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말단 제조업의 기억

조회수 2020. 4. 3. 12: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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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형 마스크.. 하찮은 것의 숭고함과 위대함

페이스북을 보던 중 지인이 공유한 신기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프랑스의 유명 패션 기업 크리스찬 디올에서 마스크를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스크는 분명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긴 했다. 크리스찬 디올이라는 걸 알고 봐서 착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뭔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마스크는 마스크답지 않게 ‘우아’했다.

사실 이 점이 중요하다. 우아함은 ‘마스크다움’이 아니다. 마스크다움은 결국 방역에 기여할 수 있어야하는 것을 의미하고, 공중보건을 위해 적정 품질로 빠르게 양산되어 다수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크리스찬 디올의 ‘수제 마스크’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과연 손으로 한땀한땀 만드는 우아한 마스크가 사람이 질병으로 죽어나가는 시점에서 무슨 소용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사진은 어찌보면 유럽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출처: ‘크리스찬 디올’의 수제 마스크 (디올 인스타그램)

본래 유럽에는 사람들이 찬양하고 숭앙하던 ‘이미지’가 있었다. 찬란한 유산과 웅장한 과거, 우아한 예술을 품은 대륙. 아마 ‘크리스찬 디올’은 그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마스크를 만들어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까, 라는 의문이 들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인들은 따라오지 못하는, 유럽에 축적된 디자인 전통이 발휘된 결과물이 그 ‘수제 마스크’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진은 동시에 유럽이 갖는 ‘이미지’의 이면도 보여준다. 과거와 전통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무언가 답답하고 변화가 없는 것만 같은 그런 인상 말이다. 그럴 시간에 자동화된 생산 설비라도 갖추는 게 이득 아닐까?

한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에서 정반대의 일을 겪어왔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공익의 추억

2016년, 나는 징병제 국가의 청년답게, 징병 기준은 미달했어도 공익근무요원으로 징발되었다. 내 복무지는지적장애인 생활시설이었고, 거기서 2년 간을 복무했다. 시설에서 한 업무는 상당히 다양했다. 지적장애인 돌봄 보조, 시설 관리와 청소를 비롯한 수많은 잡일들, 마치 집단농장을 방불케하는 텃밭농사 등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렇게 했던 일 중 또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말단 제조업이었고, 이 경험은 내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경험한 말단 제조업은 세 종류였다. 우리 시설에서는 장애인 이용인들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 ‘부업’이었다. ‘인형 눈깔 붙이기’로 유명한 그런 거다. 처음에 내가 맡은 것은 손톱깎이 조립이었다. 시설 3층에 손톱깎이 조립을 원하는 장애인들을 앉혀놓고 부품을 제공하고 불량품 없는지 검사하고, 부족한 분량은 공익들이 채우고, 차 끌고 납품하러 가는 그런 일이었다. 사실 수지타산은 안 맞았다. 손톱깎이는 개당 5원이어서, 장애인들의 낮은 생산성을 감안하더라도 노동에 비해서 돈이 많이 나온다고 하긴 힘들었다. 2천개 조립해야 만 원이다. 9시부터 6시까지 둘이서 하루종일 하면 용돈벌이 정도는 될 것 같은 그런 일이다.

놀라운 것은 이 손톱깎이를 납품하러 갈 때 일이었다. 원래는 업체에서 우리 시설로 와서 노란 공장 상자 안에 담긴 손톱깎이를 가져가는 게 보통인데, 몇 번은 우리가 공장에 직접 납품하러 가야만 했다. 차 타고 천안시 소재 시골 모처의 공장까지 30분 가량 걸렸던 것 같다. 아주 허름한 건물이 몇 채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매일 납품하는 2천 개뿐 아니라 이 공장이 담당하는 공급망에서 받아오는 훨씬 많은 손톱깎이 재료들이 쌓여있었다. 그걸 공장 주인 내외와 직원 몇 명이서 신속한 불량 검사를 한 뒤 손톱깎이 이음매를 찍어주는 기계에 하나씩 넣는 생산라인에서 완성된 손톱깎이가 계속 튀어나왔다.

