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 조선일보는 80년 5월 광주를 어떻게 기록했는가

조회수 2020. 5. 18.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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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기록한 80년 5월 광주 관련 주요 기사와 사설(20일~29일)

올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40주년 되는 해입니다.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는 올해로 창간 100년이 된다고 합니다.

언론은 기록하는 존재이고, 그 기록은 내일의 역사가 됩니다. 하지만 E. H. 카는 역사를 객관적 진실의 기록이라고 손쉽게 인정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역사는 패자의 눈물을 증발시킨 승자의 기록이고, 억울한 희생자의 피를 감춘 학살자의 면죄부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더욱 언론의 기록은 중요하고, 그 기록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만약 그 기록에서 패자의 눈물과 희생자의 피가 권력의 명령으로 혹은 권력에 빌붙기 위해 지워졌다면, 우리는 과거와 다시 ‘대화’함으로써 희생자의 피눈물을, 그들의 목소리를 불러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는 그저 권력자와 여기에 빌붙는 지식 부역자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의 이념 구별은 무의미합니다.

이 글 본문 인용문은 모두 조선일보 5월 해당 기사와 사설을 직접 인용한 것입니다. 다만, 독자의 가독 편의를 고려해 “괄호( )”를 넣었습니다. 즉, 괄호 안의 내용은 발췌한 인용문을 가정적으로 해석해 보완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인용문 끝에는 제 촌평(화살표)를 덧붙입니다.

출처: ⓒ5.18기념재단

80년 5월 20일 (화요일) 2면 사설

(우리는) 실로 고난에 찬 민족이다. 10.26이후 마침내 5.17조치까지 (정말 빡세다).
(그런데 이 고난은) 원천적으로 바로 1/2의 해방인 분단에서 근원하고 파생(한다).
(아무튼 지금 우리는) 5.17조치를 맞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역사는 분명히 가야할 전환의 고비를 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위기를 잠재적으로 맞고 말았다.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비상계엄령을 전국화하는 5.17조처를 취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북괴의 격중하는 적화책동이 학원소유를 고무, 선동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치인, 학생, 근로자들이 조성하고 있는 혼란과 무질서가 우리사회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으며, 이와 같은 사태가 경제란까지 극도로 악화시켜 바야흐로 국기를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할 우려가 있다”고 최 대통령은 지적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를 비록한 모든 국가 기능은 국민적 믿음을 바탕으로 했을때에만 비로소 그 권위가 보장되며, 그 기능의 정상화가 확보(되니까 그냥 잠자코 가만히 따르면 된다?).

→ 쉽게 말해서 5.17 전국 계엄 확대를 옹호하는 사설이다. 온갖 비장한 수사를 동원하지만, 결국 ‘가만히 있으라’ 혹은 ‘정부가 하라는대로 잘 따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80년 5월 22일 (목요일) 1면

광주 일원 소요 사태 / 나흘째 학생 – 시민 합세 / 계엄사 [광주사태] 발표

계엄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광주지역 소요가 악화되는 현상은 전국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서울을 이탈한 학원 소요주동 학생 및 깡패 등 현실불만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린 데 기인됐다고 했다. 광주 지역에 유포된 유언비어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경상도군인이 전라도에 와서 여자고 남자고 탁치는 대로 밟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사상자가 많이 난다.
2. 18일에는 40명이 죽었고 시내 금남로는 피바다가 되었으며 군인들이 여학생들의 브래지어까지 찢어버린다.
3. 공수부대애들이 대검으로 아들딸들을 난자해버리고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게한 후 장난질을 한다.
4. 공수부대가 몽둥이로 데모군중의 머리를 무차별 구타,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깨졌다.
5. 한신대 학생 1명이 18일 다쳐서 죽었다.
6. 학생들 50여명이 맞아 피를 흘리며 끌려 다니고 있다.
7. 계엄군이 점거하고 있는 가톨릭센터 건물에는 시체 6구가 있다.
8. 데모 군중이 휴가병을 때리자 공수부대가 군중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9. 계엄군이 달아나는 시민들에게 대검을 던져 복부에 박혀 중상을 입혔다.
10. 진압군인들은 경상도 출신만 골라 보냈다는 등이다.

