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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판사는 모두 무죄? 1. 산케이신문 세월호7시간 재판 개입 사건

조회수 2020. 11. 18. 18: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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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판사들에 관한 네 번의 형사재판 있었고, 네 번의 무죄 선고가 있었습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 ‘안’에 있는 사람과 법 ‘밖’에 있는 사람도 과연 평등할까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헌법 위반 사태였습니다. 사법농단이 세상에 알려진지 벌써 4년이 다 되어가지만, 법관탄핵과 법원개혁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사퇴임하는 판사들이 늘면서 탄핵대상자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에 깊이 관여한 전현직 법관들의 형사재판은 장기화되면서 기소된지 2년이 다되가도록 1심조차 완료되지 못했고, 그나마 선고된 사건조차 번번히 무죄 판결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법관이 법관에 대해 내린 이 무죄판결은 과연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는 판결비평을 ‘광장에 나온 판결 – 사법농단 특집’으로 기획해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현재까지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 1심 형사재판 중 선고된 판결 4개 모두 무죄가 나왔습니다. 참여연대는 법원 무죄판결 법리의 문제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첫 번째 판결비평으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있으면서 ‘산케이신문의 세월호7시간 관련 박근혜 명예훼손 보도’ 관련 판결에 개입해 재판부에게 보도내용이 허위임을 적시하라고 지시, 직권남용으로 기소된 임성근 판사의 1심 무죄판결을 다루었습니다.

  • 대상 판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송인권 부장판사, 2019고합189

이 글의 필자는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출처: 참여연대
사법농단 관여 법관 66명에 관한 정보공개청구 거부에 관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논평 (2019. 6. 13.)

사법농단과 직권남용:
다시금 시험대에 오른 법관의 독립성

법적 결정이 법‘외’적인 것의 영향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최근 양승태 법원에서 일어난 ‘사법농단 사건들’은 법관의 독립성에 대한 의심을 다시 한번 증폭시켰다. 한번 품은 의심은 좀처럼 지우기 어려운 법. 목하 진행 중인 ‘사법농단자들의 형사책임을 묻는 재판’을 바라보는 외부자들의 시선에도 의심의 눈길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피고인이 판사인 재판에서의 법적 결정에 ‘제식구 감싸기’ 차원 등 법외적인 요소가 영향을 끼칠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법관의 독립성이 한갓 종이 위에 쓰여진 신화에 불과한 것이라는 근원적인 회의를 품게 만든다.

형식논리라는 프레임의 덫

비평 대상은 재판 개입의 혐의를 받아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1심 법원 판결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판결이 내려지기 전부터 이미 몇 차례 해석 전쟁을 치렀고, 언론들도 저마다의 추측성 보도를 전파하였다. 판결문은 세간의 의혹을 차단이라도 하려는 듯 100페이지가 넘는 지면을 법적 근거와 법리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는 판결문도 그 논지를 분석하여 정리해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A. 피고인이 문제가 된 세 개의 사건에 대한 재판에 개입한 점(사법농단)은 ‘사실’로 인정된다.

B. 그러나 재판개입 사실은 헌법상 요구되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C. 왜냐하면, 직권남용이 되려면 그 전제로서 피고인에게 남용할 ‘직무권한’이 존재해야 하는데,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의 권한이 없는 피고인의 ‘직무권한의 남용’은 애시당초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쟁점 B:독립성 침해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은 아니다? 

쟁점 ‘B’관해 비법률가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미 확립돼있는 헌법과 형사법의 대원칙에서 보면 쟁점 ‘B’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어떤 행위가 아무리 헌법 위반이라도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그 행위를 처벌하는 형벌법규가 존재하지 않는 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쟁점 C: 직권 없이 남용 없다? 