출처: 손톱깎이는 누가 만드는가? 그중 일부는 공익근무요원이 지적장애인과 함께 만든다!

하지만 손톱깎이 생산은 몇 개월 이후 중단되었다. 직접 공장까지 납품하러 갈 일이 많아지면서, 길에서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종류로 부업을 바꾸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기 케이블을 조립하는 일이었다. 플라스틱 부품 같은 것에 피복된 전선 다발을 꼽고 핸드 프레스로 찍으면 완성. 하지만 손톱깎이보다 공정이 복잡하고 신경써야 할 작업도 많았기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장점은 거리가 압도적으로 가깝다는 것인데, 시설에서 차타고 5분 가면 나오는 곳에 공장이 있었다.

물론 일을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폭주했다. 지적장애인 분들이 맡는 작업에서 상당수 불량이 초래된 것이다. 이걸 교육시켜서 불량률을 0에 맞추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고, 결국 불량은 공익들이 처리해야만 했다. 조립된 물품을 다시 해체해서 요구사항에 맡게 재조립하고 정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퇴근을 앞두고 연장근무까지 하면서 불량을 처리한 적도 있었다.

이 업체는 가까웠길래 직접 갈 일이 많았다. 그래도 대개는 공장 바깥에서 물건 넘겨주고 다시 돌아오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는 공장 안쪽까지 들어갈 일이 있었다. 그 날은 업체에서도 상위 벤더에 납품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는데, 우리가 납품한 물건에서 불량이 또 대규모로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담당직원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고, 이번엔 꽤 다급했기에 공익들이 파견되어서 그 자리에서 불량을 직접 고쳤다.

자동차 케이블 라인도 나에겐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프레스로 손톱깎이를 찍는 장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불량제로를 사수하자!”와 같은 표어가 붙어 있는 입구를 들어서자 유니폼을 입은 채 각자 맡은 곳에서 조립에 열중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다. 얼핏 보면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인 같이 생긴 것도 같았는데 확신은 안 선다. 그 라인에서는 우리가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조립작업에 더해 몇 가지 추가 공정을 더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 시설보다 압도적인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불량제로’를 만들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손과 최적화된 부품 공급 시스템이 보였다. 우리는 그 뒤에서 남는 책상을 맡아서 불량품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에 열중했다.

또 인상적인 것은, 그 업체 대표 ‘사모님’ 역시 작업복을 입고 현장의 핵심적인 업무를 맡은 모습이었다. 백두혈통이 가득한 것이 소위 ‘X소기업’의 특징이고, 그들은 황제와 황태자처럼 전횡을 일삼는 경우가 많지만, 동시에 얼마 안 되는 이익이라도 벌겠다고 가구 구성원들이 총력투입되어 생산라인 노동자들과 구분 안 되는 작업에 몰두하는 기업도 있다. 내가 납품했던 기업은 그런 기업이었다.

아마 내가 볼 수 없던 공장 안쪽에서는 분주히 기계가 돌아가 남성 노동자들이 작업을 했을 것이고, 그 모든 공정을 대표가 통합한 뒤 상위 납품업체에 또 납품할 것이다. 그런 부품 사슬이 수없이 모여서 자동차 하나가 만들어질 것을 생각하자, 손톱깎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이 나라의 제조업에 감탄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돈도 장애인분들끼리 나눠가지고 공익들은 한 푼도 못 받은 것에 허탈해 하는 게 먼저였지만.

