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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긴급재난문자'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조회수 2020. 3. 11. 20: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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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긴급재난문자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할까?

한국 정부가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내용의 메시지를 ‘긴급재난문자’로 수시로 발송해 매우 성가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긴급재난문자’에 관한 몇 가지 토막 상식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1. ‘문자’보다는 ‘라디오’

먼저, ‘긴급재난문자’는 이름과는 달리 ‘문자’, 즉 SMS나 일반적인 셀룰러 망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이는 셀 브로드캐스트(Cell Broadcast; 이하 ‘CB’)라는 것으로, 실제 LTE 등 무선 통신 표준을 관장하는 3GPP 표준안에도 완전히 다른 기술로서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Cell Broadcast

CB는 ‘문자’라기보다 ‘라디오’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본래 *정말 긴급한 상황*에만 사용하라고 만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셀룰러 망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발생하는 막대한 트래픽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는 SMS 등 문자도 마찬가지여서, 긴급한 상황에서 트래픽 병목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필수적인 정보들을 전달하기 매우 힘들어집니다.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CB는 거의 즉시 전달되지만, SMS를 사용한다면 병목 탓에 1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여기에, 재난으로 인해 셀룰러 네트워크가 붕괴된다면 아예 네트워크에 접속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재난 관련 정보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셀 브로드캐스트는 이름 그대로, 단말기 단위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셀’, 즉 기지국 단위에서 메시지를 ‘방송’해주는 시스템입니다. 기지국 단위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용자를 구분하는 별도의 시스템이 없고, 해당 셀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전파됩니다.

양방향 통신 기능 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 그대로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매우 단순한 프로토콜입니다. 기지국 기준이기 때문에 특정 기지국이 있는 지역을 벗어나면 더는 수신되지 않습니다. 통신사의 승인이 없으면 애초에 발송될 수도 없고요. 문자보다 라디오에 가깝다는 것은 바로 이 뜻입니다.


출처: 긴급재난문자는 ‘문자’보다는 ‘라디오’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2. 왜 이렇게 만들었나?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 쓰려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간단하죠.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진이 발생했거나, 화산이 폭발했거나, 미사일이 발사되는 등의 상황에서 말이죠. 아무리 정부라 해도 전 국민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하고 있지는 않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셀룰러 망으로는 재난 상황에서의 막대한 트래픽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장 단순하게 각 기지국에서 메시지를 모든 연결된 단말기에 뿌려버리는 겁니다. 이것 말고는 정말 ‘긴급 대피령 같은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 하는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왜 메시지를 여러 개로 끊어서 보내냐? 피쳐폰 사용자를 고려해서나 일부 폰에서 수신을 못해서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긴급 상황에서 쓰려고 만들었기에 애초에 CB 표준에서 각 메시지 페이지의 길이를 최대 82옥텟, 즉 (영문자 기준) 93자로 정해놨기 때문입니다. 단일 셀 브로드캐스트에는 최대 15페이지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어 이론상으로는 최대 1,395자를 보낼 수 있으나 각 기기에는 메시지 페이지가 여전히 분할되어 수신됩니다.

그리고 긴급 상황에서 메시지를 수신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각 메시지 페이지는 (2초에서 32분 사이로 정해질 수 있는)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상황 종료 시까지 반복하여 브로드캐스트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같은 식별자를 가진 메시지를 수신하면 각 단말기에서 무시해버리는 것 뿐이죠.

출처: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 쓰려고 만든 게 긴급재난문자(CB)입니다.

3. ‘불청객’이 된 이유: 갈라파고스 혹은 콜라파고스

그럼 한국에서는 왜 CB가 일을 방해하고 잠을 깨우는 불청객이 되었냐? 긴급재난문자를 자주 받는다고 불평하는 빈도를 보면 갤럭시 등 국산 폰 사용자보다 아이폰이나 픽셀 등 외산 폰 사용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국산 폰에서는 ‘긴급하지 않은’ CB의 경우 ‘안전안내문자’라 하여 일반 문자처럼 수신하기 때문에 별로 성가시지 않지만, 아이폰 등 외산폰은 매번 CB를 수신할 때마다 시끄럽게 삑삑 울려대니까요.

