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따뜻하고, 기억은 촉촉하다

조회수 2020. 12. 18. 09: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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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 가족의 8살 꼬마가 이제 61살이 되었습니다


■ 50년 지나도 기억나는 라디오 유행가

“밥 많이 먹어둬라. 오늘 이사 간다.”

어머니의 한 마디로 온 가족의 태기산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태기분교 졸업생 한만송 씨(61)가 운영하는 SNS 밴드 [태기산 그때그시절]에는 당시 상황들이 그날의 식단이며 버스 번호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기산에 먼저 자리 잡은 아버지를 향하여 서른다섯 젊은 어머니와 여덟 살, 여섯 살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이고지고 먼동의 여명을 빌려 살던 집을 등지고 길을 나섭니다. 횡성읍 남쪽 벌을 가로지르는 전천(前川 = 앞내)의 꽁꽁 얼어붙은 빙판 위를 걸어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립니다. 뿌옇게 먼지 뿌리는 시골길을 지나 횡성읍 버스터미널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꼬마 한만송의 눈에는 ‘삼륜 트럭과 택시, 오토바이들’이 여간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출처: 1960년대 대표 트럭 ‘삼륜차’

버스터미널 가장자리로 둘러선 식당가에서 평생 처음 먹어본 투가리 팥국밥. 어머니는 남매의 투가리에서 팥 비슷하게 생긴 작은 회색 알갱이를 건져서 버립니다. 그때는 영문을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사람 몸에 붙어 기생하는 이(蝨)나 진드기의 일종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가족은 식사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버스에 오릅니다. 동신운수 5024. 감색 유니폼 차림의 안내양이 버스 옆구리 철판을 팡팡 치면서 ‘오라이!’를 외치고는 차 문을 닫습니다. 시내 아스팔트 길을 지나 먼지투성이 도로를 달려가는 버스 안, 라디오에서 소음과 함께 울려 퍼지던 “가수 이채연의 유행가 ‘낮 12시’”를 한만송 씨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마도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버스는 울퉁불퉁 산비탈을 깎아낸 신작로 길로 바꿔 탑니다. 산골은 해가 짧아서 성질 급한 땅거미가 서둘러 그림자를 드리우지요. 낙조도 빛을 거두어 어둑어둑해질 무렵 하나둘씩 가스등이 켜지는 자그마한 면 소재지에 버스가 도착합니다. 둔내자전거포, 계명옥, 선화네 옷가게 등 키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잠시 정차했던 버스는 승객들을 차례차례 토해내고는 안내양의 팡팡 소리와 함께 다시 길을 나섭니다.

길고도 거친 승차감에 한만송은 아까부터 멀미로 속이 메슥거려 토할 지경입니다. 어린 아들의 안간힘이 안타까운 어머니가 만송을 안아주며 달랩니다. “조금만 더 가면 종점이다.” 침묵 속에 무신경하게 반복되는 엔진소리, 밟히는 자갈을 뱉어가며 질주하는 바퀴소리, 매캐한 매연 냄새가 뒤섞여 피어오르던 흙먼지 등이 꿀렁거리는 배를 끌어안고 정지된 시간 속에 부유하던 만송의 기억에 오래오래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항공 촬영한 1960년대 횡성읍 시가지 모습

■ 도깨비 나라처럼 꿈꾸는 듯 아름다웠던 물레방앗간

버스는 석문리와 마암리를 지나, 화동리 정미소 앞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달빛이 비춰주는 논두렁길을 제법 걸었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의 스카프를 풀러 동생의 목에 매어줍니다. 

하늘에서는 거대한 어둠의 바구니에서 별들이 넘쳐 흘렀고, 발 아래에서는 밟힌 눈들이 뽀드득 뽀드득 투정 섞인 신음을 토해냅니다. 저만치에 커다란 물레방아 바퀴가 보입니다. 낙차 큰 수로에서 쏟아지는 물이 얼다 만 얼음 바퀴에 부딪쳐 일으키는 물보라가 달빛을 품어 흡사 장난꾸러기 도깨비의 나라에라도 온 듯한 장관을 펼쳐 보여줍니다.

물레방아 옆에 자리한 초가집에서는 굴뚝으로 뽀얗게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만송의 가족을 반갑게 맞아준 분은 화동리의 안씨 집안 사람으로,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일찌감치 ‘태기산 화전민 프로젝트’ 소식을 눈치 채고 미리 이곳에 와 자리를 잡고 준비를 하였다 합니다.

당시 산간마을의 겨우살이는 먹거리가 변변치 않았지요. 그래도 어디서 구했는지 귀한 김이 접시 위에 수북이 놓여 있습니다. 주린 배를 급히 채운 포만감에 잠이 쏟아집니다. 설설 끓는 구들의 온기에 몸이 노곤해지자, 등잔의 하얀 사기 꼭지에서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다 만송은 까무룩 잠에 빠져듭니다.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만송 가족은 태기산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묵은 눈더미 위로 언제부터 다져졌는지 모를 발자국들이 서로를 밟으며 오솔길을 이루고 있습니다. 길은 가파른 오르막으로 길게 이어져 구두미재를 넘어갑니다. 길옆으로는 키 큰 물푸레나무들이 빽빽하게 줄을 지어, 길쭉하고 짙푸른 이파리를 흔들어줍니다.