마지막 ‘말단 제조업’, 그 강렬했던 추억

마지막으로 겪은 ‘말단 제조업’의 현장은 기간은 가장 짧았지만 가장 강렬했다. 여느날과 같이 시설에 출근을 했는데, 장애인 취업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러면서 “A 씨, B 씨, C 씨, D 씨랑 같이 공장 좀 가야겠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원래 장애인 시설에서는 장애인 취업을 통한 자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장애인 고용 시에 주어지는 혜택을 바라는 공장들 덕택에 윈-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공장에 취업할 능력 있는 시설 이용인들은 이미 취업 다 해서 잘 살고 있다는 게 문제다. 즉, A, B, C, D 씨는 공장 취업은 힘들지만, 그래도 노동 능력이 어느 정도는 있으신 애매한 분들이셨던 거고, 나는 그분들 업무를 살펴보고 보조하는 역할로 파견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시키면 해야했으니 군말 없이 갔었다. 이번에도 차 타고 10분, 15분쯤 가니 공장이 나왔다. 이번에 갈 곳은 농업용 산업단지였는데(정확한 이름 있었는데 까먹었다), 농업에 쓰이는 각종 물품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집적되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금속제품, 비닐하우스 조리개를 만드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비닐하우스 조리개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아, 초등학생 때 농촌마을에도 살아봤으니 보긴 했을텐데, 비닐하우스의 핵심 자재로 ‘조리개’라는 개념을 그 때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공장은 분주했다. 금속을 받아서 자르고, 펴고, 깎고, 구부리고(…) 등의 작업을 하는 건물이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붙어서 시끄럽게 조리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금속 자르고 찍는 기계를 보면서 손 한 번 잘못 들어가면 큰일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었다. 우리는 안내자의 인솔을 받으며 건물을 나와 바깥의 뜰 같은 곳으로 향했다. 햇빛을 가려주는 지붕이 있었지만,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서 여성 노동자 둘이 앉아서 손을 분주히 놀리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가 하니 두꺼운 고무줄로 조리개를 10개씩 포개서 묶은 뒤, 개수에 맞춰서 분류하는 일이었다. 한 포대 당 100개였나 그랬던 것 같다.

출처: 비닐하우스 조리개는 이렇게 생겼다.

9시부터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빼고 계속 그 일에 메달렸는데 쉽지 않았다. 잘 포개지지도 않는 쇠를 꽉 잡고, 손가락을 조이는 고무줄을 늘렸다가 한 번 꺾어서 다시 조이는 일은 단순하지만, 바로 그래서 힘들었다. 게다가, 나도 잘 못 하는데 다른 장애인들이 하는 일도 내가 계속 확인하면서 개수까지 틀리지 않게 맞춰야 했다.

 조리개를 만드는 수많은 공정 중에서, 생산도 아니고 그저 분류와 포장인데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노동량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작업하고 ‘함바집'(주로 건축공사 현장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고깃국이 진짜 너무 맛있었다. 일해서 맛있는 것도 있는데 그냥 거기 함바집이 음식을 잘하기도 했다.

그래도 재밌는 일도 있었다. 나는 산처럼 쌓인 조리개를 앞에 두고 정신 없이 일을 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일을 하던 두 여성 노동자들은 서로 담소도 나눠가면서 엄청난 속도로 일을 해치우고 있었다. 가끔 쉴 때는 담배도 피고 해바라기 씨도 까먹으면서 말이다. 잠깐?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는 주로 구소련 지역에서 즐겨 먹는 간식이었고, 얼핏 들어보니 이들이 하는 말이 러시아어처럼 들리기도 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러시아어로 몇 마디 말을 건냈다. 그 둘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재밌다면서 나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출신이었고, 러시아어도 그래서 할 줄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약 그 공장에서 내가 계속 일을 하게 된다면 나와 언어 교환을 하고 싶어했는데, 공장 일은 그날로 끝났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 경험은 내가 성환에 있을 때 경험하던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중 하나였다. 한국은 이미 세계로 뻗어나간 삼성 제국, 현대 제국 등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한국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제국’이 있는 셈이었다. 세계화의 주역은 바로 그들이었다.

하찮은 것의 숭고함과 위대함

물론 이런 일들은 모두 그저 에피소드에 불과하긴 하다. 나는 공장에서 1년 넘게 제대로 일해본 적도 없고, 위험한 일은 수행한 적도 없었다. 내가 겪은 것은 지적장애인의 부업 등을 지원하면서 간접적이나마 그 공급망에 참여한 몇 개월의 경험이 전부다. 하지만 이 시기의 경험은 내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요컨대 나는 우리가 일상을 의존하는 그 수많은, ‘하찮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들어가야 하며 얼마나 복잡한 생산 네트워크가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멀리서나마 체험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 케이블은 말할 것도 없고, 손톱깎이나 비닐하우스 조리개도 결코 하찮은 상품이 아니었다. 그 모두는 위대한 상품이었다. 첨단기술의 정수라고 할만한 스마트폰, 반도체에는 또 어떤 경이로운 생산 네트워크가 존재하겠는가? 그 네트워크 말단에는 또 어떤 ‘하찮고 후줄근한’ 지방의 공단들이 위치해 있겠는가?

