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코스튬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조회수 2021. 3. 12. 16: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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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디즈니 플러스

[완다비전] 6화는 수많은 원작 팬들을 들뜨게 했다. 아이들의 명절 할로윈을 맞아 목깃을 화려하게 올린 비전의 레슬러 망토와 완다의 수영복 슈트며 뾰족한 붉은색 서클렛까지, 원작 코믹스의 코스튬 디자인을 스크린 속에 판박이처럼 재현한 것이다. 다만 반가움은 어디까지나 원작 팬들에만 한정된 일이다. 코믹스를 자주 접할 일이 없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색상의 쓰임이 다소 어색하고 유치하게만 느껴진다. 이번 경우처럼 이런 옷을 팬 서비스로 아주 잠깐 입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공식 유니폼처럼 입고서 진지하게 영화 속에 나온다고 상상해보자.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게 뻔하다. 그도 그럴게, 현실의 그 누가 이런 옷을 입고 다닌단 말인가?


원작 코스튬 디자인의 비현실성은 알고 보면 재미있게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완다비전] 6화는 수많은 원작 팬들을 들뜨게 했다. 아이들의 명절 할로윈을 맞아 목깃을 화려하게 올린 비전의 레슬러 망토와 완다의 수영복 슈트며 뾰족한 붉은색 서클렛까지, 원작 코믹스의 코스튬 디자인을 스크린 속에 판박이처럼 재현한 것이다. 다만 반가움은 어디까지나 원작 팬들에만 한정된 일이다. 코믹스를 자주 접할 일이 없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색상의 쓰임이 다소 어색하고 유치하게만 느껴진다. 이번 경우처럼 이런 옷을 팬 서비스로 아주 잠깐 입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공식 유니폼처럼 입고서 진지하게 영화 속에 나온다고 상상해보자.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게 뻔하다. 그도 그럴게, 현실의 그 누가 이런 옷을 입고 다닌단 말인가?


원작 코스튬 디자인의 비현실성은 알고 보면 재미있게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첫 번째는 코믹스가 처음 연재됐을 당대 인쇄 기술의 한계다. 코믹스의 황금기를 열었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메리칸 코믹스의 시초는 대개 신문에서 곁다리로 연재되던 짧은 컷만화(코믹스트립)가 거론되곤 한다. 일정한 스토리라인이 있다기보다 간단한 일러스트와 재치 있는 대사들로 웃음을 줬던 이 만화는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키워나가더니, 이윽고 신문에서 빠져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만화만을 수록한 얇은 잡지 형태로 독립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믹스는 잠깐 읽고 내버리는 심심풀이 땅콩이자 가벼운 읽을거리에 불과했다. 따라서 코믹스를 생산하는 데에 있어 질 좋은 종이를 쓸 이유도, 첨단 인쇄 기기를 구입해 투자할 필요도 없었다.

출처: DC 코믹스

가장 싼 종이에 가장 싼 인쇄법을 도입한 결과 이 시기 코믹스는 몇 가지 독특한 도식적 특징을 갖게 됐다. 선명하고 또렷한 선화를 그릴 수 없다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자세하고 섬세한 묘사가 어려웠다. 이로 인해 코믹스의 그림체는 지극히 단순화되었다. 기본적인 묘사만으로도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구분할 수 있게끔 최적화된 디자인이 필요했다. 일반 엑스트라와 주인공 영웅을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특별한 코스튬을 부여한다면, 아무리 작게 묘사된 패널이어도 망토 따위의 유무로 그게 주인공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코믹스 인쇄에 쓰인 CMYK 인쇄법은 시안, 마젠타, 옐로, 블랙 4색을 혼합하여 최대 64 가지의 색상만을 인쇄할 수 있었다. 고를 수 있는 색상 팔레트에 한계가 있다 보니 그 어느 때건 주인공 캐릭터가 독자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 빨강이나 파랑 같은 원색적인 색상을 즐겨 사용했다. 거기에 빨강&파랑, 초록&보라와 같은 보색 조합을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출처: DC 코믹스

두 번째로는 슈퍼히어로의 쫄쫄이 코스튬이 당대 유행했던 서커스와 차력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정형과 성격들을 최초로 수립해나가기 시작한 효시격 캐릭터, 슈퍼맨이 탄생한 것은 1938년의 일이다. 슈퍼맨을 창조한 작가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가 어릴 적 마을에 순회공연을 온 서커스 차력사 지그문트 “지세” 브레이트바트의 차력쇼를 보고서 그가 선보이는 괴력과 그가 입었던 쫄쫄이 의상을 훗날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대 대중에게 있어 초인적 강인함의 이미지는 쫄쫄이 슈트와 삼각 트렁크를 입은 차력사에 가장 맞닿아 있었다. 차력쇼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이 더는 강인함의 대표격으로 차력사를 떠올리지 않게 된 이후에도, 슈퍼히어로는 장르적으로 굳건히 자리 잡아 독립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쫄쫄이 슈트와 삼각 트렁크를 보면 차력사가 아닌 슈퍼히어로를 곧장 떠올린다.

출처: 소니 픽처스 코리아

오늘날 슈퍼히어로들이 대개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코스튬을 입게 된 것은 이렇듯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된 문화역사적 맥락을 기반으로 한다. 실사 슈퍼히어로 영화의 코스튬 디자인은 어떠한가. 영화는 평면적인 그림이 아닌 입체적인 영상이다. 그림보다 더더욱 현실을 닮을 수밖에 없다. 슈퍼히어로 영화 속 코스튬은 명도와 채도를 낮추어서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색상을 채용하며, 무엇보다 기능성을 강조한다. 본래 밋밋했던 면에 깨알같이 작은 패턴을 입혀서 질감을 더해주고, 활강하고 점프하는 데에 있어 움푹 파인 패턴이 공기저항을 줄여준다는 식이다. MCU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아이언맨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야말로 기능성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 슈퍼히어로의 원색적인 코스튬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짚어보았다. 이는 슈퍼히어로라는 문법이 탄생했던 1930년대 당시의 인쇄 기술적 한계가 첫째요, 슈퍼히어로의 코스튬 디자인에 차력사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둘째다. 배경 이야기야 어쨌거나 유치한 건 유치한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치하다고 놀리면 뭐 어떤가. 우리 모두 그 맛에 코믹스를 읽는 것 아니겠는가!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권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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