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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음을 추구하는 바우어스 앤 윌킨스 (Bowers & Wilkins)의 역사를 알아본다!!!!

끊임없는 ‘정확한 음’으로의 기술혁신 항상 

“최고”를 추구하고 있는 하이엔드 스피커의 개척자

영국의 스피커 브랜드, 바우어 앤드 윌킨스(이하 B&W)는 1966년에 탄생하여 본지와 같이 작년에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였다. 


반세기에 걸쳐 오디오 계에 족적을 남기며 최근에 더욱더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브랜드라는 점은 많은 이들의 의견이 일치할 것이다. 


그 제품군은 최신 기술의 투입에 의해 모니터와 같은 성격을 가지면서도 생생한 음악의 본질을 전달하는 능력도 우수하여, 종합적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툴로서 희대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점이 큰 특징이다. 


평판 높은 800D3 시리즈나 최근 막 발표된 700 시리즈도 그 계열이다. 나 자신도 플래그십 기기를 2세대에 걸쳐 자택에서 애용하고 있어, 다른 스피커에서는 얻기 힘든 특질을 몸으로 느껴오고 있었다.


이러한 B&W 제품에 흐르고 있는 철학이나 설계 사상에는 그 자신이 열성적인 클래식 팬이기도 했던 창업자 존바우어스(1922~87)의 정책이 강열하게 새겨져, 현재의 B&W에서도 계승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바우어스의 어록이나 과거의 명품을 통해서 제품 만들기에 일관되어 온 어프로치나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면서 노포 스피커 브랜드 B&W의 현재를 탐구해 보려고 한다. 


바우어스 앤 윌킨스 (Bowers & Wilkins) 800D3  

  • 형식: 3웨이 4스피커, 저음 반사형
  • 사용 유닛: 우퍼 25㎝ 콘형×2, 미드레인지 16㎝/트위터 2.5㎝ 돔형
  • 크로스오버 주파수: 350㎐, 4㎑
  • 감도: 90㏈/2.83V/m
  • 임피던스: 8Ω
  • 크기/무게: W413×H1,217×D611㎜/96㎏
  • 비고: 화이트, 피아노 블랙 마감, 이 외에 로즈넛 마감
  • 문의처 : (주)로이코 02)335-0006



추구하고 있던 것은 ‘잃는 부분이 아주 적은 스피커’


제2차 세계대전 중 존 바우어스는 영국군에서 비밀문서 업무를 담당하였고 그 곳에서 로이 윌킨스와 알게 된다. 전쟁 후 대학에서 통신 기술을 배운 바우어스는 전우였던 윌킨스과 함께 런던의 남쪽에 있는 도시 워싱에서 무선과 텔레비전 전문점을 연다. 


 이것이 ‘바우어스 앤드 윌킨스’ 사의 기원이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콘서트에도 자주 다니고 있던 바우어스는 곧 하이파이 기기나 레코드의 판매에도 손을 댄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장치의 음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잘못의 대부분은 스피커에 있다고 의심한 바우어스는 우선 기존 제품의 개조부터 시작하여, 그에게심취하던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유증(遺贈)받아 스피커의 설계, 제조에 착수하게 된다.  



최초의 시판 모델 ‘P1’을 내놓은 것은 1966년. EMI제의 타원형 우퍼와 셀레스천제 트위터를 조합한 네모난 톨보이형이었다. 처녀작에서 얻은 이익을 바우어스는 계측기를 구입하는 데 쏟아 붓는다. 왜 측정기기에 고집한 것일까. 


음향 기술의 교과서나 자신의 감성과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거나, 계측에서 나타나지 않거나 하는 불안정한 요소를 가능한 한눈에 보이게 하여,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당시를 알고 있는 엔지니어는 회상록에서 바우어스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잘 팔리는 스피커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갖고 싶은 스피커, 즉 최고의 스피커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우어스는 어떤 스피커를 추구하고 있던 것일까. 어록이 남아 있다. 그가 말하였다. 


