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없는 송년회식, 가능할까?
By. 이혜린 편집장
직장인이 된 후,
내 연말의 팔할은
노래방에서 얼큰하게 취한 상사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는데 쓰였다.
위장에 찰랑이는 폭탄주를 고스란히 느끼며
구수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다보면
수능보던날 비장하게 시험장으로 향하던 내 모습과
새벽까지 도서관에 남아 학점관리하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아 이날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았구나"
싶은 것이다.
맨날 보는 얼굴,
굳이 쌩목으로 노래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안그래도 싱숭생숭한 연말을
'알차게' 보내야하는 회식 문화.
바꿔보고 싶다 하던차에 알게 된
문화회식 캠페인.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추천하는
문화회식 코스로,
공연, 배움, 취미, 오락, 운동, 다과회식 등이 있는데,
지난주엔 시간이 조금 드는 코스부터 시도해봤더랬다.
다 좋은데, 검색과 장소 이동 등 시간이 좀 걸렸던 게 흠.
좀 더 간편하게, 퇴근 후 아주 살짝만 시간 들이면 되는
코스 뭐 없을까?
그리하여, 두번째 도전이 시작된다. 두둥!
1. 다같이 저녁 해먹기
직원이 스무명이 넘어가다보니
간단하게 먹자!
해도 진짜 간단하게 먹어도
기본 100만원.
좋은 일 있어서 먹고
나쁜 일 있어서 먹고
먹을 때 돼서 먹고
일이 많아서 먹고
하다보면 회식비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해서 맛있게 먹으면 좋겠지만
수다 좀 떨다보면 고기는 다 타고
막내는 탄 고기 잘라내느라 지치고
나는 폭탄주 제조하느라 바빠서
"선배, 그래서 우리 회사는 어디로 가는 거죠?"
라는 질문이 나올 때쯤이면
"뭐라고? 시끄러워서 안들려. 집에 갈래"가 되는 것이다.
그냥 우리끼리 알콩달콩 맛있게 해먹으면 어떨까, 해서
시도해봤다.
파스타와 감바스!
좁디 좁은 사무실에 나름 부엌이라고 마련해뒀는데,
인덕션을 설치하면 뭐하나
인덕션용 냄비가 없는데 ㅋㅋ
그래서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메뉴로 고른 게
바로 파스타와 감바스 되시겠다.
다들 요리와 백만광년 거리있지만
이 정도는 데이트용으로 다 해봤을테니까 하는 자신감.
먼저 장보기.
직원들끼리 아무리 친하다 해도
다같이 편의점이나 가봤지, 마트는 처음.
법카를 씀에도 꼼꼼하게 가격을 비교하는 의외의 면과
과묵해도 듬직한 짐꾼을 자처하는 의외의 매력.
그저 삼겹살을 주문하고 소맥을 말때엔 몰랐던 모습이다.
내근 중인 직원 10명을 위한
음식 재료를 다 샀는데,
가격이 오잉?
4만원!
정확하겐,
"4만7020원 나왔습니다, 대표님!"
으하하
나는 사회초년생때 밥솥에 곰팡이를 키우곤 했지만
그래도 우리 후배들은 다를거야, 하며
부엌에 나란히 입장했다.
그리고 뚝딱 뚝딱,
한시간만에 진짜 요리가 탄생한다.
창고로 전락했던 사무실 부엌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2. 사무실에서의 식사
사무실에서 서류나 주고받아봤지,
본격 상이 차려지니 좀 어색하다.
피자나 치킨을 시켜 나눠주는 느낌과도 다르다.
부엌에선 뭐가 계속 분주하고,
파스타 면은 불어가고,
먼저 앉아서 먹자니 눈치 보이고 ㅎㅎ
결국 음식을 퍼서 각자 앞에 놔주고
"빨리 먹엇!"하고 소리치게 된다.
그런데 왠일,
한번 먹기 시작하니 멈출 수 없다. 맛있다!