박총리 서리 광주에 광주에 급파 (+ 최대통령 소요사태 수습 위해)

“고정간첩 침투 선동” (+이계엄사령관 경고 자위위해 조처강구) – 계엄사령관 이희성 육군대장의 담화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중략…) 터무니 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 방화 (…중략…)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데 기인된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한 불순분자 및 이에 동조하는 깡패 등 불량배들로서 급기야는 예비군 및 경찰의 무기와 폭약을 탈취하여 난동을 자행하기에 이르렀으며 (…중략…) 본인은 순수한 여러분의 애국충정과 애향심이 이들의 불순한 지역감정 유발책동에 현혹되거나 본의 아니게 말려들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파탄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중략…)” (이희성 육군대장)

→ 주로 계엄사의 말을 받아 쓰고 있다. 강조하는 건 유언비어라는 것. 그런데 슬프게도, 유언비어가 아니었다. 참고로 1면 헤드라인은 제목은 ‘총리 서리 박충훈 씨 / 최 대통령 임명 각료 11명 교체’다.


80년 5월 25일 (일요일) 2면 사설

도덕성을 회복하자 (부제 : 진정 우리에게 너무한 경험앞에)

우리는 지금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엄연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게 뭐냐면 광주다).
우방 여러나라에서 한국 정부의 불안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안타까와하며 진정어린 충고를 보내주고 있다. (…중략…) 참으로 고마운 (…중략…) 비극의 나라를 우방으로 둔 그 나라(미국)에 대해서 목하 거추장스런 짐이 돼있는 우리로선 당혹스런 착잡한 심정마저 누를 길 없다.

한국의 내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고맙게도 미국 형님께서는!)는 북괴의 전쟁모험주의를 사전에 봉쇄키위해 대한방위지원 결의를 재천명(했다). (…중략…) 미국의 정치적 결의와 신속한 군사행동은 한국내의 정정불안과 소요사태에 따른 북괴의 정세오판과 재침기회를 미연에 예방코자 함(이다).

대외적인 안보측면에서의 우방 지원에 감사하는 한편으로 우리에겐 대내적으로 시국을 안정시켜야할 책무가 뒤따른다. (…중략…) 우리의 위정자들(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이 북괴의 남침 위협을 운운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치기술의 하나로 가벼이 인식하는 불신풍조와 ‘안보’라는 단어에 대해 식상증에 걸려 있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도덕적 비극의 한 인자가 되어 (있다).

지난 18일 이후 1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광주 등 일원의 소요 사태는 (…중략…) 불행 중 다행하게 그리고 구원적인 한 상징으로 그런 와중에서도 시위 군중이 간첩으로 인정되는 자들을 색출해냈다는 사실이다. 사회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격앙된 군중속에서 간첩이나 오열(五列)이 선동하고 파괴와 방화와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증거가 포착되기도 했으며, 서울에서는 남파 간첩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들이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등 갖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흉흉케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피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분별력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에겐 지난날 대구와 제주의 폭동사건 그리고 여순반란사건 그리고 성남시와 사북에서의 소요 사태등의 경험이 또한 있다.

지혜를 모으자.

→ ‘북한 간첩 남파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사설. 스스로 ‘민족지’를 자부하는 신문의 사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사설은 시종일관 사대주의적 태도를 유지한다. 무엇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간첩의 공작’으로 매도한다. “시위 군중이 간첩으로 인정되는 자들을 색축”했다고 반기고, “간첩이나 오열이 선동하고 파괴와 방화와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며, “그런 증거가 포착”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신군부에 아부하기 위한 국민을 향한 훈계가 빠지지 않는다. 광주 민주화 운동, 조선일보의 표현을 빌리면 “광주 등 일원의 소요 사태”를 일으키게 한 “도덕적 비극”의 원인(“인자)은 결국 신군부가 “북괴의 남침 위협”을 말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저 “통치기술의 하나로 가볍게 여기는” 사회의 “불신풍조”와 “안보라는 단어에 대해 식상증”에 걸린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거다.

