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좋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조회수 2020. 8. 24. 16: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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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교수가 직접 말하는 의료인 투쟁의 조건

아주 오래 전 병원에서 노조가 파업을 한 적 있다. 당연히 수술실, 중환자실, 응급실등 필수 부서를 돌릴 최소한의 인력은 남겼다. 때문에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파업하는 내내 그리고 파업이 끝날때까지. 자신들의 행위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자신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당시에 30대 젊은 중증외상 환자가 이송되어 왔었다. 응급실은 난리가 났다. 심장이 멎기 일보 직전의 환자였기 때문이다. 맥박이 거의 만져지지 않았다. 빠르게 수혈을 하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겉으로 드러난 상흔은 없었지만, 배 속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 넘치고 있었다. 응급 처치로 다행히 혈압은 조금 안정화 되었지만 한시가 급했다. 살기 위해선 당장 수술이 필요했다. (중증외상의 골든아워는 1시간?)

하지만 병원 노조의 파업으로 수술방은 최소한만 유지되고 있었다. 병원은 의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술방을 치우고 수술도구를 소독하는 것도 사람이 필요하다. 장비를 세팅하고 환자를 옮기는 사람도. 당장 의료가스도 누군가는 채워야한다.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모든 수술이 정상적으로 굴러간다. 간과되고 있지만, 노조의 파업도 의사의 파업만큼 영향력이 크다.

실제로 그 외상환자는 시간이 지나도 내 눈 앞에 있었다. 결코 수술실로 옮겨가지 못했다. 노조파업으로 수술실 운영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몇 시간이나 환자의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어야했다. 근본적인 배 속 지혈이 안되니 밑빠진 독의 물 붓기였지만, 그렇다고 포기 할 수도 없었다. 먼저 시작한 다른 수술이(파업 중에 유지되는 최소한의 수술방) 끝날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했다.

환자를 수술 할 의사는 있었다. 바로 내 옆에. 내가 환자를 보는 사이 그는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전화통을 붙잡고 여기저기 사정을 했고, 때론 상대를 향해 불같이 화를 터트렸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환자가 잠시 안정된 사이, 그는 나에게 차가운 콜라를 건넸는데. 캔 뚜껑을 ‘치익’ 하고 따는 순간 우리는 ‘XX’하고 짧은 욕을 같이 내뱉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출처: 그 환자를 수술할 의사는 있었다. 바로 내 옆에. 그는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

투쟁? 좋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나는 의료인의 투쟁(집회, 결사를 포함한)에 긍정적이다. 언제든 함께할 의지가 있다. 필요하다면 앞에 나설 용의도 있다. 단순한 투쟁을 넘어 파업이라는 수단에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부서의 파업엔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는 의사에게도 파업권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정치파업과 필수부서의 파업은 불법으로 알고있다. 전자는 해석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후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파업은 투쟁의 목적이 아니고, 요구사항 관철을 위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파업이라는 카드를 사용할때는 이해득실을 잘 따져야 하며, 파업 이외에도 대정부 로비 활동, 대국민 설득 작업등 다양한 투쟁 수단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론이 상대가 아닌 제 3자인 관중을 설득하는 과정이라면, 투쟁과 파업도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명분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파업의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한 현안의 반대가 아니라, 결국 올바른 의료제도 개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싸움은 한번에 끝나는 게 아니고, 명분과 신뢰는 두고두고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투쟁의 방식으로 파업을 택한다면, 응급실 등의 필수부서와 코로나19와 관련된 진료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파업은 사용자의 불편을 저당잡는거지 결코 목숨을 인질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단이 과격할수록 가시적인 성과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소탐대실할까 걱정이 된다. 부디 파업을 계속하더라도, 필수의료와 코로나19 관련 의료는 유지하면서 투쟁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내 신분이 응급의학과 교수라 ‘부려먹을 전공의들 없어서 징징거린다’는 비난을 들을 게 뻔해 가급적 말을 아끼려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하도 답답해서 말문을 연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내 후배들과 계속 대화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후배들이 나중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여러가지로 함께 고민하고 있다. 혹시 모를 사고로 인해 애들이 난처한 상황에 몰리지 않게 하려고, 녀석들이 나간 빈자리까지 최선을 다해 메꾸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의 비난을 들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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