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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다 뺏는 게 가장 아프다

조회수 2020. 7. 3. 18: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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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을 이유로 이미 약속한 장애인 24시간 공공 지원서비스마저 철회한 포항시

포항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7월 1일부터 포항시는 최중증 장애인 3명에게 24시간 활동지원 공공서비스를 지원하기로 돼있었다.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수년에 걸친 요구에 포항시가 지난 5월 했던 약속이다. 그런데 6월 29일 해당 장애인에게 포항시 복지팀에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장애인활동보조 24시간 지원사업이 부득이한 사유로 잠정 연기되었습니다. 추후 사업재개 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문자)

수년에 걸친 요구와 시의 약속으로 이뤄진 장애인 돌봄 복지가 시행 이틀 전 갑자기 취소된 것이다. 장애인언론 ‘비마이너’가 포항시 장애인복지팀장과 통화한 내용은 이렇다.

‘비마이너’가 전한 포항시의 ‘기적의 논리’

복지팀장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포항시청 앞에서 6월 30일부터 7월 25일까지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것을 6월 29일 오전에 새롭게 알게 됐다면서 “집회 사유에 24시간 활동지원에 대한 인원 추가 요구가 있어 몇 명을 더 요구하는지 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팀장은 (약속된 3명이 아닌) 신청자 7명을 모두 지원하라고 장애계에서 요구할 경우 추가 예산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그럴 예산은 없다고 응답했다. ‘비마이너’는 3명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추가 인원은 추후 논의하면 되지 않냐고 물었지만, 복지팀장은 집회신고가 들어왔으므로 요구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고 되풀이했다. 수용하지도 않을 요구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예정된 정책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논리가 아주 기발하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포항시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치졸하게 협상의 무기로 쓰고 있다며 반발하는 중이다.

출처: 비마이너
비마이너 해당 기사 갈무리

무슨 말인고 하니, 장애계에서는 31명의 최중증장애인 모두에 대한 24시간 활동보조를 비롯해 여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포항시청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그러자 곧바로 포항시는 3명에 대한 활동보조까지 취소시켰다.

무슨 그림인지 각이 나온다. 장애계에서는 겨우겨우 최중증장애인 3명에 대한 24시간 활동보조를 시로부터 얻어냈다. 하지만 포항시는 장애인 단체가 다른 요구사항으로 시청사 앞에서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그 장애인 돌봄 복지를 빼앗겠다는 것이다. 여러 실험에 따르면, 사람은 있다가 빼앗기는 것을 원래 없던 것보다 더욱 아프게 여긴다는데 포항시 공무원들이 매우 ‘똑똑’하다.

포항시 입장에선 깔끔한 시청사가 장애인 시위로 인해 더럽혀지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포항시 공무원 나리들아, 국회라도 한번 와보시오들. 어쩌다 가보지만, 그 근처엔 겉보기에는 아름답지 않은 시위가 끊이질 않는다우. 그리고 시청사 앞 시위가 장기화된다고 하더라도 대중은 별로 신경도 안 써요. 한국에 그런 장기 농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우. 시청에 들리는 대중의 안구 정화를 위해 장애인 농성 천막을 빨리 걷어내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약속된 최중증 장애인의 공공서비스를 시행 이틀 전에,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이대며 취소하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라오.

‘무늬만’ 선별복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용위기가 도래하자 정부는 무슨무슨 뉴딜 같은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비대면 사회’로 가는 길을 앞당기겠다며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비대면도 좋고 무슨 뉴딜도 좋지만, 대면 일자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복지 분야에서 사람이 품을 들이는 공공서비스가 너무 부족하다. 포항시와 비슷한 일들이 어디 저기에서만 벌어지고 있겠는가.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위기는 가난하고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특히 가혹하다며, 더욱 더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데 힘을 썼다. 한국의 ‘무늬만’ 선별복지 원리가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고, 더욱 더 어려운 이들을 선별하다가 더 힘겨우면서도 지원에서 배제되는, 억울한 탈락자를 대량으로 양산했다. 그렇다고 탈락하지 않은 이들이 대단한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한국 같은 복지 후진국에서 늘 있는 일이다.

출처: 선별복지? 더 어려운 이에게 ‘집중 지원’하는 선별복지가 아니라 ‘탈락’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선별복지?

더 어려운 이들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명제가 대대로 말잔치에 불과했다는 것은, 부양의무제 악법도 그렇고, ‘줬다뺏는 기초연금’도 그렇지만, 형편없는 장애인 복지가 여실히 보여준다. 현금, 서비스, 취업 지원을 비롯한 각종 정책의 대상자도 지원 수준도 모두 협소하다.

더 취약하기로 따진다면 장애인은 당연 선두에 있지만, 더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정의로움’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은 굉장히 잘 사는 나라이지만, 일상에서는 장애인을 보기가 매우 어려운 사회라는 것, 그것이 정책적으로 장애인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란 것(이른바 ‘시설 위주 정책’), 사실 모두 아는 이야기다.

가난한 이들, 아프고 병든 이들, 더 큰 곤란을 겪는 취약계층에게 보다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적극 공감한다. 이런 말들이 그저 위선에 머물지 않는 사회를 보고 싶다. 정치적 치장에 이용되는 겉치레 복지가 아닌, 단지 ‘하고 있다’를 보여줄 뿐인 생색용 복지가 아닌, 누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한 복지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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