‘많은 것을 전해주는 스피커가 아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적은 스피커다’라고. 자신의 개성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 원음에서 손실이 적은 것이 좋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완전히 투명한 유리 너머로 경치가 보이는 것과 같은 음을 들려주는 스피커’이고, 거기서 들려주는 음을 ‘트루 사운드’라고 계속 불러왔다고 한다. 그것은 곧 하이파이의 원점인 고충실도의 재생을 의미한다.



존 바우어스 씨(1987년 작고

Mr. John Bowers

존 바우어스는 1966년에 B&W 일렉트로닉스 사를 설립. ‘트루 사운드(정확한 음)’을 들려주는 ‘최고의 스피커’의 연구에 인생을 바쳤으나 Nautilus(1993년)의 완성형을 보지 못하고 그 생을 달리하였다. 그의 유지는 사후 30년이 경과한 지금도 다시 기술자들에 의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B&W의 연구개발 부문이 있는 Steyning Research Establishment(SRE), Steyning(스테이닝)은 본사가 위치하고 있는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워싱에서 조금 북쪽에 있는 도시의 이름으로, SRE가 들어가 있는 이 건물은 원래 SME의 생산 시설이었다.


음향 기술과 외관 스타일의 타협 없는 융합을 추구

업적이 쌓이고 회사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스피커 유닛의 자체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그 열매로 B&W가 첫 도약을 하게 된 기종이 1970년에 발매된 DM70이다. 11개의 정전형 중고음역 유닛을 탑재하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상부의 하우징과, 우퍼 부분의 라운드 배플(당초에는 네모 모양이었지만 후에 컨티넨탈 C형으로 개량)에 의한 선진적인 외관과 기술은 오디오계에 충격을 주었다.



지금 보아도 센스가 좋은 디자인은 이제는 누가 디자인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영국 공업 디자인 상을 수상한 B&W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바우어스 자신이 ‘하이엔드 마니아가 스피커의 모습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시판용으로는 독창성이 강한 디자인을 과감하게 시장에 간혹 투입하는 B&W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마인드가 이 시대에서부터도 형성되어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취급이 어려운 정전형 유닛을 갑자기 여럿 탑재하고 있는 점이다. 과거에 채용 실적이 없는데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라면 이상적인 아이템을 주저 없이 채용하는 수법이 이 때 제대로 확립되었다.





1970년대 초에 탄생한 DM70 Continental(DM은 Domestic Monitor =가정용 모니터의 약자). 전면 배플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이 아름다운 스피커는 B&W 최초의 완전 자사 설계 스피커이다. 참고로 바우어스의 비석은 DM70 Continental을 본뜬 것이다


음향 기술과 외관 스타일의 양면에서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B&W의 자세를 한층 강화시킨 것은 1975년 영국의 유명한 공업 디자이너 케네스 그레인지와 계약하여 스피커의 디자인을 맡긴 것이다. 




전차나 버스 정류장 등의 인프라나 토스터, 면도기와 같은 가정용품으로 유명한 톱디자이너와 빠르게 관계를 맺은 것도 B&W다운 결단력을 보여 주는 한 조각일 것이다.




기대가 높아지던 중 첫 공동 작품인 DM6가 1975년에등장하였는데 그 스타일에 오디오 관계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붙여진 애칭이 ‘프레그넌트 펭귄’(임신한 펭귄). 저음역과 중고음역 유닛의 리니어페이즈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퍼 부분이 앞쪽으로 밀려나와 있는 유니크한 형상이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DM6는 방탄조끼 등에도 사용되는 강인한 섬유 ‘케블라’를 처음으로 진동판에 사용한 미드레인지 유닛을 탑재한 점에서도 중요한 제품이 되었다. 




케네스 그레인지는 그 후에도 매트릭스 800(1990년)과 시그니처 다이아몬드(2006년) 등 역사에 남은 걸작들을 다루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영입했으면서도 바우어스는 ‘디자인은 항상 기능을 따라야 한다’고 구상을 추진하였다.생각한 것만큼 공간 표현이 펼쳐지지 않는 등의 음질 면에서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 작인 DM7(1977년)에서는 트위터를 상판 위에 내놓는 방식을 처음으로 채용한다. 




실험 시에 뽕하고 상판에 두는 것이 음이 좋았다고 하는 체험에서 유래한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다. 이것도 현재에 이르러서는 B&W 스피커의 상징적인 스타일이 되었다.