출처: ‘겨울왕국’ 태기리(里)

해가 중천에 올랐을 시간인데도 울창한 나무들에 가리어 고갯길에는 빛살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가끔 멧돼지와 호랑이도 출몰한다는 무서운 산길입니다. 어머니가 힘이 드는지 아까부터 칭얼대는 동생을 업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합니다. 자꾸 뒤처지는 어머니의 속도에 지루해진 만송은 미끄럼을 타기도 하며 가쁜 길을 재촉해봅니다.

고개를 서너 번 넘었을까, 갑자기 울창하던 삼림이 시나브로 열리면서 환하게 밝은 산마루가 펼쳐집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목소리도 메아리처럼 울리며 들려오고요. 맞은편 산등성이에서는 장정들이 떼로 모여서 나무를 베어 평지에 쌓고 있습니다. 주변의 비탈에는 새로 일군 계단식 밭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고, 사이사이 골짜기로 허름한 박스형 집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때 저 멀리에서 마중 나오며 만송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와랑와랑 들려옵니다. 순간 긴장이 풀린 세 사람은 짐보따리를 떨구듯 내려놓고는 오금의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 아침 점호 후 ‘돌격 앞으로!’

만송 아버지는 한 해 전부터 미리 와서 집을 짓고, 화전으로 밭도 일구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횡성을 떠나 철도청 기관사가 되어 기관차 모는 일을 했다 합니다. 그런데 기관차 운행 스케줄에 맞춰 살다보니 숙박도 일정치 않고, 가족을 떠나 전국을 떠돌며 사는 생활이 마뜩치 않았나 봅니다.

그러던 중 고향에서 들려온 대대적인 ‘화전민 프로젝트’에 관심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훌쩍 일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본디 의협심이 강하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까지 제격이어서 태기리 화전마을에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대표’가 되었다 합니다. 나중에 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기꺼이 ‘기성회장’을 맡아주었고요.

초기 태기리 화전마을의 생활은 이러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지금의 태기분교 터 조금 앞쪽의 널직한 공터에 장정들이 모여 아침 점호를 합니다. 점호를 통해 일할 만한 사람들의 컨디션 등을 점검하고, 새로 개간할 화전 자리를 상의하고, 일꾼들 조를 짜서는 ‘돌격 앞으로!’ 하는 것입니다.

출처: “돌격 앞으로!” 길을 만드는 화전민들

초기의 화전 개간은 일이 고되어서, 태기리 주민들 외에 일당을 받고 외부에서 막일을 하러 오는 출퇴근 잡부들도 적지 않았다 합니다. 몸집과 근력을 기준으로 나무를 베어 나르고 불을 질러 소각하는 화전팀과 계단식으로 밭을 일구는 개간팀으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하고요. 주민들은 울력으로 함께 개간하는 밭 이외의 공간에 따로 자투리 밭을 만들기도 했다 합니다.

화전은 산등성이에 불을 놓아 작물을 재배할 터앝을 만드는 임시방편입니다. 지면 위로 올라온 나무들을 불태웠다 해도 땅속의 뿌리 등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아 농사의 수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원시 농법입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거듭하여 밭을 갈면서 땅속 뿌리들을 걷어낸 연후라야 그럭저럭 밭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야생으로 오랜 세월 동안 번식해온 잡초의 씨앗들이 농작물보다 월등한 생명력으로 농사를 방해하는 건 물론이고요. 이렇다 할 비료나 제초, 살충 등의 농약 따위도 없다 보니 수확은 더욱 보잘것없겠지요.

저 척박한 화전의 방식을 빌려, 오직 인간의 열정과 부지런으로 대자연의 산마루 위에 수백 명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보자고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일단 수만 평의 계단식 밭을 개간하는 데는 성공을 합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지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고요. 과연 저 척박한 화전은 태기리 사람들의 열정에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요? 생필품조차 충분치 않은 급조된 심산의 화전마을은 스스로 도와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출처: 태기산 정상 저 멀리 보이는 잣나무 군락지가 화전마을 자리다.

필자 소개: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글쓰기를 시작해 어언 30년째 글밥을 먹고 있다. 1995년 무렵부터 건축 분야를 맡게 되면서 늦깎이로 독학의 계단을 올랐다. 『공간Space』, 『건축인Poar』, 『플러스Plus』 같은 건축 전문지에 인터뷰 원고와 리뷰·건축 칼럼을 썼고, 집도 직접 두어 채 지어보았다. 2010년에는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건축문화제Seoul Architecture Festival]의 집행위원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 영국 건축문화기행 『건축의 표정』(글항아리, 2017)과 예술인 에세이 『바람의 노래』(동녘, 2010), 영화 이야기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심산, 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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