이런 신문이 스스로 ‘민족지’라고 말한다. 이런 굴종적이고, 자기모멸적인 인식은 처참하다. 이런 모습은 ‘반(反)민족지’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이 사설을 통해 본 조선일보는 권력에 억압당했다고 보여지지 않고, 권력에 적극적으로 부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 5월 27일 (화요일) 7면

혼미 … 광주사태 10일째

상가, 은행등 문 못열어 / 외부와 두절 생필품난 극심 (큰 기사)
광주, 목포제외 전남 일원 평온회복 : 계엄사 발표 (약간 큰 기사)
일가족 3명 피살 (+ 괴한침입 총난사) : 광주 (약간 작은 기사)
전남 도경국장 경질 (작은 기사)

→ 조선일보 사회면에서 바라본 광주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참고로 [광주, 목포 제외]라는 문구는 작게 숨겨져 있다) 평온을 되찾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일상적인 생활의 어려움(위 첫 번째 기사)이 있다는 식이다. 선정적인 흥미유발용 기사(원한에 의한 일가족 피살)등으로 사안의 논점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역시 편집은 조선일보다. 그 ‘미장센’이 이미 이때에도 빛나고 있었구나 싶다.


80년 5월 28일 (목요일) 1면

계엄군, 광주 장악
17명 사망, 2백 95명 보호중 : 계엄사 발표 / 계엄군 순직 2, 부상 12명.

어제 새벽 전격진입[3시 30분] / 백분만에 끝나 시내출입 잠정제한

시민피해 없도록 과감히 관대처리

구호-복구 최대 지원 : 최대통령 지시 관계자오간대책위 구성

안 前전남도경국장 직무유기혐의 연행

이런 비극없게 자성, 피해시민들에 죄송 : 이문공 담화

[팔면봉] 광주, 바람 자고 먹구름도 걷히다. 사랑과 평화와 번영으로.

→ 가장 혐오스러운 건 ‘팔면봉’이다. “바람 자고 먹구름 걷”혔단다. “사랑과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잖다. 그 무수한 피를 뿌리고, 그 피가 마르기도 전에, 그 오열과 통곡이 잦아들기도 전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사랑과 평화와 번영이라니… 이제 곧 대통령 등극할 전 씨를 비롯한 신군부에 사랑과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80년 5월 28일 (목요일) 7면

10일만의 평온… 복구 서둘러 (계엄군이 장악한 광주시가)

(아래는 위 메인기사의 큰 설명문구들)

“어떻게 지냈느냐” 인사 나눠

공무원-경관들 출근… 기능회복

시내전화 한때 불통… 아침 9시까지 간간이 총성

시민들은 사후처리에 관심집중

광주에 생필품 비상공급

정부조사반 현지 파견 세금납기 한달 연기

“광주시민을 돕자”

부산 – 대구 – 경남 민간단체 등 적극 호응 / 삼성 2억 기증

부상치료 전액 지원, 전파가옥 5백만원

→ 이제 상황 종료 선언이다. 사회면에서 확실하게 도장 찍고 있다. “부산-대구-경남 민간단체 등 적극 호응”이라고 굳이 강조함으로써 광주 항쟁의 지역분열, 지역갈등 문맥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는 영남을 모략했지만, 영남은 광주를 돕는다!? 이게 조선일보가 말하고 싶은 편집의 숨은 ‘함의’였을까.

조선일보의 특기는 역사적 과제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설계해낸다는 점에 있다. 어떤 권력의 야만도, 개인이 따라야 하는 국가/자본의 명령일 뿐이고, 거기에 피흘리고 숨진 사람들의 눈물과 생명도 결국은 불가피한 희생에 불과하다. 국민의 ‘의무’는 그냥 역사적인 진실이고 뭐고 따지지 말고, 그저 일상으로 복귀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80년 5월 29일 (목요일) 1면

서서히 문 열리는 광주

(위 메인 기사의 설명문구들)

계엄군 진입 사흘째 길목에 다시 교통순경 모습

“이젠 괜찮나” 상가 절반 “개업”

시민들 “금품보다 [마음구호]를”

아직은 자전거의 거리 / 바리케이드도 말끔히 / 택시 간간이…시외버스도 통행

한국 민주발전 희망 : 미국무성 대한(對韓) 방위조약 준수 결의 재확인

“질서 확립 시급한 때”

광주사태 수습협의 : 박총리, 첫 주요각료 간담회주재

[만평] 광주를 돕자

[자사 광고] 광주시민 돕기 모금 / 본사서 2천1백35만 원.