1977년에 등장한 DM7은 이후의 B&W 스피커의 상징이 된 ‘트위터 온 탑’이 처음으로 채용된 스피커. 1974년에 특허를 취득하여 전작 DM6(1975년)에서 처음 탑재된 황색의 ‘케블라 콘’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B&W의 기간 기술이 1970년대 중기에 탄생했다


약진의 계기가 된 ‘801’과 그 파생 모델

존 바우어스의 머릿속에 ‘리코딩 모니터에 정면으로 맞붙고 싶다’는 구상이 떠오른 것은 197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3년에 걸쳐 개발을 진행하여 드디어 79년 B&W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만든 모니터 스피커 801이 등장한다. 


이 작명은 80년대의 넘버원 스피커를 만들자는 사내의 프로젝트의 단어 조합 이름을 그대로 형번으로 해 버린 것이라

고 한다. 


각 유닛의 리니어페이즈 배치에 트위터 온 탑, 진동판에 케블라를 채용하여 캐비티를 독립시킨 미드레인지와, 당시까지의 지견(知見)을 모은 구성은 완성도가 높았고, 여러 번의 개량을 거쳐 ‘매트릭스 801S3’의 판매가 종료되는 98년까지 기본형을 바꾸지 않고 약 20년간 계속된 롱 셀러가 되었다. 


그 동안 EMI의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독일의 그라모폰이나 데카 등의 유명한 레코드 회사의 클래식 녹음용 모니터 스피커로 활약하였다. 녹음 현장에서의 피드백이 새로운 기술 개발에도 도움이 되어 B&W=고성능 스튜디오 모니터라는 도식이 세상에 침투되었다. 


현재의 800D3로 이어지는 빛나는 전통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클래식 업계의 제왕 카라얀이 자택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선전도 많은 오디오 파일의 마음을 동요하여 자가용으로 영입하는 케이스가 늘어났다.


 바우어스도 녹음에 종사하는 연주가나 엔지니어가 스튜디오에서 들은 음에 가능한 가까운 사운드를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스피커의 중요성을 이전부터 제기해 왔기에, 일반 가정용으로 저음역을 작고 더블 우퍼로 한 802나 반대로 대형화한 매트릭스 800등의 파생 모델이 태어나게 되었다. 


후년이 되지만 내가 자택에 처음 불러들인 B&W 스피커는 매트릭스 800이었다. 케네스 그레인지에 의한 약간 특이한 디자인과는 정반대로, 거기서 나오는 사운드는 매우 내추럴하고 자연스러운 스케일감과 해상도를 보여 주었고, 801보다도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많은 정보량이 도입을 결정한 이유였다. 


당시의 시장에서 B&W의 존재감은 요즘만큼은 아니었지만, 물리적인 특성과 음악성을 고도로 양립시킨 역량은 이미 놀랄 만한 것이었다. 초기의 골드문드 앰프과 연주하던 총천연색의 센시티브한 음 세계가 그리워진다


Nautilus 800 시리즈의 후속기로서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가 처음으로 채용된 800D 시리즈는 2005년에 등장했다. 

사진의 800D 외에 801D, 802D, 803D에도 동일한 트위터가 탑재되었다. 800D 시리즈는 그 후 800 시리즈 다이아몬드 (2010년)를 거쳐 현재의 800D3(2015년)으로 진화해 갔다.


바우어스의 집념과 유지가 결실을 맺은 ‘노틸러스

또 하나의 B&W의 약진을 이끈 원동력이 이 시기에 추가된다. 그것이 1981년에 발족한 본사와는 독립된 ‘스테이닝 연구 시설(SRE)’이었다. 

BBC의 연구 개발 부분을 시찰한 바우어스는 일상적인 경영 실무와는 분리된 기술연구 시설의 중요함을 통감하여 바로 물건 찾기에 착수하여. 본사가 있는 워싱에서 차로 북쪽으로 약 20분 거리의 도시, 

스테이닝에서 매물로 나와 있던 톤암으로 유명한 SME 사의 생산 시설을 매수하였다. 


