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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가 미공군 조종사를 18년간 냉동인간으로 가둔 이유

스마트인컴 작성일자2017.09.18. | 224,597  view

피그스 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은 1961년 4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1,500여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쿠바 남부를 공격하다 실패한 사건입니다. 대외적으로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후 쿠바 망명자들이 CIA로 부터 훈련을 받았고 실제로 미군이 직접 침공에 참여한 사실들이 수십년 뒤에 드러났는데요. 여기에 20여년간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또 하나의 비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카스트로가 미공군 조종사를 18년간 냉동인간으로 가둔 이유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앨라배마 주 공군 소속의 토마스 ‘피트’ 레이 중위는 CIA(미국 중앙정보국)의 명령을 받아 1961년 4월 19일, 피그스 만 침공에 비밀리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30세였던 레이 중위가 조종하던 B-26 폭격기는 쿠바 대공화기에 격추되었고 탈출에 성공하여 겨우 살아남았지만, 부조종사 리오 베이커 소위와 함께 쿠바군에게 발각되어 총살당했습니다. 하지만 베이커 소위와는 달리,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레이 중위의 시신을 즉시 냉동 보관시키도록 명령했습니다.

▲피그스 만 침공이 처참하게 실패했던 당시만 해도 CIA는 미국의 개입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또한 앨라배마 주 공군을 쿠바에 투입시켜 네이팜 폭탄을 투하시킨 사실도 부인했죠.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뒤, 이 침공에 참여했던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쿠바 정부를 이끌던 피델 카스트로는 미군과 CIA는 물론 케네디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한 사실을 증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레이 중위의 시신을 하나의 증거물로 -140도의 온도에 냉동시키게 되었습니다. CIA는 침공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와 엄청난 책임을 물어야하는 꼴이어서 끝까지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레이 중위 또한 송환되지 못했죠.

▲하지만 1979년 12월, 쿠바는 18년만에 전세계 언론에 레이 중위의 냉동시신을 알리면서 이 사건은 급전환을 맞이했습니다. 레이 중위가 죽은 당시 6세였던 그의 딸 자넷 레이는 아버지 시신을 되찾기 위해 미국 정부와의 기나긴 소송에서 이겨 무려 2,390만달러(약 270억7,000만원)의 보상을 받았고, 결국 쿠바와의 협상 끝에 18년간 냉동보관 되었던 아버지의 시신을 송환받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피그 만 침공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비밀 해재된 시점을 끝으로, 레이 중위가 CIA에서 주는 가장 높은 훈장인 ‘Distinguished Intelligence Cross’를 받게 되었으며 CIA 본부의 ‘명예의 책’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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