문제는 오히려 쟁점 ‘C’에 있다. ‘직권 없이 남용 없다’고 다시 요약될 수 있는 이 공식은 알고 보면, ‘법리’라고도 이름 붙일 수준도 못되는 단순한 형식논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권남용이 목적격인 ‘직권’과 술어인 ‘남용’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조합되어 있는 법문의 형식을 기초로 하면 남용 대상은 ‘직권’이므로 직권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는 형식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겉보기에 복잡하고 난해하게 보이는 1심법원의 판결을 견인해가는 결정적인 프레임은 바로 이러한 형식논리다. 이에 따르면 오직 권한 범위 내의 ‘재량권 남용’만 직권남용죄로 인정될 수 있을 뿐이고, 권한을 넘어서는 어떤 불법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직권 없으면 남용 없다.” 1심 법원의 ‘형식논리’를 검찰은 깨뜨리지 못했다.

사법농단 가운데 재판개입 유형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성공한 검찰도 1심 법원이 파놓은 이 형식논리의 프레임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즉, 검찰은 피고인인 형사수석부장의 재판개입이 직권남용죄를 성립시킨다는 법적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재판개입도 피고인의 직무권한 범위 내에 있는 것임을 근거 지우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대법원 법리인 법령상의 직무권한 범위를 실질적으로 확장한 ‘일반적 직무권한’ 이론까지 동원하면서 재판개입이 피고인의 직무권한 범위에 들어갈 수 있음을 헛되이 강변했다.

반면에 1심 법원은 법관의 독립성에 관한 헌법적 요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면서 그리고 사법행정권의 본질, 법원장과 형사수석부장의 권한 범위 등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도 실제 피고인에게 인정된 ‘재판개입’은 그 누구의 ‘직무권한’에도 해당할 수 없음을 성공적으로 논증하였다. ‘권한없이 남용없다’는 프레임 속에서 1심법원의 길고 긴 판결문을 정독하면, 1심법원의 판정승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듯 보인다.

‘남용’의 의미에 기초한 직권남용 개념의 해석

그러나 법원이 만들어놓은 형식논리의 덫에서 벗어나와 직권남용의 ‘남용’이라는 개념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남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권한이나 권리를 주어진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를 넘어서 함부로 사용함’이다. 이에 의하면 권한 범위 내에서의 행사라도 본래 주어진 목적을 초과한 경우라면 ‘남용’이 되고, 목적이 초과되지는 않았더라도 부여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경우도 능히 남용이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은 남용의 일상용어적 언어사용법에 따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A, B 두 사람의 건물 관리인이 건물 출입을 위한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지만 관리인 A는 1, 2, 3호실 출입권한만 부여받았고, 관리인 B는 4, 5, 6호실 출입권한만 부여받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A가 자신이 가진 키를 사용해서 4호실을 몰래 출입했다면, A는 4호실 출입권한 자체가 없으므로 A는 권한‘남용’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과연 남용이라는 용어의 용례에 맞을까? 이처럼 남용개념의 기본적인 의미를 고려하면 형법의 직권남용은 권한 범위 내의 ‘재량적 남용’ 뿐 아니라 권한 범위 밖의 일(명령, 지시 그 밖의 불법적인 사실행위)을 하게 하는 ‘월권적 남용’도 포함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남용 개념의 ‘의미’를 고려한 직권남용은 법적 평가 이전에 미리 ‘전제’된 ‘직권종속적’ 형식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직권남용은 사실과 접촉됨으로써 ‘직권관계적’으로 구성되는 실질적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불법적인 재판 개입 그 자체가 직권의 ‘남용’ 행위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헌법적인 재판개입이 피고인의 권한범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는 1심 법원의 법적 결정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법적 권한을 사용하는 가운데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재판 개입까지 자행함으로써 자신의 직권을 남용하였다.’
출처: 청와대
2014년 4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소위 ‘유체이탈’ 화법으로 ‘공무원 퇴출’을 발언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의 ‘7시간’의 진실은 아직 저 멀리 있다

법원 ‘식구’ 위한 기계론적 형식논리

법학방법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형식논리에 기반한 1심 법원의 태도는 대법원이 직권남용 개념을 실질적으로 파악해온 해석방법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법 실무는 추상적인 법률 규정을 구체적인 사실에 적용하기 위해 법학방법론의 고전적 카논(수단)인 문리적 해석, 역사적 해석, 체계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을 적절하게 활용해왔다.