새로운 연구소가 갖추어지면서 B&W의 탐구 자세는 한층 더 깊어졌으며 타사에서도 우수한 엔지니어가 모여들었다.


CD 시대가 착착 진행되던 1986년 초 B&W에서는 <궁극의 스피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바우어스가 준 테마는 두 가지. 진동판은 모두 같은 소재를 사용할 것. 


그리고 ‘상자’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짧아, 1년 반 후인 1987년 말 암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세상을 뜨기 몇 주인가 전에 그는 병실로 당시 마케팅 담당이었던 로버트 트룬츠(후에 B&W 2대 오너에 취임)을 불러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였으면 하네. 가능하면 로렌스 디키가 해 주었으면 하는데, 이어받아 주려나’ 하고 물었다. 그것을 듣고 병문안을 온 디키는 ‘예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개발은 5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오리지널 노틸러스가 93년에 발표된다. 

개발 비용은 엄청났지만 이 때에 ‘노틸러스 테크놀로지’가 탄생하여 지금까지도 활용되며 노틸러스 튜브를 탑재한 제품이 대량으로 세상에 나오는 등 B&W가 한층 더 발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바우어스의 집념과 유지는 세기의 벽을 넘어 B&W를 지고의 존재답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라틴어로 앵무조개를 의미하는 ‘Nautilus’라고 하는 형명을 부여한 궁극의 스피커 프로젝트의 완성형(1993년). 이 프로젝트에서 새롭게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Nautilus 800 시리즈를 시작으로 Nautilus 칠드런이 속속 등장한다. 
탄생으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현재에도 Nautilus의 생산은 계속되고 있다


고음역 재생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온 다이아몬드 트위터

바우어스 사후 B&W의 오너는 2대째인 트룬츠(재임기간 1987~96년), 3대 째인 조 앳킨스(동 1996~2016년)로이어진다. 


지난 가을까지 B&W를 이끌어 온 앳킨스는 미국의 회계사 출신으로 민완 경영자로서의 재치를 발휘하였다. 


인클로저의 제조를 위탁하고 있던 덴마크의 가구 메이커를 인수하여 일관 생산 체제를 확립하고,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제조 설비를 비롯한 과감한 대량 생산화를 도입하는 등 설비 투자, 생산의 면에서 B&W를 확대한 것은 이 사람의 공적이다. 하이클래스의 카 오디오나 헤드폰, 그리고 iPod 스피커 ‘제플린’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브랜드 가치를 높인 것도 이 때부터였다그 동안 B&W의 톱 모델은 모니터 스피커의 세계를 일신해 왔다. 


 시그니처 800(2001년)에서 시작된 10인치=25㎝ 구경의 더블 우퍼는 15인치 우퍼의 ‘신화’를 위협하였고,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얻은 800D(2005년)는 고음역 재생 능력의 새로운 차원을 가져왔다. 


시장에 퍼지기 시작하는 상위 포맷(SACD 등)의 정보량을 제대로 뽑아내는 모니터의 성격을 강화하면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스위트한 감촉을 어딘가에 남겨두는 점에 매료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십수 년에 걸쳐 나의 청취 경험을 800D에 맡긴 것이었다. 그 후에도 B&W의 에이스 넘버 ‘800’은 순조롭게 세대를 거듭하여, 현재 D3로 이어지고 있다.

 iPod 스피커 ‘제플린’

계승되는 사상과 발전을 계속하는 기술력

본고를 집필하는 데 있어 B&W의 현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앤디 커 씨로부터 많은 시사를 주는 코멘트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바우어스가 남긴 철학의 꿋꿋함과 그것을 베이스로 발전한 최신 기술로의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다시 한 번 나온다. 

커 씨는 ‘정확한 음(트루 사운드)의 스피커를 만든다는 철학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스피커에 대한 저희들의 지식이나 이해의 레벨입니다’라고 주장한다. 


