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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몰카 사건: 성적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

버스에 탑승한 레깅스 입은 여성의 하반신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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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수 언론에서 이른바 ‘레깅스 몰카 사건’으로 불리는 판결을 보도했다. 해당 사건의 사실 관계와 각 심급별 판결의 쟁점, 그리고 최종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간단히 정리한다.

사실 관계:

사실 관계는 아주 단순하다. 2018년 5월 A는 버스에서 하차하려고 요금 단말기 앞에 서 있는 피해 여성 B의 뒷모습(하반신)을 휴대폰 카메라로 8초 정도 몰래 촬영했다. 피해 여성은 엉덩이 바로 위까지 헐렁한 상의를 입고, 발목까지 내려온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판결 경과:
  • 1심: 유죄, 벌금 70만 원
  • 2심(항소심): 무죄
  • 3심(상고심):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2심(의정부지법)에 보냄(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19도16258 판결)
1심과 2심의 판단 근거

1심: A가 촬영한 부위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해당하므로 유죄.

2심: “피해자가 당시 입고 있던 레깅시는 피해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피해자 역시 위와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으므로), 레깅스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무죄. 즉, 레깅스 입은 여성의 하반신은 해당 범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의 ‘대상'(“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무죄.

이 사건은 버스에서 일어났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버스에 탑승한 레깅스 입은 여성의 하반신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인가 아닌가.

대법원 판결: ‘성적 대상이 되지 않을 자유’

하지만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면서 2심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다. 이하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그 논거를 정리한다.

1. 이 법 조항을 만든 이유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이른바 ‘몰카’의 폐해가 사회 문제화하면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는 촬영 및 반포 등의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신설된 조항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피해자가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2. 성적 수치심의 의미, 판단 기준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할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즉,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 공포, 무기력, 모욕감 등 그 표출 형태는 다양하다. 그리고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는지 여부는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처지와 관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3.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의 의미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서 규정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는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촬영의 맥락과 결과물을 고려해 그와 같이 촬영하거나 촬영 당했을 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기 의사로 드러낸 신체 부위라 하더라도,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에서 레깅스 입은 여성의 하반신은 노출 부위에 해당하지는 않지만(발목 정도만 노출된 상태이므로), 촬영 당시 피해자 여성은 어덩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상의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깅스 하의를 입고 있어,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의 굴곡과 신체적 특징이 드러나는 모습이었고, 이렇게 의복이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같은 신체 부분이라도 어느 장소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되었느냐에 따라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고,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 가능하거나 피해자 여성이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특히 2심 판단의 잘못을 지적하는 판결문 부분)

4.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

피해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촬영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

‘상식’에 관하여

이 대법원 판결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성폭력처벌법 14조)의 대상과 보호법익을 구체화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즉, 해당 법 조항에 규정된 ‘대상’을 구체화함으로써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그 금지 행위의 내용을 더 명확하게 설명했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이 법을 통해 보호받는 권리과 권익의 내용을 구체화했다.

즉, 2심 법원은 피해 여성이 레깅스를 ‘일상복’의 용도로 입었고, 그 레깅스를 통한 신체 노출 범위는 발목에 한정되며, 은밀한 개인 공간이 아닌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버스)에서 그 촬영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을 무죄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1) 공개된 장소(버스)에서 2) 피해자 자신의 의사로 드러낸 신체 부위이고, 3) 그 신체 부위 대부분이 의복에 의해 가려져 ‘맨살’로 노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4) 그 ‘맥락’에 따라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해자는 피해 여성을 몰래 촬영한 이유를 ‘피해 여성의 얼굴이 이쁘고, 몸매가 좋아서’라고 말했다. ‘꽉 끼는 레깅스’를 입었든 ‘헐렁한 츄리링'(운동복)을 입었든 버스 단말기 앞에 하차하기 위해 서 있는 상태에서 그 뒷모습을 촬영당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대법원이 자세하게 설명한 ‘그 맥락’이라는 건 달리 말하면 상식에 불과하다.

이 판결을 보도한 한 포털 기사 댓글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성수치심을 느낀다면 안입으면 될텐데….”

이 글을 쓰는 현재 758명이 이 댓글에 공감(찬성)했고, 262명이 반대했다.

네이버에 올라온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서 가장 공감(찬성)을 많이 얻은 댓글들(‘순공감순’)

출처네이버 뉴스

성적 수치심의 주체(이 법이 보호하려는 ‘사람’)와 범죄의 대상(이 법 조항에서 규정한 범죄 행위로 침해되는 ‘신체’)을 헷갈리면 곤란하다. 레깅스를 입었기 때문에 피해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게 아니다. 레깅스 입은 몸을 몰래 촬영당했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이게 어려운가. 당연한 상식이고, 아직 상식이 아니라면 마땅히 지금 이 순간부터 상식이어야 한다.

당연한 상식을 법적으로 확인해준 이 판결의 의미를 대법원 대판공보연구관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서 성적 자유’의 의미, 즉 누구든지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최초로 판시한 대법원 판결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고, 정당한 평가긴 하지만, 그 ‘최초’라는 수사가 오히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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