특히 형벌법규의 경우에는 엄격한 문리적 해석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법관의 가치관계적 충전이 필요한 규범적 법적 개념들의 경우는 목적론적 해석을 통해 법문의 문언의 가능한 의미 내에서 확장해석을 해왔다. 직권남용죄의 경우에도 남용의 대상인 직무권한 개념을 ‘일반적 직무권한’으로 확장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직권에 ‘가탁(핑계 삼음)하여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를 직권남용이라고 하면서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경우도 직권의 남용으로 확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법원은 ‘직권’, ‘남용’ 등이 고도의 추상성이 인정되는 불확정 개념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원 ‘식구’가 피고인인 이 사건에서는 목적론적 해석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기계론적 개념법학 내지 엄격한 형식논리만 능사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해석 태도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불리한 유추가 아닌 한 ‘허용되는 확장해석’도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음은 형법해석학의 기초 중의 기초이다.

이러한 1심 법원의 태도는 해석학적 법학에 학문성을 담보받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구를 저버리는 처사일 수 있다. 법률규정에 대한 해석을 할 경우 그 개념의 내용뿐 아니라 해석수단의 선택에서도 임의성을 배격하고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오류검증의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론에 기초하여야만 객관적 이상을 추구하는 모든 다른 학문분과와 어깨를 같이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해석 방법의 임의적 선별은 ‘법치국가의 유지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 법원의 판결이 그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정해진 결론에 이르게 해 주는 해석방법을 자의적으로 선택하거나 합리적 근거지움 없이 법적 결정이 내려지는 일이 일상화되면, 법적 결정에 법‘외’적 영향력이 끼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법치국가는 종당에 법관국가로 변질되어 버릴 위험이 다분하다.

피고인이 필부필부인 경우에는 목적론적 확장해석을 통해 가벌성의 범위를 넓히면서도, 피고인이 권문세족의 일원인 경우에는 엄격한 문리해석이나 기계론적 형식논리에 기초하여 가벌성의 범위를 축소한다면,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사법권을 민주주의원칙에 반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다시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헌법 위반적 재판개입을 한 것으로 인정되는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해서 그 맡은 바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저버린 것이므로 헌법적 관점에서나 형법의 직권남용죄의 보호법익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위임받은 권한에 가탁하여(핑계삼아) 그 권한 외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것으로 능히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2심 법원에서는 1심 법원과는 달리 규범적 개념에 대한 해석 방법을 입맛에 맛게 자의적으로 선별하지 않고 정상적 법학 방법론의 궤도로 복귀하여 하급심 법원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선판례에 나타난 직권남용법에 관한 기존의 법리라도 제대로 반영할 것이 요구된다.

법치국가적 사법과 법관국가적 사법

‘남용’ 개념의 의미론적 해석을 통하지 않고 법문의 형식논리만을 전개한 1심 법원의 태도에 대해 재판개입적 사법농단 사건의 대부분을 면책의 길(형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로 유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1심 법원이 이러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가운데 법원 이외에 속한 다른 권력자들의 불법적 소행을 권한 범위 내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 방면시키는 반사적 효과도 감수하고 있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누명을 덧씌우는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원이 ‘제식구 감싸기’라는 자그마한 목전의 이익 달성을 위해 겉으로는 법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용은 장황한 레토릭을 구사하는 일(물론 이러한 법관의 내심의 의사는 사법농단 사건에서와 같이 증거로 밝혀질 성질의 것은 절대 아닐 테지만)을 반복하게 되면 법치국가의 터전에는 사법불신이라는 불온한 씨앗이 뿌려지게 진다.

판결문에 언어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법 외적 요소들이 법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통제받지 않은 채 은밀하게 지속된다면 사법의 나무가 겪게 될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내외부로부터 오는 영향력에 면역체계의 일각이 무너진 ‘법치국가’적 사법의 나무는 ‘법관국가’적 사법의 나무로 변종되어 더 이상 ‘정당한 판결’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경 속 무화과나무 처럼 베어져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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