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단은 옳지만, 꼭 의사를 법정구속했어야 했을까

조회수 2020. 9. 16. 15: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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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폐색 사망 사건으로 담당의가 법정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의사 대다수는 이 일에 분노한다.

최근 한 의사가 금고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뉴스에 따르면, 의사가 장폐색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하는 바람에 환자가 다발성 장기부전에 빠져 사망했다고 한다. 장폐색의 원인은 대장암, 장기부전의 원인은 장천공으로 보인다.

출처: 다음 뉴스 검색 화면
해당 사건에 관한 구글 뉴스 검색 화면(검색어: 장폐색, 장정결제, 사망, 의사, 법정구속, 검색 시각: 2020. 9. 16. 오후 3시 경). 주로 의료 전문 매체들에서 의료계의 반응을 전하고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대장에 생긴 암이 대변이 내려가는 길목을 틀어 막아서 폐색을 유발했으며, 앞이 막혀 있는데 장정결제를 투여하여 대변량을 늘리는 바람에,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장이 터져 사망에 이르렀단 얘기다.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의사들이 분노하고 있다. 흠 잡을 곳 없는 정상적인 진료과정인데, 나쁜 결과만으로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복통이 없고 대변이 나오고 있었으니 장이 막혔으되 일부만 막힌 것이다. 대장암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조직검사를 해야하는데 그러려면 대장내시경을 해야한다. 내시경을 하기 전에는 장정결제를 이용한 전처치가 필수다. 이것을 처벌하면 앞으로 대장암 환자는 무조건 배를 열고 수술하라는 얘기인가?’

1심 재판부의 판단에 관하여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엑스레이와 CT검사를 했다는데, 부분이 아닌 완전 폐색을 시사하는 소견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재판부가 의학을 독단적으로 판단 할 리 없고, 충분히 의료 자문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복통이 없고 대변이 나오고 있었으므로 ‘부분 폐색’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판결문에서 완전 폐색에서도 가능한 일이라고 반박되고 있다. 영상 소견이 불리하니 의사는 영상을 따지지 않고 대신 임상 증상을 따진 게 아닐까? 물론 현장의 판단에 복통, 대변 등의 증상이 영상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의사로서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영상 소견에는 이론의 여지가 적었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한다. 영상도 판독지도 판결문도 어느 것도 보지 못했으니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완전 장폐색’이라고 가정한다면 판결 과정에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 둘 중 하나의 치료 과정을 택한다. 첫째는 수술이고, 둘째는 내시경이다. 보통 둘째 방법이 효과도 좋고 덜 침습적이라서 선호된다. 그렇다면 결국 원래 사건과 마찬가지로 내시경을 하게 되는데? 차이는 이런 경우 꼭 장정결제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 있다.

대장암으로 막힌 부위를 내시경으로 확인 후 그 자리에 스텐트를 삽입해 대변이 내려갈 통로를 만들어 주는데, 이 과정은 하제가 아닌 관장으로 가능하다. 막힌 부위 하방만 깨끗히 씻어내고 내시경으로 스텐트를 넣는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한계는 있다. 막힌 부위가 대장의 아래쪽일 때만 가능하다.

아무튼 완전 장 폐색이며 위의 방법을 계획했다면, 장정결제의 사용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다. 고로 여기 해당한다면 판결에 문제는 없는 셈이다.

상황이 좀 더 복잡했을 수도 있다. 대장암 부위가 훨씬 위쪽이어서 내시경을 이용한 스텐트 시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럴때는 수술 혹은 장정결제 사용 후 내시경을 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는 의사의 판단이 들어가게 된다. 수술의 위험성, 완전 폐색시 장정결제 사용으로 야기될 수 있는 장천공, 복통과 대변으로 가늠해보는 부분 폐색의 확률 등등.

영상 소견이 나쁘지만, 임상 증상이 양호하여 부분 폐색 가능성이 높다고 의사가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장정결제 사용의 위험성은 매우 낮다. 반대로 고령의 나이를 감안할때 수술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 이러한 의사의 판단은 충분히 수용가능한 범위에 있다. 단, 한가지만 빼고.

환자 및 보호자에게 판단 과정을 설명하고 동의받는 과정을 누락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차팅도 되어있지 않았다고 한다. 판단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환자다. 리스크와 이득을 듣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환자여야 한다. 설명을 생략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번처럼 사망사고가 벌어지면 이건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즉, 나는 이 사건이 2심을 가더라도 의사에게 무과실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생각한다. 판사의 판단과정에 큰 결함을 찾기 힘들다.  

언론보도 내용 재검토

장폐색 사건에 관해 언론에 나타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영상확인 결과 폐색 정도가 심했다.”

→ 아마도 최소한 판독지는 첨부했을 것이다. 장폐색의 판단에 영상소견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자료를 덧붙였을 것이고.

2.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복통이 없고 배변활동을 서너번 해 배가 부드러운 것을 확인하고 장폐색(장의 정상 운동기능에 장애가 있는 병)이 아니거나 부분 장폐색이었다고 주장한다”

→ 의사 측은 이에 해당하는 자료를 제출했을 것이다. 장폐색의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달라질 수 있다. 증상이 경할 때는 이런 치료를 해볼 수 있다. 의사의 재량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 등등.