→ 일상으로의 복귀를 독려하는 기사가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광주를 돕자”는 만평과 “광주시민 돕기 모금”은 가증스럽다.


80년 5월 29일 (목요일) 2면 사설

민족정서를 살리자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굳이 의식하진 않더라도 원천적으로 민족이 공감하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난국(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화해, 화합이 우리 민족정서의 대종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대립과 갈등의 시기는 불가피하다. 더욱이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국제화 그리고 숱한 가치관의 혼란 틈에서 이 대립과 갈등은 빈발해왔으며, 빈발해나갈 것이 자명하다. (그러니까) 화합의 슬기(가 필요하다는 거다).
화합은 야합과는 다르다(그러시군!).

(한편) 한국인은 인정에 강하다. 곧 인정이야 말로 우리 민족정서의 다른 한 특성(이다).
옛날의 취락단위인 촌락공동체는 인정으로 맺어진 생계와 운명의 공동체였다.
(드디어 결론을 말하자면) 광주사태가 빚은 후유증일랑 먼저 이 화합과 인정이라는 민족정서의 고약으로 그 아픔을 덜고, 이 민족정서를 에너지로 하여 모나지 않는 부드러운, 그러면서 발전적인 분위기를 우리 주변에 깔아 나가기로 하자.

→ 사설의 논리를 거칠게 다시 정리하면, 우리는 단일민족으로서, 우리민족의 정서상의 특징은 ‘화합’과 ‘인정’인데, 까칠하게(?) 광주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화합하고 인정 발휘해서 대충 “모나지 않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살자는 거다. 이런 게 신문이면, 파리도 새다. 이건 쓰레기도 뭣도 아니다. 이건 이건 악(惡)이다.


총평

‘1980년 5월 광주’라는 가장 슬픈 현대사의 역사적 시공간에서 조선일보가 보여준 면모는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그 조선일보가 아직도 호령하고, 독자들 훈계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스터리하게도 많은 이들은 그런 조선일보가 편안한 것 같기도 합니다.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의 역사의식 결핍과 윤리의식 부재를 아프게 방증하는 사례이고, 여전히 조선일보는 자칭타칭 ‘1등 신문’입니다.

스스로 ‘민족지’를 자부하는 조선일보는 앞서 본 것처럼, 광주 항쟁의 ‘학살’ 한복판에서 신군부 부역과 미국을 향한 사대주의로 일관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국민을 그저 훈계의 대상, 권력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결정권 없는 존재로 바라봅니다.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 여전히 일관해서 유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권력이 되어 국민을 가르치는 오만한 엘리트주의, 그게 조선일보가 세계를, 적어도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 뒤집힌 것처럽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소위 ‘진보’ 진영은 통합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을 넘어서는 정치 권력을 획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권력 구도는 적어도 당분간은 유지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 영역은 ‘보수’로 불리는 조중동과 경제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히트 상품들을 통해 더 강력한 상징권력을 획득한 종편으로 인해 조중동의 권력 기반은 더 강력해졌고, 그렇게 언론이라는 운동장은 더 기울어졌습니다.

그렇게 40년이 지난 오늘, 여전히 조선일보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권력의 정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극복하는 방식이 적대적 공생의 역할 놀이나 우리 편이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 게임 논리에 빠지는 것은 아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편 이기면 장땡’이라는 진영간 전쟁 논리가 아니라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그 맥락과 배경을 살피고, 오직 사실에 바탕해 진실을 받아들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방법론이어야 합니다. 그런 역량을 키우지 못하면 ‘우리편’이 이겨도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 공간은 마치 80년 5월 광주처럼 잔인하고, 무자비한 ‘전쟁터’로 남겨질 테니까요.

너무 너무 뻔한 소리지만, 오늘날 정말 어렵고 힘든 일, 아군과 적군의 식별보다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피아 식별만이 유일한 방법론이고, 우리편만이 진리이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일을 더는 근심하지 않을 때 언론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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