 ‘바우어스는 스피커의 중요한 부분을 자사 생산하는 것이 자신의 스피커를 확실한 것으로 하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고 하였다.따라서 현재의 B&W가 ‘주요 스피커에 사용하고 있는 모든 드라이브 유닛을 자사에서 설계,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의 하나로, 800 시리즈와 같은 특수한 곡면 캐비닛에서 독자적인 진동판까지 중요한 부분을 거의 자사 생산하고 있습니다’ 라며 가슴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룹 전체의 종업원이 약 1100명, 연간 제품 출하대수가 약 100만대라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B&W에 있어 중요한 키 테크놀로지로 커 씨가 꼽고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 컨티넘 콘, 그리고 고도의 컴퓨터 해석에 의한 불필요한 공진의 대폭 감소, 이들 3 가지다.


또한 상징적인 것은 스피커 만들기의 핵심이 되는 음 결정의 작업이다. ‘같은 리스닝 룸에서 모든 제품을 35년 이상에 걸쳐서 음질 확인을 해 왔기에 일관된 레퍼런스라고 할 만한 포인트를 축적해 왔다’고 말하는 것에는 놀라웠다. 현장에서는 ‘음질에 관한 모든 결정은 똑같이 소규모의 엔지니어 팀이 진행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지켜 왔다. 


바우어스 사후에는 스티브 로우와 존 디브가 작업의 중심이 되었는데 2010년대부터는 스티븐 피어스(현 주니어 디벨롭먼트 엔지니어)가 담당하고 있다. 

피어스는 바우어스가 살아 있을 때부터 B&W에서 근무해 왔으며, 커 씨는 ‘그가 창업자와의 연결고리를 저희에게 가져다줍니다’ 라고 신뢰를 보낸다. 이렇게 하여 동사의 톤 정책을 지켜 온 것이다.


B&W의 아이덴티티인 우수한 디자인성과 음향 기술의 양립도 흥미롭다. 커 씨는 ‘아름다운 모양을 디자인하면서 음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음향 모양을 설계하면서 공업 디자이너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시킵니다’ 라고 설명한다.


이것도 바우어스의 사상 그대로다. 현재의 주력 디자이너는 네이티브 디자인 사의 모튼 워렌으로 디자인 팀과 설계 기술진이 항상 격론을 교환하고 있다고 한다. B&W의 디자인력은 점점 세련됨을 갖춰나가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현재의 톱 모델이 800D3이다. 본지의 레퍼런스 기기로 빠르게 채용되어, 모든 정보와 그 상태를 스트레이트로 전해 주는 고성능에는 시청실에서 접할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확한 음’를 재생하는 ‘미터원기’(1미터를 정확하게 재는 도구: 역주)의 성격이 더욱 강해지고, 소스의 결점에서 기기나 방의 특성까지 <틀린 그림 찾기>를 음으로 나타내는 능력이 월등히 높다. 


그만큼 사용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 만만치 않은 상대를 길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높은 차원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을까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 


2005년에 800D 시리즈에 처음 도입된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는 그 때까지의 알루미늄 돔 트위터와 비교하여 고음역 재생 퀄리티를 극적으로 향상시켰다. 800D 시리즈 이후 다이아몬드 진동판 자체에 변화는 없지만, 자기회로와 함께 트위터를 수납한 노틸러스 튜브는 소재나 구조가 개량되어 현재의 800D3 시리즈에서는 무연 알루미늄 블록에서 절삭 가공한 견고한 보디로 되어 있다.


패시브 형의 다음에는

 ‘B&W가 우리들로부터 얻은 제안은 품질 향상에 있어 큰 힌트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상품 기획이나 음 결정이라는 크리에이티브 한 부분이나 철학에 걸친 부분에는 참견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며 B&W의 자주성을 존중해 왔다.


끊임없는 기술 혁신에 있어서는 B&W의 라인업은 지금까지 일정한 사이클로 갱신되어 신시대를 개척해 왔다. 

하지만 패시브형의 하이엔드 스피커에 있어서는 이제는 더 할 것이 없을 만큼 왔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피커 유닛의 제어에 일렉트로닉스를 개재시켜 나가는 길 밖에 없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런 와중에 작년 5월부터 B&W의 오너가 된 것이 미국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 EVA 오토메이션이다. 


동사는 회사의 성격상 하이엔드 오디오와 AI의 융합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AI의 패턴 인식과 하이엔드 스피커의 조합 등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콜라보레이션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21세기의 B&W에는 끝없는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기사출처는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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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스테레오사운드 20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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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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