3. (하지만) “이런 관찰 결과는 영상에 배치되는 중요 사항인데도 의무기록지에 기재돼 있지 않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설명한 바도 없었다.”

→ 하지만 복통 및 배변 활동도 의사 측의 주장일 뿐, 그것에 관한 기록이 차트에 하나도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의사 측 주장을 인정해주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4. “통계에 의해도 장폐색이 있어도 대변이 배출될 수 있으므로 배변이 가능하다고 장폐색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 증상만으로 장폐색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 또한 통계 자료가 포함된 텍스트나 페이퍼를 제시하였을 것이다.

5. “장세척제는 고령자 등에게 신중하게 투약돼야 한다.”

→ 장세척제는 장폐색에서 금기에 해당한다는 근거 문서도 제시하였을 것이다. 장폐색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금기인 장세척제를 사용했으니 잘못이라는 주장을 위해.

6. 남은 건 이득대비 위험을 따진 시술이라는 의사의 현장 재령권인데, 그 역시 환자 측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판결을 뒤집기 위한 여섯 가지 조건

  1. 장폐색이 심하지 않다는 반대의 판독 결과.
  2. 장폐색 진단에 영상검사가 가치가 낮다는 자료.
  3. 증상만으로 완전 장폐색을 배제하는 게 가능하다는 자료.
  4. 복통 및 배변 활동 여부에 대한 차트 기록 혹은 외부 증언.
  5. 부분 장폐색에서 장세정제가 안전하다는 자료.
  6. 이득 대비 위험에 대해 환자 측에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는 녹취 혹은 다수의 일치된 증언이 그것이다.
출처: Truthout.org, CC BY
이 판결을 뒤집기 위해선 여섯 가지 증명(반증)이 필요하다.

의사 대다수가 무죄를 확신하는 모양인데, 나는 상황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 지금 이대로 2심이 열린다면 무과실이 성립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까지나 기사에 소개된 판결 내용 안에서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실제 진료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길은 없다. 그 때문에 내가 하는 얘기가 가치없다면, 의사가 억울한 판결을 당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실제 진료 상황을 모르긴 매한가지니까.

누구도 정확히 모르니 일단 과실이 없다고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틀렸다. 상황을 모두 살핀 재판부에서 이미 판결이 떨어졌고, 그렇다면 기본값은 일단 ‘과실이 있다’에 놓여있다. 의사의 진료 과정을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이유로 판사의 판결 과정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형사처벌이 있을 때마다 의사의 과실이 없음을 주장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제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의사의 진료를 감히 평가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다른 이들은 의사는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양측 다 모두 의사를 너무 신성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사도 한낱 인간일 따름이다. 

꼭 법정구속했어야 했을까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법정구속이 꼭 필요했느냐에 있다. 도주의 우려 때문이라고 하는데, 크게 와 닿는 이유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구속이란 수단이, 재판부가 임의로 휘두르는 체벌처럼 느껴진다. 자꾸 일종의 양형수단으로 받아들여지게끔 행동하는데, 법원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줬으면 한다.

또 하나, 사회적 파장이 있는 판결은 판결문 공개를 비롯하여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대국민 설명(홍보)등의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 뉴스로 기사화 되면서 판결의 요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겪는다. 이번 사건도 쓸데없는 오해가 많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에 (의사들이 느낀) 허탈함은 나도 누구못지 않게 크다는걸 말해두고 싶다. 환자 생명을 다루는 ‘바이탈'(vital)과가 기피과가 된 데는 이런 사건이 크게 한 몫 해 왔다.

비록 이번 사건에서 의사 과실이 보이고 그로인해 한 생명이 목숨을 구하지 못 한 건 안타깝지만, 하루에도 열댓명씩 죽음을 다루는 바이탈과 의사들에게 이 정도 과오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란 걸 말해두고 싶다.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다. 바쁘고 힘든 날엔 동의서도 받지 않고 시술 한 게 지금껏 한트럭이 넘는다. 운 좋게 그 중 잘 못 된 게 없었을 뿐. 운 좋게.

사람 목숨을 다루는데 과오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 다 그렇다. 크고 작은 사고는 필연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깜빡 잠이 드는게 인간이다.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는 평생을 매일같이 전쟁터에서 지낸다. 무수히 많은 죽음을 다루는데 실수할 때마다 처벌하는 게 과연 정의인지 의문이다.

이런 식으로 법정구속을 시키면 나중에 대체 수술 할 의사가 남아있긴 할는지 걱정이다. 설마 기피과를 전공할 의사가 의대 정원을 4천 명 늘리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물론 사고가 있었으니 처벌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수단이 가급적 형사가 아니라 민사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법정구속 같은 각인효과 큰 수단은 가급적 지양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있을 때 마다 나오는 얘기지만, 무엇보다 바이탈과 의사들의 형사책임을 덜 수 있는 보험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회비내는 의협이 이런 일을 해줬으면 한다. 보건복지부 4대 정책(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에 반대해 파업하는 것보다 형사보험을 이유로 파업하는 게 국민을 설득하고 의료제도를 개선하는데 훨씬 더 큰 효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자동차보험을 떠올리면 쉽다. 자동차 운전 중 경미한 사고에 대해선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경우 형사책임이 면제되는. 그래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다루는 의사들을 위해 법과 제도 정비를 위해 의협이 노력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런 사건이 있을 때 의사들이 취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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