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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스의 악몽, 대니 윌렛의 기적

이지연의 Birdie&Bog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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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오거스타내셔널에서는 허리우드 영화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주연은 대니 윌렛, 조연은 조던 스피스였다. 

Bogey

스피스, 악몽의 30분

1996년 열린 마스터스. 최종일 6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 닉 팔도(잉글랜드)에게 5타 차 역전패를 당한 그렉 노먼(호주)은 "훗날 사람들이 내 역전패가 아닌, 팔도의 플레이를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랭킹 2위 조던 스피스(미국)의 바람도 그러할 것이다.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스피스는 9홀을 마쳤을 때 5타 차 선두였다. 지난 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까지 포함해 7라운드 연속 선두를 달린 스피스의 붕괴는 누구도 예상못한 시나리오였다. 

12번홀에서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린 뒤 드롭하고 있는 조던 스피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샷마저 해저드에 빠뜨리며 침몰했다.

출처PGA투어
그러나 골프는 지키려고 하면 무너지는 게임이다. 5타 차 선두인 상황에서 전반처럼 공격적인 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파를 지키려는 소극적인 플레이가 화를 자초했다. 

보기-보기를 하고 넘어온 12번 홀(파3)에서 나온 스피스의 플레이는 전혀 그답지 않았다.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린 뒤 드롭 존에서 친 세 번째 샷은 뒤땅 그리고 자포자기한 듯 친 다섯 번째 샷은 그린 뒤 벙커로 빠졌다. 스피스는 "너무 긴장해서 스윙이 안 좋았고, 판단도 잘못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30분"이라고 했다.  

우승자 대니 윌렛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스피스. 마스터스는 전통에 따라 전년도 우승자가 올해 우승자에게 그린재킷을 입혀준다.

출처PGA투어
스피스의 30분은 메이저 사상 최악의 역전패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혹자들은 스피스가 충격적인 30분에 대한 기억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스터스 4승을 거둔 잭 니클러스(미국)는 "최고의 선수들은 누구나 상처가 있다. 스피스는 이번 일을 통해 더 배우고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1년 마스터스에서 4타 차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바로 다음 메이저인 US오픈에서 우승했다. 

2012년 디오픈에서 4홀을 남기고 4타 차 우세를 지키지 못했던 애덤 스콧(호주)도 이듬 해 마스터스에서 정상에 오른 적도 있다. 스피스는 2014년 대회에서도 12번홀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려 우승컵을 놓쳤다. 그리고 1년 만인 지난 해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미국)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그린재킷을 입었다. 이번에도 스피스가 30분의 악몽을 빨리 떨치기를 바란다. 

23세인 스피스는 아직 젊고, 시간이 많다.  


고개 숙인 매킬로이

올해 마스터스를 앞둔 로리 매킬로이의 각오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마스터스를 앞두고 열리는 이벤트 대회인 파 3 컨테스트마저 빠지며 본 대회에 전념한다고 할 때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매킬로이는 1,2라운드에서 유일하게 이틀 연속 언더파를 적어내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향해 나아갔다. US오픈(2011)과 PGA 챔피언십(2012,2014), 디오픈(2014)에서 우승한 그에게 마스터스는 가장 중요한 대회였다. 

매킬로이는 바람이 강해진 2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며 흔들리지 않는 집념을 보였다. 2연패를 노리는 스피스에게 가장 위협적인 추격자였다. 