당연하게도 이런 부문은 사회 여론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사실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을 때 누가 그게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신경 쓰겠는가? 하지만 포착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팬데믹(전염병의 전 세계적인 대유행)이 찾아오고 국가적, 세계적 마스크 수급 대란이 찾아왔을 때, 지방에 산재한 이런 소규모 말단 제조업들은 엄청난 생산 능력을 보여주면서 국내 마스크 수급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크리스찬 디올’ 같은 우아한 이름도, 그 이름에 걸맞는 디자인도 없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네에 위치한 공장에서 엄청난 속도로 마스크를 찍어내면서 의료진에게, 시민에게 간 것이다. 양산 기계가 찍어내는 그 마스크는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손길을 거쳐 포장되어 트럭에 실려 전국 각지로 운송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장엄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광경이다.

사실 이런 ‘장엄한’ 풍경은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다. 선진 산업국 대다수는 그런 단순 제조업 상당수를 아시아에 떠넘기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했다.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 상표를 만들어 물건에 붙이는 게 훨씬 더 이득이 되는,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한국도 이제 물건보다는 상표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한 선진 산업국이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개발시대에서나 익숙할법 한 그런 단순 제조 공단들이 여전히 즐비한가? 손톱깎이부터 마스크에 반도체와 배터리를 만드는 이 광대한 범위는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공장에 납품하러 다니던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이런 의문들이 머리에 남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크리스찬 디올의 수제 마스크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은 유럽을 선망했다. 건축, 예술, 음식, 언어, 문화, 사회, 지식 등을 말이다. 그런 선망이 모여 ‘유럽여행’은 상류 중산층 이상 되는 사람들의 필수적인 ‘과업’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이나 찬란한 역사는 없어도, 각양각색의 국적이 모여있는 이 나라 지방의 어느 공단의 생산라인에서 찍혀나온 마스크가 사회를 유지시키고 사람들의 심리를 보호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대단하지 않은가?

출처: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마린 세르’의 295달러, 한화 약 36만 원짜리 방역 마스크(출처: 마린 세르). 마돈나는 코로나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말했지만, 코로나19라는 전지구적 위기도 계급화한 ‘패션’이라는 이름의 시장에서 사회문화경제적 맥락으로 소비된다(편집자).

이처럼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더라도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도리여 더 굉장한 것은 비단 마스크 공장만의 일은 아니리라. 나는 손톱깎이와 비닐하우스 조리개에서 그런 걸 느꼈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 나라 한국 자체가 그런 나라였다. 뭔가 뒤떨어진 것 같고, 구질구질하고, 도시는 찬란한 과거의 건축물 대신 난개발과 아파트 숲 덩어리, 유럽인들은 상표로 돈을 벌지만, 한국인들은 뼈빠지게 일해야 돈을 버는 경제, 자아실현을 위해 여유로운 유럽 학생들과 대비되는 입시 지옥 속의 한국 학생, 늘 이런 식 아니었는가.

하지만 아파트 숲은 엄청난 기능성을 대다수 시민들에게 공급해줄 수 있는 주거 혁신의 결정체였고, 뼈 빠지는 한국의 제조업은 이 나라 경제를 떠받쳤으며, 입시지옥은 반대로 고도의 인적자원을 빠른 속도로 길러내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너무 이런 식으로 예찬만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동안 그렇게 선망하던 유럽에 비해 딱히 못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한국이 달성한 것이 유럽보다 위대한 것도 찾아보면 많다.

그렇기에, 크리스찬 디올의 빼어난 수제 마스크와 대비되는, 양산형 공적 마스크는 한국인들에게 스스로 더 잘 돌아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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