왜 그런지는 단순합니다. 한국의 CB 시스템이 국제 표준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EAS 등의 긴급 알림 시스템에는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1. 전시 상황 등에서 사용하는 ‘극단적인 위협 경고’,
  2. 지진 같은 심각한 자연재해 등의 상황에서 사용하는 ‘심각한 위협 경고’,
  3. 그리고 긴급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미성년자 실종사건을 알리는 앰버 경고가 그것입니다

EU의 경우 여기에 단순 정보성 메시지인 ‘EU-인포’(“EU-Info”)와 테스트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EU-엑서사이즈’(“EU-Exercise”)가 추가됩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이 표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각 메시지 단계별로 사용자가 수신 여부 등을 별개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완전 딴판입니다. ‘긴급재난문자’와 ‘안전안내문자’ 두 가지 카테고리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이를 구분하는 코드도 독자 규격입니다. 따라서, 이를 지원하지 않는 외산 폰의 경우 티어 구분을 읽지 못하고 무조건 최고 단계인 ‘익스트림'(“Extreme”) 경보를 발령하게 됩니다. 보통 CB는 긴급 상황이 아니면 발송하지 않기 때문에, 티어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일단 무조건 최고 수준 경보로 폴백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 당국이 국제 티어(tier; 단계) 구분 표준을 따르지도 않는 주제에 CB를 지나치게 남용한다는 겁니다. 외국에서는 인포(Info) 수준으로도 발송되지 않고, SMS로 처리해도 충분한 수준의 메시지를 계속 최고 수준 경보인 익스트림(Extreme) 단계 하나로만 발송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안전안내문자”로 구분을 하긴 했지만, 아이폰은 그걸 읽을 수 없습니다(ㅎㅎ…ㅠ.ㅠ).

CB는 무슨 마스크 관련 정보 발송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전시상황이나 인프라가 붕괴되는 재난상황에나 쓰라고 있는 게 CB입니다. 뭐 코로나19가 재난 아니냐고 하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당장 행동이 필요한 ‘긴급’한 재난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휴대전화 번호를 개인의 신분에 깊숙히 연동시키는 나라에서 통신사나 카카오 협조 하나만 구하면 SMS나 알림톡 쭉 뿌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사유로 인해 전 국민의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해 SMS 혹은 알림톡 등으로 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면 CB로는 개인정보 수집 없이도 전 국민에게 ‘공지’를 뿌릴 수 있습니다. 애초에 각 사용자를 개별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보취약계층에 대한 접근성 차원에서는 CB가 가장 적합한 공지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국제 표준과 동떨어진 ‘한국식 표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남용입니다. 이러다가 사람들이 CB 수신 다 꺼놔서 진짜 전시상황이나 긴급한 재난에도 대피 못하게 만들면 그 사람들 탓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난상황 시 그 사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유일한 도구를 양치기소년 꼴로 만들고 있는 건 현 정부 당국입니다.

결론:

국가후견주의와 갈라파고스 기술이 낳은 끔찍한 혼종.
출처: 유네스코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 정도 떨어진 태평양에 있으며, 19개의 섬과 주변의 해양자원 보호 구역은 ‘살아 있는 박물관과 진화의 전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독특한 해양 생태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찰스 다윈은 1835년에 이 섬을 찾아왔고, 이 생물들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갈라파고스? 잘라파고스? 콜라파고스?

갈라파고스 증후군(영어: Galapagos syndrome) 또는 갈라파고스화(일본어: ガラパゴス化 가라파고스카)는 기술이나 서비스 등이 국제 표준에 맞추지 못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여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제조업(주로 IT 산업)이 일본 시장에만 주력하기를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되어, 마치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로부터 고립돼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 잘라파고스(Jalapagos = Japan + Galapagos)이다.

이러한 용어는 원래는 일본의 상황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산업이나 미국의 자동차 산업 등 다른 나라의 비슷한 상황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의 갈라파고스화를 콜라파고스(Kolapagos = Korea + Galapagos)라고도 한다. (이상 위키백과 – ‘갈라파고스화’에서 발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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