3라운드에서 버디 1개도 잡지 못한 매킬로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향한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출처PGA투어
그러나 무빙데이인 3라운드에서 매킬로이의 꿈은 뒤로 물러섰다. 스피스와 동반 플레이를 펼친 매킬로이는 노버디 플레이로 5타를 잃으며 고개 숙였다. 매킬로이가 메이저 대회에서 버디를 1개도 잡지 못한 건 2010년 디 오픈 2라운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선두 스피스와 5타 차이로 벌어진 매킬로이는 마지막 날 분풀이를 하듯 버디 7개를 잡아냈다. 그러나 보기도 6개가 나왔다. 최종 합계 1오버파 공동 10위.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실패한 매킬로이는 "심리적인 장벽을 넘지 못했다. 전혀 내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혹자들은 3라운드에서 매킬로이가 경기 속도가 느린 스피스와 경기하지 않았더라면 경기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골프는 경쟁자와의 대결에 앞서 자신과의 싸움이다. 매킬로이는 대회에 앞서 "마스터스에만 오면 심리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나 여느 대회처럼 똑같이 대회를 치르려고 한다"고 했다. 매킬로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실천은 못했다.





드라이버에 웃고, 퍼트에 운 존슨

더스틴 존슨(미국)의 최종 라운드는 지난 해 US오픈의 데자뷰였다. 장소만 달라졌지, 그 상황은 비슷했다. 존슨은 지난 해 US오픈 17번 홀까지 스피스에 1타 차 2위였다. 18번 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을 4m에 붙였다. 원 퍼트면 우승, 투 퍼트만 해도 5언더파로 경기를 마친 스피스와 연장전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존슨은 4m 이글을 놓친 뒤 1m짜리 짧은 버디도 놓치면서 우승 꿈을 접었다.

지난 해 US오픈에서 짧은 퍼트를 놓치고 있는 존슨. 메이저 대회마다 이런 모습이 자주 나온다는 것은 존슨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다.

출처골프파일
존슨은 지난 해 PGA투어 드라이브 샷 1위(317.7야드), 올해도 5위(308야드)에 올라 있는 장타자다. 장타의 이점을 앞세워 500야드가 훌쩍 넘는 긴 파 5홀도 쉽게 투 온을 시킨다. 스피스가 무너지면서 우승자 윌렛을 추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추격자였던 존슨은 500야드가 넘는 13번홀(510야드)과 15번홀(530야드)에서 투온으로 이글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그의 퍼트는 드라이버만큼 훌륭하지 못했다. 

윌렛에 2타 차 2위였던 존슨은 17번홀(파4)에서 하지 말아야 할 사고를 또 쳤다. 3퍼트가 나왔고 불과 1m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의 보기 퍼트를 놓쳐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최소 2언더파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지만 최종 순위는 1언더파 공동 4위가 됐다. 1타의 상금 차는 무려 37만달러(약 4억2000만원)나 됐다. 더 큰 손실은 누적되는 메이저 실패 경험이다. 존슨은 PGA투어 9승을 거뒀지만 메이저 우승은 없다. 짧은 거리 퍼트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않는다면 메이저 우승은 언제 오리란 보장도 없다. 


Birdie 

그린재킷은 내 운명

대니 윌렛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세계랭킹 12위였지만 대다수 골프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반 정도다. 윌렛은 2008년 프로로 전향해 2009년부터 유러피언투어에서 활동했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 때문에 그저그런 선수였다. 

허리 부상으로 고통받던 2011년 만나 대니 윌렛에게 희망을 심어준 니콜.

출처니콜 윌렛 트위터
평범했던 윌렛을 특별 한 선수로 만든 이는 아내 니콜이었다. 윌렛은 허리 부상으로 고통받던 시절 운명처럼 니콜을 만나 2년의 열애 끝에 2013년 4월 결혼했다. 

윌렛은 지난 15개월 동안 유러피언투어 통산 4승 중 3승을 거둘만큼 승승장구했다. 지난 해 유러피언투어 상금랭킹은 2위였다. 로리 매킬로이가 출전 대회 수를 채우지 못하고도 협회의 배려로 상금왕을 차지했기 때문에 사실상 그를 유럽 최고의 선수라 봐도 무방했다.  

윌렛은 지난 해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3위, 디오픈 6위에 오르면서 올 시즌 PGA투어 시드를 얻었다. 결혼을 하고 승승장구했고 세계 최고의 무대라는 PGA투어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PGA투어 시드를 포기했다. 결혼 2년이 지나 생긴 첫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스터스보다 8일 빨리 태어난 복덩어리 아들 자카리아 제임스.

