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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왜 '감정노동' 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을까?

조회수 2018. 8. 28. 19: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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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주체성 자기' vs. 일본인의 '대상성 자기'

= 감정노동에 관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반 소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돈을 주니까 나에게 친절해야 해’ 이런 기대를 깨야 한다. 표현 규칙을 노동자만 가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그 인식이 확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새벽에 술마시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진상 손님’을 자주 경험한 마트 직원이라고 한다면, 퇴근하는 순간 소비자다.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체험이 쌓이면, 소비자로 바뀌는 순간 갑질을 하는 소비자로 돌변할 가능성이 커진다. 악순환이다.

서비스 노동으로 감정이 다치는 경험을 하면 어딘가에서 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자신의 감정이 다치지 않는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손님은 왕이다’는 신화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노동의 악순환이 심화한다.

= 책에 보면 서울과 도쿄를 비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정노동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일본은 감정노동이 심하지 않다. 올해 초 일본 능률협회에서 조사한 바로는 일본 콜센터 노동자의 감정노동 문제는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다.

=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감정노동의 강도는 회사가 요구하는 것과 내가 느끼는 실제 감정의 간극이 클수록 더 커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체성 자기(subjective self)’가 강하고, 일본 사람들은 ‘대상성 자기(objective self)’가 강하다. 일본인들은 회사에서 부여받은 규칙을 잘 지키는 게 내 ‘셀프(정체성)야’라고 생각하는 거다.

주체성 자기 vs. 대상성 자기

“주체성-대상성 자기 이론은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양쪽 다 상호협조적 자기관이 우세하며 사회적 관계에 대한 표상이 자기개념에 포함되어 있지만, 사회적 관계에 임하는 태도에는 대조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인의 자기관은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심적 존재로 보는 주체성 자기(subjective self)이고, 일본인의 자기관은 스스로를 사회적 영향력을 수용하는 주변적 존재로 보는 대상성 자기(objective self)라고 주장한다.”

– 이누미야 요시유키(犬宮 義行), [주체성-대상성 자기와 긍정적 환상의 관계에 관한 한일비교 연구] (2007-2008), ‘연구목표’ 중에서

= ‘대상성 자기’는 비주체성과는 다른 것인가.

2016년(상반기)에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은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라는 작가가 쓴 [편의점 인간; コンビニ人間]이다. 이 소설에는 18년 가깝게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지내는 인물이 나오는데, 작가 자신의 얘기다. 

그야말로 편의점을 사랑하는 이야기인데, 자전적 소설의 여성 주인공은 편의점에서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무라타 사야카는 아쿠타가와상을 받을 때도 잠깐 상만 받고 다시 가서 편의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출처: 아사히 신문 디지털
우리나라로 치면 ‘이상문학상’ 받고 나서 바로 다시 편의점으로 일하러 간 무라타 사야카

= 엄청나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쓴 댓글을 보면, “뭐 이런 쓰레기에 상을 줬냐” 이런 격한 반응이 있다. ‘대상성 자기’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반응으로 보인다.

= 일본은 한국의 근미래라고들 하는데. 

특히 수치로 보면, 2016년과 1996년의 일본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자기 인식 차이, 즉 ‘주체성 자기’와 ‘대상성 자기’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왜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자기 인식이 생겼을까?

재난이 많은 나라라서 그렇지 않나 싶다.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연의 힘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그 자연이 초래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최소한 마을이나 국가 단위의 거대한 조직력에 또 순응할 수 밖에 없다. 노엄 촘스키는 계급 이동이 없는 사회로 일본을 뽑는다. 안정성은 높지만, 역동성이 부족하고, 사회가 정체한다.


이 글은 윤덕환 박사(심리학, 마케팅 전문가)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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