구의 보스 양 사장을 연기한 박호산,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이기영과 이문식의 퍼포먼스도 인상적이다.

출처: 넷플릭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낙원의 밤]은 한국 누아르 장르에 꽤나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매력적인 작품이다. 서사의 빈틈이나, 누아르 장르의 전형적인 클리셰에서 오는 진부함은 배우들의 입체적인 연기와 제주도의 풍경으로 충분히 만회가 된다. 다른 걸 다 떠나 이 작품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게 가장 큰 아쉬움이지 않을까 싶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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