출처대니 윌렛 트위터
윌렛은 이번 대회 출전 자체가 극적이었다. 첫 아이의 출산예정일이 마스터스 기간에 겹치면서 하마터면 출전하지 못할 뻔 했다. 
그러나 마스터스 한 주 전 제왕절개로 아들(자카리아 제임스)이 태어나면서,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둔 화요일 밤에 오거스타내셔널에 도착했다. 윌렛은 "열 흘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18번 홀에서 흰색 스웨터를 벗고 녹색 셔츠를 드러낸 윌렛. 유머감각이 많은 그는 "그린재킷에 어울릴 것 같아 준비했다"고 말했다.

출처PGA투어
윌렛은 다소 날카 롭고 무서워보이는 인상과는 전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잉글랜드 북부 셰필드에서 목사였던 아버지(스티브)와 수학 교사 출신 어머니(엘리자베스)의 4남 중 셋째로 태어난 윌렛은 독실한 신앙의 소유자다. 유머 감각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윌렛에게 큰 영향을 줬다. 윌렛은 "지난 해 디오픈 2라운드를 선두로 마치자 어머니가 '컷 통과를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내 유머 감각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했다. 윌렛은 자신의 이름을 딴 위 윌렛(Wee Willet)이라는 유소년 골프 재단을 후원하고, 강아지를 끔찍히 사랑한다. 

윌렛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무려 180만달러(약 20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우승 상금보다 더 값진 건 가족 사랑의 힘으로 들어올린 우승컵이 아닐까? 윌렛은 "골프 선수로서의 생활과 인생의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아내 니콜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을 모두 견뎌내고 그린재킷을 입게 돼 더 값지다"고 말했다. 니콜과의 사랑은 물론 그린재킷도 윌렛에게는 운명이었다.


전설의 아름다운 퇴장


올해 마스터스는 톰 왓슨이라는 전설을 떠나보냈다. 왓슨은 반 세기에 가까운 46년 동안이나 오거스타내셔널을 지켜온 산 증인이었다. 1970년 첫 대회에 출전한 뒤 이번 대회까지 43번이나 오거스타내셔널을 밟았다. 1977년과 1981년 대회에서 우승했고, 총 15번 톱 10에 들었다.
왓슨은 역대 우승자로 평생 출전권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더 이상 젊은 선수들에게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왓슨은 올해 대회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1라운드에서 2오버파로 선전하면서 최고령(67세) 예선 통과 가능성을 밝혔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강한 바람 속에 6타를 잃었고 2타 차 컷 탈락을 했다.        
2라운드가 오거스타에서의 마지막이 된 왓슨은 18번홀 그린을 향해 올라서면서 모자를 벗고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나 마지막 퍼트를 준비하기 위해 그린을 오가던 도중 눈가를 훔치면서 감정을 추스려야 했다. 

18번홀 그린에서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왓슨.

출처PGA투어
왓슨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1라운드 7번홀에서 그는 짧은 파 퍼트를 하려는 순간 볼이 움직였다고 신고해 1벌타를 받았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어서 넘어갈 수 있었으나 그는 스스로 벌타를 부여했다.   

경기를 마친 왓슨은 지난 해 마스터스와 이별을 고한 벤 크렌쇼(미국)의 인사를 받으며 오거스타내셔널을 떠났다. 왓슨은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루프 안에서 걸었던 순간은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이 있었기에 마스터스는 더 특별할 수 있었다. 

이지연 기자는
2002년 골프 전문기자로 <골프다이제스트>에 입사했다. 현재 JTBC골프와 중앙일보에서 골프 담당을 맡고 있다. 치열한 순위 경쟁보다는 스토리있는 드라마로 골프를 뜯어보는게 취미다. ( easygolf@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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