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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하고 변덕스러운 쾌감이 가득한 드라마 '킬링 이브'

조회수 2019. 7. 7.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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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출처: 이미지: (주)왓챠

위트와 유머가 넘치며, 기존 첩보 장르의 규칙을 깨뜨려 성전복의 쾌감을 안기는 신선한 드라마. 누가 내게 [킬링 이브]의 매력을 말해달라고 했을 때,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권태에 빠진 정보기관 요원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 암살자의 쫓고 쫓기는 관계는 매 에피소드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재미가 가득하다. 드라마의 원작인 루크 제닝스의 소설이 정통 첩보 소설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꿔 기존과 차별화된 긴장과 흥미를 안겼다면, TV 시리즈로 옮겨온 [킬링 이브]는 원작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해 소설과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요원도 살인마도 모두 여성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차용했을 뿐, 주요 사건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작품에 가깝다. [플리백]의 피비 월러 브릿지가 쇼러너로 참여해 이브와 빌라넬의 성적 긴장감이 흐르는 역동적인 관계에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덧입히고, 산드라 오와 조디 코머는 보다 입체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 캐릭터에 살아움직이는듯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출처: 이미지: (주)왓챠

2018년 방영된 첫 시즌은 접점이 없을 것 같던 두 인물이 팽팽한 평행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리는 과정을 담아낸다. 평범한 보안요원에 불과했던 이브는 여느 때처럼 맡게 된 임무에서 살인범의 남다른 존재감을 인지하고, 그때부터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사건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범죄 심리학을 전공하고 평소에도 여성 살인마에 관심을 두었던 이브가 자신을 당혹스럽게 한 사건을 모른척하기는 쉽지 않다. 광범위한 유럽을 무대로 청부살인을 저질러왔던 빌라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추적하는 이브에게 묘한 호기심이 발동하더니 급기야 직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돌발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마침내 마주한 (이브의 집 주방) 테이블 신은 그동안 팽팽했던 긴장감에 처음으로 불꽃이 튀었던 순간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면서도 법을 준수하는 고집스러운 요원과 규칙을 위반하는 잔인무도한 살인자가 쉽사리 교감할 리 없다. 시즌 1 마지막은 좁혀들 수 없는 위태로운 관계에 순간적인 파열음을 낸다. 빌의 죽음에 원망이 교차하는 이브가 파리에 있는 빌라넬의 집으로 찾아가 예상치 못한 순간 허를 찌른 것이다.


시즌 2는 아슬아슬하게 끝났던 그 직후에서 시작해 새로운 양상으로 흘러간다. 이브와 빌라넬 모두 전과 다른 환경에 놓인다. 이브는 새로운 팀에 합류해 빌라넬의 향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고스트라 불리는 새로운 킬러를 추적하고, 빌라넬은 기습공격의 여파로 시즌 1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고초를 겪는다. 다시 일촉즉발의 팽팽한 평행선이 형성되지만, 또 다른 사이코패스를 잡기 위해 일시적인 동맹 관계를 구축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된다. 시즌 2는 두 인물의 밀당 관계를 전보다 더욱 과감하게 활용한다. 서로에 대한 집착이 깊어지면서 빌라넬은 이브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고, 이브는 무모한 선택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태생부터 불안한 공조 관계가 아름답고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리 없다. 서로에게 강한 애착과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오랜 세월 살아온 방식이 다른 데다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냉정하리만치 차갑다. 결국 시즌 2 마지막은 또 한 번 파열음을 낸다. 파리에서 가졌던 만남보다 더 거대하고 격정적이며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른다.

출처: 이미지: (주)왓챠

내년 시즌 3으로 돌아올 [킬링 이브]가 평단과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계급과 성전복에서 발현하는 강렬한 쾌감에 있다. 이브와 빌라넬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먼저 이브를 살펴보자. MI6 보안 요원 이브는 겉보기엔 평범하고 무탈한 삶을 영위한다. 다정한 남편과 안정된 직장,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행복이 이브를 감싼다. 하지만 이브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보다 무언가의 갈증을 더 크게 느낀다. 따지고 보면 허드렛일에 불과한 직장은 만족스럽지 않고, 남편과의 관계도 무료하고 권태롭다. 그러던 중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비밀스러운 여성 킬러를 발견하고 수사를 주도하면서 생기 없이 축 처져 있던 일상에 활력이 돈다. 드라마는 단지 여기까지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이브가 걷잡을 수없이 빌라넬에게 빠져드는 과정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다시 이브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평화롭고 안정된 일상은 하나의 족쇄 같다. 착하고 다정한 남편 니코는 이브가 점점 외부의 일에 매달리자 위험을 이유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예전처럼 평범한 아내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이브의 성취감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니코가 전과 달리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이브의 변화를 인정했다면, 빌라넬이 파고들 틈 없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졌을 것이다. 시즌 1에서 내부 배신자로 밝혀졌던 프랭크 역시 이브의 비범한 관찰력을 인정하는 대신 무시하고 억누른다.


이 같은 사정은 빌라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자신의 예술적인 살인 실력을 과시하며 비이성적인 일탈 행위에서 희열을 찾지만, 막상 빌라넬을 둘러싼 세계(트웰브)는 철저히 남성 주도로 이루어진다. 빌라넬은 그저 영악하고 실력이 좋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빌라넬이 자신의 일에 만족할 수 있던 건, 살인청부 리스트에 오른 대상이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소수의 특권층이기 때문이다. 시즌 2에서 빌라넬이 콘스탄틴과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불만을 토로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빌라넬은 사창가에 빠진 남편을 죽이는 임무를 받고 시시해하지만, 미술관에서 영감을 얻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잔혹하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청부살인을 마무리한다. 빌라넬에게 살인의 희열은 돈도 살인 그 자체의 쾌감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짐작하지 못한 고위층의 목숨을 쥐락펴락한다는 데서 엄청난 희열을 만끽한다. 또한 빌라넬은 이브가 그랬듯 여성을 무력하게 하는 사회를 경험한다. 칼에 찔린 후 이브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다. 콘스탄틴(드라마 속 다른 남성들처럼 일방적이지 않지만, 캐롤린만큼이나 이중적이고 교활한 인물)과 재회하기 전까지 영국에서 만난 두 남성은 신체적, 위치적 유리함을 이용해 빌라넬을 억압하려 한다. 물론 시즌 1에 오만하고 음흉한 디에고가 등장하지만, 이때만 해도 두 여성(나디아와 빌라넬)에게 무력하게 당한다. 시즌 2는 이브의 칼에 찔린 빌라넬을 곤경에 빠뜨리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두 인물의 접점을 좁힌다.


하지만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서 비틀고 변주하며 변덕스러운 재미를 만들어냈기에 에로틱하고 친밀한 형태로 바짝 좁혀진 관계를 그대로 둘 리 없다. 시즌 2 들어 쉼 없이 동질감을 드러내고자 했던 드라마는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같은 방향에서 좁혀들던 평행선을 다시 벌리기 시작한다. 이브와 빌라넬은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같을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한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확인사살이나 마찬가지다. 이브는 빌라넬을 대신해 도끼를 휘둘렀지만 총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브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던 빌라넬은 자신의 정체성(살인마+레즈비언)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브에게 배신과 실망이 교차한다. 결국 두 사람의 평행선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격하게 벌어진다. 시즌 3에서 파국으로 끝난 관계를 어떻게 되돌릴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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