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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연애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요?

조회수 2018. 4. 6.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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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가의 말처럼 "Yes means Yes"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여자의 ‘싫어요’는 ‘좋다’는 의미”란 말이 통용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인권 의식이 성숙하고, 여성도 주체적인 인간이며 성윤리에는 서로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며, “여자의 ‘싫어요’는 말 그대로 ‘싫다’는 의미”라는, “No means No”(아니라고 말하면 아니야!)가 대두되었습니다.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성도 분명히 ‘좋다’는 의사를 표현했을 때에만 승낙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Yes means Yes”(예라고 할 때만 예라고!)가 새로이 대두됩니다. 성윤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와 배려입니다. 상대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성관계는 마땅히 성폭행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연애의 형태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성별 고정관념에 속박당해 살아왔습니다. 연애의 형태도 마찬가지죠. 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남성은 이런 여성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애프터’는 남성의 몫으로 여겨집니다. 주도적으로 추파를 던지지 않으면 여성에게 관심이 없거나 ‘바보’ 취급을 받기 마련이죠. 어쩌면 ‘명시적 동의’만이 답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이런 전형적인 형태에 익숙한 여성과 남성들에게는 연애나 성적 만남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굳이 이런 고정관념만이 연애를 방해하는 건 아닙니다. ‘밀당’이니 ‘썸’이니 하는 유행어는 기성세대가 만든 게 아니죠. 연애 초기, 혹 ‘썸’이라고 불리는 단계에는 때로는 가까이 하고 또 때로는 멀리 하는 기술(!)을 통해 연애감정을 키워나가기 마련입니다.

성적인 만남은 언어적일 뿐 아니라 비언어적이기도 합니다. 간접적인 신호, 혹 직접적인 스킨십으로 ‘동의’의 단계를 쌓아감으로써 성적 긴장과 흥분에 도달하게 되지요. 모든 단계마다 언어를 통해 명시적인 동의를 구한다면 성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이것은 ‘Yes means Yes’를 부정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구호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야기입니다.

‘Yes’란 무엇일까요? 여성 운동가들은 쉽고 단순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정말 연애와 성이라는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관계에서 ‘Yes’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나요? 첫 키스의 순간 오고갔던 복잡한 감정과 신호들을 명시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Yes’는 분명해보이면서도 분명하지 않고, 심지어 문화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Yes means Yes’를 위하여 연애의 형태 자체를 고민하고 변화시켜가야 합니다. 추파는 일방의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주고받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한 층씩 번갈아가며 쌓아올리는 것이 되어야 하지요.

그레이스 vs. 안사리: 이것도 미투? 미투를 망쳤다?

여기에서 잠시 잠시 주목해 볼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지즈 안사리라는 미국의 코미디 배우입니다.

페미니즘 성향의 웹진 ‘베이브’는 ‘그레이스’라는 익명 여성의 ‘미투’ 폭로를 보도합니다. 그 기사에서 그레이스는 아지즈 안사리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했지요. 그레이스는 안사리의 아파트에서 만남을 가졌는데, 안사리가 성행위를 시도하자 이 과정에서 불편하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했습니다. 안사리는 그레이스의 의사를 일단 존중하였으나, 이후에도 성적인 행위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레이스는 이를 성폭력이라고 주장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이것은 ‘나쁜 데이트’, ‘불편했던 성관계’일 뿐, 성폭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사리는 그레이스가 불편하다는 의사를 표하자 멈추었으며, 강제로 성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코난 (TV 토크쇼)
아지즈 안사리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입니다. 안사리는 2015년 TV토크쇼 ‘레터맨 쇼’에 나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앞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해야 한다”는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죠.

그레이스가 한 차례 불편하다는 ‘비동의’ 의사를 표하긴 했습니다. 겉으로 피력하진 않았지만, 내심 관계가 불쾌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비동의에 의한 강간이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걸 랜드]의 작가이기도 한 ‘디 애틀랜틱’의 케이틀린 블래너건(Caitlin Flanagan)은 베이브의 보도가 “3,000단어짜리 리벤지 포르노”(“3,000 words of revenge porn”)라고 말했습니다. 안사리는 졸지에 자신의 성생활이 대중 앞에 노출되고 말았으니까요.

출처: 디 애틀랜틱
아지즈 안사리에 관한 ‘베이브’의 보도를 “3,000단어짜리 리벤지 포르노”라고 비판한 ‘디 애틀랜틱’의 케이틀린 브래너건.

하이라인뉴스(HLN)의 여성 앵커 애슐리 밴필드도 베이브 보도를 비판했습니다(아래 동영상 참조). ‘디 애틀랜틱’과 ‘HLN’뿐만 아니라 보수지는 물론이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과 같은 진보지도 베이브의 보도를 비판했죠. 

몇 가지 시사점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동의’ 여부가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레이스는 훗날 이 관계를 후회했으며, 아마 당시에도 그리 유쾌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상대가 성적인 행위를 요구할 때 이를 거부하는 건 뭔가 배려심 없는, 나쁜 행위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미안해서, 상대에게 도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성관계에 응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납니다. 여성, 특히 어린 여성은 이런 경험을 많이 토로하곤 합니다. 물론, 남성에게도 일어나고요.

이건 강간은 아니지만, 분명 나쁜 경험입니다. 상대의 탓도, 내 탓도 아니지만, 어쨌든 일어나는 일이죠. 우리는 다시 ‘연애의 형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남성이 주도하고 여성이 따르는 성별 고정관념을 벗어나, 호감을 한 층씩 번갈아 주고받으며 연애감정을 쌓아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언어적, 비언어적 방식으로 서로 동의하고 합의하여 관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물론 동의와 합의란 무엇이며, 비동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좀 더 진지하게 얘기해봐야 할 테고요. 그건 아마 긴 과업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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