"평소 몇 번 안 해본 요리를 회사에서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해보니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레시피를 보고 공유하며 만드는 동안 즐거웠고 제가 만든 음식을 동료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뿌듯하고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명욱 PD)
"라면 외에 요리와는 담을 쌓고 지냈기때문에 누군가에게 요리 해준다는 게 부담됐어요. 동료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걱정도 됐고요. 생애 처음 감바스와 파스타를 요리하면서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고,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요리에 취미를 붙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재현 기자)
요리를 안해봤다는 멤버를 뽑아서 진행했는데,
어라? 요리에 취미를 붙일 것 같다.
"일단 요리가 맛있어서 놀랐어요. 직접 요리를 해먹는다니 엠티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외부 식당에 가면 인원이 많다보니 다른 테이블끼리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데 사무실에서 편히(?) 먹으니 좀 더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노영서 PD)
"집에 가면 저녁을 대충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에서 이렇게 요리를 해먹으니 저녁 걱정을 따로 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특히 저는 요리를 못해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로 배를 채웠는데 직접 만든 음식을 먹으니 위와 입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강리화 인턴)
자취생에게는 집밥의 느낌까지 줄 수 있어서
일거양득 ^-^
3. 영화 관람
스케쥴상 같이 볼만한 영화는 '도어락'이었으나..
먼저 보고 온 영화담당기자가
"보는 내내 너무 긴장돼서 어깨에 담이 온다"고 한 관계로..
오늘의 영화는 두둥!
'스윙키즈'를 관람할 장소는 잠실 롯데타워.
평소 퇴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사무실을 빠져나와,
오후 6시에 딱 도착했다.
영화 시작까지는 1시간이 남았는데,
예상치못한 난관.
패딩을 껴입은 12명의 인원이 뭉쳐서 다니니까
너무 눈에 잘 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한국 극장 처음 오는 외국인 관광객 같아요!" (안이슬 기자)
거기다 평소 썸남, 썸녀들과 오던 이 공간에
동료들과 오니 다들 어색함 한가득....
넓디 넓은 극장 안에서
어디 한군데 자리잡지 못하고
나만 졸졸 쫓아다니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급하게 음료를 한잔씩 손에 쥐어주었는데,
"선배, 우리 술 없는 회식 체험 아니에요?"
아, 직원들 손에 쥐어준건 클라우드 ㅋㅋㅋㅋ
(괜찮아,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아 ㅋㅋ)
그래도 영화 관람은 즐거웠다.
영화가 끝나고,
어떻게 봤는지 소감도 묻고,
이런 저런 토론을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1초 가량 들었으나,
즐겁자고 하는 회식에
그건 또 무슨 고문인가 싶어 과감하게 스킵했다 (뿌듯)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각자 집으로!
소감은 내일 사무실에서 따로 알아서!
역시나 좋아한다. ㅋㅋ
"직장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보다니 참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사무실이 아닌 낯선 장소에서 만나니 신선했습니다. 술자리 대신 이런 회식도 좋은 것 같습니다." (강효진 기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게 취미인 저는 다른 회식들보다 문화회식이 더 좋았습니다. 특히 평일 퇴근시간에 영화를 보러가려면 시간도 알아봐야하고, 간혹 보고싶은 영화가 늦은 시간대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때에는 영화와 내일 아침잠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문화회식은 이러한 고민을 덜어주어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강리화 인턴)
"회사 동료들과 다같이 영화관에 앉아 있는 모습이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회사 생활 하면서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던 터라...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웃고 끝나고 같이 얘기하고 시간을 보내니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경주 기자)
영화가 끝나고,
맥주 한잔 더, 의 유혹을 참아낸 게
이번 문화회식 대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오후 4시부터 장보기 시작해서,
영화관람까지 하고 9시에 칼같이 헤어진,
짧고 굵은 문화회식!
퇴근 후 친구와 가볍게 놀고 헤어진 것과 같은
가뿐함으로,
요리와 영화 관람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체험을 동료와 함께 해보는
의미있는 날이었다.
이왕이면 안취하는 문화회식,
어쩔 수 없는 술자리라면 절주, 잊지 마세요 ^-^
술 억지로 권하지 않기,
폭탄주로 섞거나 원샷해서 빨리 취하지 않기,
음주 후 3일간은 몸이 쉴 수 있도록 해주기!
잘 지켜서 건강한 연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